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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노상현 ]



자아존중감의 줄임말인 자존감,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을 말한다. 이 자존감을 높이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이 질문의 답을 성인이 된 이후로부터 항상 궁금해 왔다.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우리의 부족함을 인정함으로써 자존감은 올라간다”와 같은 너무나도 뻔한 말들 말고,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알고 싶었달까. 그래서 필자는 지난 몇 년간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행동 지침을 나름대로 연구해 왔다.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이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같이 한 번 생각을 나눠보고 싶어 이 기사를 작성하게 되었다. 그러면 한 번 ‘노상현의 자존감을 높이는 3가지 행동 지침’으로 떠나볼까? 




명확한 목표


 


내가 자존감이 낮았던 시기들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남과의 비교’였다. “저 사람은 저렇게나 멋지게 성장하고 대단한 성과를 내는데, 왜 나는 이 모양일까...”,이런 생각이 날 괴롭히고 또 괴롭혔다. 

 

시간이 지나 지금의 난 더 이상 남과 비교하지 않고, 하더라도 내 삶의 원동력으로 삼곤 한다. 과연 자존감이 낮았던 시기와의 차이점이 뭘까? 그것은 바로 지금의 내겐 이루고 싶은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다는 점, 그 목표를 향해 내가 해야 할 구체적인 것들이 생겼다는 점이다. 

 

내게 생긴 뚜렷한 목표는 “지금의 나와 내가 비교하는 사람 간의 격차가 현재는 정말 크지만, 내가 열심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저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이나 멋진 사람이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 주었고, “저 사람은 저 위치까지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존경심 또한 갖게 해주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확히 설정함으로써, 나에 대한 확신이 생김과 동시에 남을 향한 시기 대신 진심 어린 응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유익한가?




자신의 삶 통제




자존감이 낮았던 시절, 내 생활패턴은 엉망이었다. 늦게 자서 늦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마다 먹고, 스마트폰에 빠져 살고... 그냥 정말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살면 아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을까?”라는 물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고, 저 시기가 오히려 내 정신 건강이 가장 좋지 않았던 때였다. 

 

그러다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규칙적인 수면, 건강한 식단, 하루에 1시간 독서, 하루에 1시간 운동, 이런 규율들을 내 삶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로 내 하루를 꽉 채우고 통제하기 시작하니 스트레스를 받을 줄 알았지만, 꾸준히 함으로써 나 스스로에게 느끼는 자랑스러움과 성취감이 훨씬 더 크게 다가왔다.

 

이렇게 내가 직접 나의 삶을 통제하려고 노력하니, “내 삶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라는 정체성이 확립되며 내 삶을 개척해 나가는 데에 훨씬 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이게 되었다. 내 삶을 통제하고 그것을 꾸준히 행함에서 오는 그 성취감의 힘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어마어마하니, 꼭 느껴봤으면 한다.




남들 모르게 하는 선한 행동




난 현재 장애인 특수학교에서 사회 복무를 하고 있고, 근무시간 총 9시간 중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점심시간 1시간은 내게 너무나도 소중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친 몸을 이끌고 점심을 먹으러 가던 중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한 학생을 마주쳐, 그를 반에 데려다주었다. 근데 선생님은 업무 때문에 굉장히 바빠 이 친구를 돌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쉬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음에도 점심시간을 반납해 그 학생을 돌봐주었다. 선생님은 미안해하시며 내게 혹시 점심시간이 아니냐고 물었지만, 난 아니라고 답하며 선생님을 안심시켰다. 

 

그 후 점심을 먹지 못하고 다시 근무하러 가고 있었는데, 신기하게 배고픔과 피곤함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나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뿌듯함만이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이때 얻은 깨달음을 그 당시 급히 메모에 적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앞으로 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의 희생에서 나오는 어떠한 대가를 위해 남을 돕는 것이 아닌, 정말 내 소신을 위해 그리고 진심을 다해 남을 도울 것이다. 타인을 위해 진심 가득 담아 최선을 다하는 행동들은 돌고 돌아 결국 나를 위한 것이고, 나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때 이후로 난 남들 모르게 타인을 돕는 행동을 꾸준히 해왔고, 이는 결국 “난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난 배려심이 깊고 정의로운 사람이야”와 같이 나에 대한 긍정적인 자아상으로 이어졌다. 어떻게 보면 나르시시즘적일 수 있지만, 그 근거를 내가 스스로 꾸준히 만들어 나간다는 점에서 기존의 나르시시즘과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들 모르게 하는 선행, 이것이 당신의 삶 속에 쌓이다 보면 어느샌가 자존감이 엄청나게 올라간 당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하고 또 장담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난 자존감이 낮았던 시기에 더 많은 걸 느끼고 배웠던 것 같다.

그렇기에 저 시기가 그리고 그때의 내가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자존감이 낮은 시기가 있기에 높은 시기도 있다는 걸,

자존감이 낮은 시기도 너무나도 소중한 당신 삶의 일부분이라는 걸 꼭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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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10-08 20: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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