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
[한국심리학신문=신동훈 ]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2> 빵과 복권(제1화)
"선생님, 안녕하세요? 내일이 없는 삶에 힘겨워하시는 선생님을 위해서 제가 자그마한 오늘의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선물은 하나. 빵과 복권. 둘 중 하나만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2>의 첫 화에는 딱지남(공유 분)이 노숙자들에게 빵과 복권을 나눠주는 장면이 나온다. 다만 그들이 고를 수 있는 것은 둘 중 오직 하나. 오늘 하루의 배고픔을 채워줄 확실한 양식을 얻을 것인가, 인생의 공허감을 잠시 잊게 해줄 불확실한 소망에 기댈 것인가?
작중에서 노숙자들은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복권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들이 좇은 일확천금의 기회는 모두 꽝으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딱지남은 그들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저는 선생님께 기회를 드렸고, 선생님은 선택을 했습니다. 이 빵을 버린 건 제가 아니라! 선생님들입니다."
당신이라면 빵과 복권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빵을 선택하는 심리와 복권을 선택하는 심리는 어떻게 다를까?
인간의 인지 체계
사람들은 동일한 현상도 저마다 다르게 식별하고 해석한다. 어떤 상황이나 사물, 사건과 같은 사회적 정보가 주어지면 우리는 각기 다른 인지 체계를 통해 정보를 해석한다. 그 다음 다양하게 추론하고 선택하고 판단하는 사회적 행동을 보인다. 예를 들어 ‘빵을 먹는 행위’에 대해 어떤 사람은 '씹고 삼키는 것’이라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영양분을 섭취하고 활력을 얻는 것’으로 생각한다. 전자는 구체적이고 표면적인 행위로 현상을 식별하는 반면, 후자는 추상적이고 본질적인 목표로 현상을 해석한다.
해석 수준 Construal Level
사회심리학에 따르면 주어진 정보를 제각기 다르게 받아들이는 까닭은 해석 수준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해석 수준에는 상위 수준과 하위 수준이 있다.
상위 수준의 해석은 추상적인 의미와 본질, 목적에 주목한다. 이는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적 정보를 이해하려 할 때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대상이 갖는 핵심적이고 불변하는 특성을 파악하고, 현재 이용 가능한 정보 이외의 것들을 고려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반면, 하위 수준의 해석은 구체적인 방법과 표면적이고 즉각적인 속성에 초점을 맞춘다. 즉,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대상이 지닌 우발적인 특성이나 상대적인 맥락을 반영한다. 이와 같은 해석 수준은 현재 상황에 기초해 정보를 판단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부적이고 현실적으로 실천하고 행동하도록 이바지한다.
이처럼 해석 수준에 따라 동일한 현상에 대해서도 상이한 선택과 판단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해석 수준은 무엇을 기준으로 구분되며, 어떤 요인에 의해 달라지는 것일까?
해석 수준 이론 Construal Level Theory
상위 수준의 해석은 바람직성(desirability)과 관련된다. 어떤 행동의 바람직성은 그 행동이 일으키는 최종적•궁극적인 결과와 연관이 있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전체적인 맥락을 조망하는 상위 수준의 해석이 주로 작용한다. 그와 달리 하위 수준의 해석은 실현 가능성(feasibility)과 관련된다. 어떤 행동의 실행 가능성은 최종적인 결과를 불러오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방법과 연관이 있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하위 수준의 해석이 우세하게 된다.
실제로 선택이 갖는 핵심적이고 상위적인 가치는 먼 미래의 선택에서 더 영향력이 크고, 부수적이고 주변적인 가치는 가까운 미래의 선택에 더 많은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해, 심리적 거리가 증가하면 바람직하지만 획득하기 힘든 대안의 매력은 커지고, 획득하기 쉽지만 덜 바람직한 대안의 매력은 감소한다.
해석 수준 이론. 심리적으로 거리가 먼 사건에 대해서는 더 추상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낙관적으로 판단하기 쉽다.
