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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나윤 ]


“근데 냄새가 선을 넘지…. 썩은 무말랭이 냄새? 행주 빠는 냄새? 지하철 타다 보면 나는 냄새 있어.”


영화<기생충>의 박사장과 그의 아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냄새는 계급 간 차이를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부유한 박 사장네 가족과 가난한 기태의 가족을 구별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풍기는 냄새다. 박 사장의 아들 다송은 집에 방문한 기태와 그 아내의 몸을 킁킁거리며 똑같은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이 냄새는 그들이 처한 가난의 냄새, 즉 반지하 냄새임이 ‘반지하 냄새야, 이사 가야 없어져…. ’라는 딸 기정의 대사에서 드러난다. 박 사장은 기태의 냄새가 선을 넘는다며 혐오의 감정을 가감 없이 내비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넘을 수 없는 장벽과 마주친다. 어떤 호감도 혐오감도 '몸'으로 느끼는 것만큼 근본적일 수는 없다.”

-조지 오웰

 

‘냄새’는 본능적으로 혐오의 대상이 된다. 조지 오웰은 사람은 살인자나 남색자에겐 호감을 느낄 수 있지만, 입냄새가 지독한 사람은 절대 존경하고 사랑할 수 없으며 혐오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왜 손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가 보이는 살인자는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악취를 풍기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을까? 우리의 후각에는 다른 네 감각과 다른 어떤 특별한 힘이 있을까?

 




절대 피할 수 없는 감각후각


보기 싫은 장면이 있으면 눈을 감으면 된다. 듣기 싫은 말이 있으면 귀를 막으면 된다. 먹기 싫은 것이 있으면 입을 닫으면 된다. 다만 맡기 싫은 냄새를 피할 수는 없다. 우리가 호흡하며 살아가는 한 숨을 영영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후각은 절대 차단할 수 없는 감각이다. 살아 있다면, 누구나 냄새를 맡는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 개코?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을 흔히 ‘개코’라 부른다. 개가 인간보다 후각 능력이 월등하게 뛰어나기 때문이다. 흔히 인간은 타 동물보다 후각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스웨덴 린셰핑 대학교 동물학 교수 마티아스 라스키의 실험에 따르면, 인간은 원숭이, 쥐, 박쥐, 물개, 돼지보다도 냄새 구별 능력이 뛰어나다. 우리는 1,000개 이상의 후각 수용체를 가지며, 1조 개 이상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이 구별할 수 있는 색이 약 500만 가지라는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이다. 우리는 많은 냄새를 구별해서 지각하며, 우리가 받아들이는 수많은 냄새는 무의식적 판단과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냄새가 정서에 미치는 영향


그렇다면 냄새는 정서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까? 독일 킬 대학교의 생물 심리학자 베티나 파우제는 인간은 후각을 무의식적으로 활용하고 이를 직감으로 받아들인다고 설명한다.


후각과 정서는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낯선 냄새와 불안감의 관계를 연구한 호퍼의 실험이 있다. 실험에서 여성 실험 참가자들에게 오디션과 같은 상황 설정이 주어지고, 심사위원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게 된다. 이는 참가자 전원에게 심리적 스트레스를 주었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상승했다. 이때 참가자들 배우자의 체취를 맡게 하자 코르티솔이 그렇게 급격하게 증가하지 않았다. 반면, 낯선 남자의 냄새를 맡게 하자 실험 참가자들의 코르티솔 수치는 확실하게 증가했다. 익숙한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불안한 상황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고, 낯선 냄새로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후각과 정서의 강한 결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 뇌가 진화한 과정을 살펴보면 답을 알 수 있다. 최초의 포유동물은 주변의 화학적 환경을 잘 파악하기 위해 후각 체계를 발달시켰다. 후각 피질은 척추동물의 초기 뇌를 형성했고, 이 피질에서 감각의 중추인 변연계가 진화했다. 즉, 우리가 정서를 느끼는 주요 기관인 변연계는 후각 피질에서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후각 망울은 정서적 뇌의 모든 주요 부위와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냄새가 강한 정서적 반응을 끌어내는 것은 행동적인 관점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 부패하거나 불결한 존재는 오염과 질병의 위험을 가지고 있다. 냄새를 통해 우리는 더러운 존재가 건강을 해칠 위험에서 안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진화 과정을 통해 인간은 냄새나는 것에 혐오감을 느끼며 생존 확률을 높였다.

 



냄새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냄새는 ‘구별’에 특화된 감각이다. <감각의 역사>의 저자인 마크 스미스에 따르면 후각은 다른 어떤 감각보다도 ‘타자’를 만들어내고 특징짓는 역할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복종을 정당화하고, 계급 간의 동화를 막는 장벽 구실을 한다. 베티나 파우제는 후각은 타자를 생성하고, ‘냄새나는 존재’로 정의 내리고, 혐오가 가능한 대상으로 규정해 지배를 정당화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혐오 발언 중에는 ‘냄새’와 관련된 것이 많다.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로는 ‘마늘 냄새가 난다’, ‘커리 냄새가 난다’ 등의 말이 있다. 실제로 상대에게 그러한 냄새가 나지 않더라도 혐오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냄새가 난다는 표현은 타인을 구분 짓고 혐오하는 수단이 된다. 산업 혁명 시기 유럽에서도 부르주아 계급과 노동자 계급은 냄새의 유무로 구분되었으며, 노동자의 악취는 그들의 가난, 질병, 육체노동, 불결함과 연결되어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되었다. ‘냄새난다’는 표현은 실재하는 냄새에 대한 혐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서, 냄새가 실존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따돌림과 차별의 대상을 혐오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냄새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냄새는 질병과 오염을 피하고 생존하기 위한, 즉 구별 짓기를 위해 존재하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맡기 싫은 냄새라고 해서 숨을 참고 회피할 수도 없다. 다만 우리가 할수 있는 건 냄새를 혐오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냄새가 난다고 해서 혐오 받아야 마땅한 존재가 아니며, 혐오하는 대상에 실존하지 않는 ‘냄새난다’는 오명을 씌워 차별해서도 안 된다. 누군가를 마주 할 때 나도 모르게 냄새 때문에 인상이 찌푸려진다면 떠올리자. '진화적으로, 뇌과학적으로 나는 불쾌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이 상대를 적극적으로 혐오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작은 생각의 변화가 서로에게 더 너그러운 사회를 만드는 첫 걸음이 되지 않을까. 




*참고 문헌

1) 하홍규. (2021). 냄새와 혐오. 감성연구,(22), 29-57. 

2) 베티나 파우제. (2021). 냄새의 심리학 (pp. 1-353). n.p.: 북라이프.

3) 마크 스미스. (2010). 감각의 역사 (pp. 1-304). n.p.: 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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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8-29 06:4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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