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림
[한국심리학신문=유예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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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들 가운데 몇 번째 자녀로 태어났는지에 따라 정해지는 출생 순서는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가정 내에서 부모와의 관계는 물론이고 학교나 직장에서의 성취 뿐만 아니라 친구를 사귈 때도 영향을 준다. 평소 주의 깊게 살피지 않을 뿐 우리는 이미 출생 순서 영향이 가족 간의 관계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고 있다. 자녀가 셋인 가정을 예시로 들자면 보통 첫째에게는 집안의 기대에 따른 부담이, 둘째에게는 첫째와 막내 사이에서 치이는 서러움이, 막내는 귀여움을 받으면서도 자기 물건은 대부분 물려받은 남의 것이라는 억울함이 있다고 한다. 물론 예외적인 가정들도 있다. 그러한 가정들은 어떤 이유에서 다른 양상을 띄게 되었을까?
출생 순서 효과란? (The Birth Order Effect)
출생 순서 효과는 외동이거나 다자녀 중 첫째 혹은 둘째, 막내로 태어나 자란 것이 아동기의 학습 수준부터 성인 이후의 삶의 방향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이다. 출생 순서의 중요성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것은 아들러이다. 그 후 아들러의 이론들을 후속 연구하는 현대 학자들에 의해 출생 순서와 관련된 연구와 논문 발표가 꾸준히 이어졌다. 여러 변수들에 의해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한 사람의 성격 형성에 있어 출생 순서는 무시하기 어려운 요소임이 확인되었다.
막내인데 첫째 같은 사람들과 첫째인데 막내 같은 사람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리는 종종 ‘이 사람은 외동 같아.’ 라거나 ‘이 사람은 분명 첫째네.’와 같은 추측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추측이 맞을 때도 있지만 틀릴 때도 있다. 출생 순서가 사람들의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왜 예외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왜 나인가? - 출생 순서에 숨겨진 인간 심리>에서 저자 케빈 리먼은 출생 순서에 따라 발현되는 특성들과 그것의 장단점, 출생 순서가 삶에 미치는 영향, 출생 순서에 따른 양육방식에 대해 저술했다. 출생 순서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며 케빈 리먼이 밝힌 출생 순서 변수는 크게 두 가지, ‘가족 구성원의 관계’와 ‘부모의 양육 방식’으로 나뉜다.
1. 출생 순서의 첫 번째 변수: 가족 구성원의 관계
1) 공백 기간
케빈 리먼은 모든 가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자녀 출생의 공백 기간을 꼽았다. 이 공백 기간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첫째의 폐위’이다. ‘첫째의 폐위’란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외동으로 생활하던 첫째가 더 이상 집안의 유일한 귀염둥이가 아니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개념은 자녀가 둘 이상 있고 첫째가 귀염둥이 왕좌에서 내려온 경험이 이미 있었던 가정에서 다시 발생할 수 있다. 보통은 두 살에서 세 살 터울로 자녀들을 낳지만 여섯 살이나 일곱 살 터울로 셋째와 넷째를 낳는다면 가족 내에서 또 다른 가족이 형성될 수 있다. 예시로 첫째가 18살, 둘째가 16살, 셋째가 10살, 넷째가 8살인 경우 10살인 셋째는 첫째의 성향을 띨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2) 성별
자녀 간의 나이 차이 못지않게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자녀 간의 성별 차이이다. 첫째가 딸이고 아래로 남동생만 둘이 있는 경우 첫째 딸은 장녀의 성향과 외동의 성향을 동시에 띌 수 있으며 둘째는 장남의 성향과 둘째의 성향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반대로, 위로 누나만 셋인 막내아들은 장남의 성향과 막내의 성향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3) 유전적 특성
자녀의 외모나 키, 건강과 같은 신체적 특성도 변수가 된다. 첫째의 외모가 뛰어난데 둘째가 그렇지 못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 평범한 쪽의 자녀는 공부나 운동과 같이 자신을 돋보이게 할 다른 요소를 발전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리먼 박사의 의견이다. 또는 첫째가 심각한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경우 보통 막내에게 주어지는 부모의 관심이 첫째에게 쏠려 오히려 첫째가 막내처럼 막내가 첫째처럼 역할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
4) 쌍둥이
현재 한국에서는 시험관 시술이 늘어나면서 다태아 출산도 늘어나고 있다. 난임 시술 중 자궁에 배아를 2개 넣을수록 임신 성공률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몇 년의 터울로 첫째가 존재하는 다른 가정과 달리 몇 분 간격으로 첫째가 정해지는 쌍둥이 가정에서는 누가 첫째인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쌍둥이는 보통 순서와 관계없이 각자 첫째와 둘째, 막내의 특성을 두루 가지게 되는데 세쌍둥이 이상의 다둥이 가정에서는 첫 번째로 태어난 아이가 다른 쌍둥이들과 달리 첫째의 특성을 갖는 경우가 많다. 케빈 리먼 박사는 1997년 아이오와에서 태어난 일곱 쌍둥이를 예시로 들었다. 다태아의 경우 첫째들이 자궁 입구에서 다른 형제자매들을 받치고 있는 역할을 맡는다. 일곱 쌍둥이 중 첫째였던 케니는 아래 쪽에서 나머지 여섯 형제자매들을 받치고 있다가 가장 우량한 태아로 제일 먼저 태어났다. 의료진들로부터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을 받은 케니는 태어나기 전부터 장남이라는 역할을 부여 받고 그에 따른 기대를 받게 된 것이다.
5) 형제자매의 사망
첫째 아이가 4살 둘째 아이가 2살 셋째 아이가 신생아인 가정에서 첫째 아이가 사고로 사망하게 되면 둘째는 자연스레 첫째의 특성을 띄며 자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리먼 박사는 첫째 아이가 15살이고 둘째 아이가 10살인데 첫째가 죽게 된다면 10년 동안 둘째로만 살아온 둘째는 첫째를 잃은 충격과 갑자기 주어진 첫째 역할의 무게에 짓눌려 첫째의 특성을 갖지 못하고 힘들어할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6) 입양
신생아를 입양하면 출생 순서에 큰 영향을 받는 경우가 드물지만 4세 이상의 아이를 입양한 경우 입양 이전 가정(태어난 가족이나 복지시설 등)에서 아이가 가지고 있던 출생 순서의 영향이 새로운 가정에서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좋고 나쁘고 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복지시설에서 첫째 역할을 맡았던 아이가 새로 입양된 가정에서 나이 순서상 막내로 입양되었더라도 여전히 첫째의 성향을 보이는 것 뿐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외동이나 첫째, 둘째, 막내라는 역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식들을 짚어보았다. 왜 어떤 사람들이 특정 성향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어떤 사람들은 예외적인 모습을 보이는지에 대해 출생 순서의 변수인 가족 구성원의 관계를 통해 이해하고자 했다. 이어지는 기사 2부에서는 출생 순서의 또 다른 변수인 부모의 양육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참고문헌
1) 케빈 리먼. (2016). 나는 왜 나인가? (출생 순서에 숨겨진 인간 심리). 좋은책만들기
2) 다둥이 엄마 급증, 마냥 반길 수 없다. (2025). https://www.chosun.com/national/welfare-medical/2025/01/27/S45X6V5NOVF35FJKGYWG7GQP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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