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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정은 ]



지난 12월 3일 선포된 비상계엄은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트렸다. 여러 정치적 사건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도 꽤나 오랜 시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연속적으로 발생한 국가적 이슈는 자연스럽게 전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과거 국민의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이룩해낸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렸다는 소식에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 또한 움직이기 시작했다. SNS에서는 정치와 관련된 각종 게시물과 댓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집회와 시위는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민주주의를 외치는 국민의 목소리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이렇게 개인의 정치적 관심이 급증한 만큼, 요즘은 어딜 가나 ‘정치 이야기’가 흔히 들려온다. 정치가 국회 등의 국가기구를 넘어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학적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과연 ‘정치 이야기’가 ‘관계’에도 긍정적일까?




‘정치 이야기’에 우리가 격분하는 이유


사회 내부의 극심한 갈등은 대개 종교와 정치에서 비롯된다. 그 이유는 개인들의 견해가 완벽히 일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같은 환경과 경험 등을 공유한 친밀한 사람과도 종교, 정치적 견해가 완벽히 일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뉴욕 타임즈와 시에나 대학이 공동으로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19%가 정치로 인해 친밀한 사람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대답했다. 미국의 정치 양극화가 개인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정치 이야기에 몰입하는가?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넘어 혐오와 경멸 같이 격렬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보다 본질적인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본질은 ‘공포’?


문화인류학자 어니스트 베커는 그의 저서 <죽음의 부정>에서 인간 사회에 폭력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심리적 이유를 분석했다. 베커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와 정치가 항상 링 위에 올라서는 이유는 종교와 정치가 죽음을 부정하고 불멸을 추구하는 영웅심리와 깊이 관련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죽음은 주된 원동력이다. 인간은 죽음을 공포스러워 하지만 그와 비례해 죽음을 극복하고 싶어하는 무의식적 동기를 가지는데, 종교와 정치는 이러한 인간의 동기를 자극한다. 종교의 신과 정치의 지도자들은 마치 영웅으로서 상징적 불멸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들은 이들에게 동조하는 것을 넘어 본인과 동일시하기에 다다르며, 이는 심리적 안정과 불멸감을 가져다 줌으로써 무의식적 동기를 충족시킨다.

 

죽음의 불안에서 벗어나 안정과 불멸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개인이 동조, 동일시 하는 신념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자신의 신념과 다른 신념을 부정하고, 자신의 신념을 타인에게 전파하려고 하는 행위로 비롯된다. 베커의 이론에 따르면 절대적이라고 믿는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위협이므로, 강한 분노와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커크 슈나이더 박사는 ‘정치적 양극화’에 대해 핵심에는 실존적 두려움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즉, 사람들은 자신들이 중요한 존재가 아니고 언젠가는 제거되거나 소외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는데, 이가 정치적 양극화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에게 필연적으로 편견이 개입된다.




그들을 믿지 마세요


가장 위험한 것은 자신이 믿는 신념이 변하지 않는 진리이자 절대적 선이라고 믿는 것이다. 특히 정치에 있어서 이러한 태도는 더더욱 위험하다. 지도자들은 불멸과 영웅주의를 표방하지만, 이들도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도자들은 자신의 세력을 넓히고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선동 등 고도의 정치적 전략을 구사한다. 이는 당연하게도 어떠한 진리나 선이라고 할 수 없다. 

 

정치적 양극화는 오히려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널리 퍼뜨리고 공고히 하는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분열을 조장하고 대립하게 하는 ‘상호적 급진화’를 일으킬 확률이 높다. 이 의도적 양극화에 탑승하는 순간, 당신의 진정한 정치적 견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심리학자 파탈리 M.모가담 박사는 민주주의와 독재정치의 심리적 기초에 대한 연구에서 정치적 관점과는 무관하게 하나의 국민으로서 공동으로 추구하는 목표를 강조했다. 한 사람의 지도자에게 편향되어 배타적인 태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대화와 협력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면 쉿!


<당신을 사랑해요. 하지만 당신의 정치관은 증오해요.>를 집필한 진 세이퍼 박사는 정치적 견해를 달리 하는 50쌍의 부부를 인터뷰했다. 인터뷰의 결과는 “서로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관점에 누군가를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항상 논쟁에 빠져들 필요는 없으며, 때론 그저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어떠한 신념과 견해, 관점을 줄 세우지 않는다. A라는 주장은 1등, B라는 주장은 2등이라고 순위를 매길 수 있는 방법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은 개인의 자유다. 누군가가 어떠한 정치적 의견을 가지고 있건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이기에 우리도 개인의 관점을 중심으로 자유를 행사하면 된다.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 속에 상대방을 끌어들이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전장에 뛰어드는 기사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각오 정도는 하라. 이제 현명한 판단은 당신의 몫이다.




참고문헌

1) 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정치 이야기가 위험한 이유 [살며 생각하며], 문화일보, 2024.3.22

https://munhwa.com/news/view.html?no=20240322010329110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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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12-30 21: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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