시간적 차원에서 심리적 거리가 있을 경우, 사람들은 미래를 계획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한 과신과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무리하게 계획을 세운다. 이것을 계획 오류라고 한다.
예를 들어, Liberman과 Trope는 학생들에게 다음 주 혹은 몇 달 뒤에 있을 활동에 얼마큼의 시간을 할애할 것인지 계획하도록 요구했다. 그 결과 일주일 후에 계획된 활동의 총시간이 몇 달 후에 계획된 활동의 총시간보다 상당히 적었다. 이것은 학생들이 먼 미래를 계획할 때는 상위 수준에서 해석하기 때문에 시간적 제약과 같은 구체적인 요인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아닌 게 아니라, 시험을 한 달 앞두고 세웠던 원대하고 '완벽해' 보였던 계획을 시험이 몇 주 혹은 며칠밖에 남지 않았을 때에는 고치고 수정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또 다른 연구에서 Liberman과 Trope는 참가자들에게 내일 또는 내년에 수행할 다양한 활동을 상상하고 묘사하도록 요구했다. 그 결과 '독서(책을 읽는다)' 활동에 대해 내일은 '페이지 넘기기'와 같은 하위 수준의 묘사가 많았고, 내년에는 '지식 넓히기'와 같은 상위 수준의 묘사가 많았다. 즉, 먼 미래를 계획할 때는 추상적인 단어를 더 많이 사용했고, 가까운 미래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단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
시간 할인 Time Discounting (Temporal Discounting)
시간 할인은 대상이 지닌 현재의 가치를 미래의 가치보다 높게 평가하는 현상이다. 가령, 사람들은 1년 뒤에 10만 원을 받는 것보다 지금 8만 원을 받는 것을 선호한다. 이처럼 대상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증가할수록, 그 대상이 지닌 가치는 감소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가정이다. 이와 같은 감소는 대상이 주는 가치 혹은 나에게 주는 보상이 적을 때 더 빠르게 일어난다.
한편, 해석 수준 이론에 따르면 어떤 사건에 대해 상위 수준의 해석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획득하고 성취하기는 쉽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대안은 심리적 거리가 멀수록 덜 매력적이다. 반대로 획득하고 성취하기는 어렵더라도 바람직한 대안은 심리적 거리가 멀수록 더 매력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도박이나 복권처럼 확률이 낮더라도 많은 돈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선택한다. 심리적 거리감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간 할인은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지나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가 지닌 가치는 현재(present), 곧 오늘 주어진 하루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때로는 복권, 일확천금에 대한 소망이 오늘 하루를 버티고 견디며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소망도 결국은 '오늘'이 선행되고 전제되어야 품을 수 있는 것이다. 참된 소망은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오늘 하루에 대한 믿음, 그리고 오늘 하루에 존재하는 '나'에 대한 믿음이다. '오늘'이 없으면 어제도, 내일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없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삶이란 본질적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어제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는 어제와 내일에 비해, 확실히 존재하는 것은 오늘이다. 오늘 하루들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살아 있으라는 명령(生命)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오늘 하루를 살아가게 할 양식을 구하고, 그만큼의 하루를 살아내면 된다. 또한 그만큼의 하루를 살아내게 한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면 된다. 이를테면 배고픔을 달래주는 빵처럼. 어쩌면 삶을 살아 나가는 데 충분한 것은 자그마한 오늘의 선물, 빵 하나일지도 모른다.
*참고 문헌
1) 정태연 외. (2024). 사회심리학(2판). 학지사
2) Trope, Y., & Liberman, N. (2000). Temporal construal and time-dependant changes in prefere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9, 876-889
3) Trope, Y., & Liberman, N. (2012). Construal level theory. In P. A. M. Van Lange, A. W. Kruglanski, & E. T. Higgins (Eds.), Handbook of theories of social psychology (Vol. 1, pp. 118-134). London, UK: 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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