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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고예림 ]


참 이상하다. 엄마는 내가 공부할 때는 잠잠하다가, 잠깐 아주 잠깐 쉬는 그 타이밍에 꼭 들어온다. 그리고는 항상 한마디를 한다. "공부 안 하니?" 정말 억울하다. 분명 몇 초 전까지도 공부하고 있었는데. 짜증을 내며 얼른 나가라고 하지만, 이미 내 기분은 엎질러져 버렸다. 다시 공부할 수 없게 된다. 분명 잘하고 있었는데 엄마의 한마디에 열심히 하려고 했던 의지가 팍 꺾여버린다.



공부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이 영상만 보고 일어나서 청소를 하려고 했는데, 엄마의 잔소리가 들려온다. 분명 하려고 했던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청개구리처럼 침대에 누워서 움직일 생각이 없어졌다. 직장 상사의 조언 아닌 조언을 들을 때도 다 아는 내용을 몇 번이나 듣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이건 비단 나만의 경험이 아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어머니도 엄마의 엄마 잔소리에 무언가를 하려던 의지가 사라진 적이 있을 거다.


사실, 엄마는 틀린 말을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내 말 듣지 않는 너에게는 뻔한 잔소리." 유명한 노랫말처럼, 잔소리는 애정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기분을 나쁘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한 마음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소리는 왜 우리의 의지를 꺾는 힘을 가질까? 잔소리가 왜 우리를 성숙한 인간에서 게으른 청개구리로 만들어버릴까?

 


청개구리가 되는 이유


이 현상은 우리의 자율성과 관련이 있다. 자율성은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심리 욕구 중 하나로,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경험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통합된 자아와 조화롭게 행동하려는 욕망이다.


자기 결정 이론은 자율성이 우리의 동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한다. 누군가의 잔소리에 우리가 계획하고 실행하려던 것에 대한 동기가 사라지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내적 동기와 자율성, 외부 보상과 강요를 비교해 보면 우리의 자율성이 우리의 동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청개구리가 되는 이유는 여기에 숨어 있다.


자기 결정 이론은 인간을 본래 성장하고자 하는 내적 동기를 지닌 존재라고 설명한다. 외부의 지시(압박)나 강요가 아닌, 자신의 자율성에 따른 행동에 가장 큰 동기를 느끼고,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공부와 부모님에게 칭찬받기 위한 공부는 내부적 동기와 외부적 동기로 나눌 수 있다. 외부로부터의 보상은 동기를 만들 수 있긴 하지만, 단기적이며 장기적으로 내적 동기를 약화시킬 수 있다.



1984년 Edward L. Deci와 Richard M. Ryan의 '외적 보상이 내적 동기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따르면, 과제를 완료하는 기한을 스스로 설정한 사람들의 성과가 외부에서 정해준 기한을 따르는 사람들보다 더 높았다. 즉, 본인이 기한을 정했을 경우 타인이 기한을 정해준 경우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기한'이라는 자기 결정적인 요소가 더 큰 동기 부여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자율성을 높인다면?


우리가 청개구리가 되는 이유는 엄마가 한 잔소리 때문에 해야 할 것만 같은 외부적인 압박을 느끼기 때문이다. 공부해야 한다면, 내가 왜 이 공부를 해야 하는지 내적 동기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외부적인 지시가 들어와도 내적 동기가 확실하면, 외부 자극에 의한 행동 실행 여부가 달라질 것이다. 내 행동의 동기부여는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걸 알면, 엄마의 잔소리가 내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내적 동기가 있다고 해도 우리의 어머니들은 잔소리를 너무 많이 하고, 우리는 어떤 잔소리든 듣기 싫으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정한 동기를 생각한다면, 남들의 행동으로 인한 마음의 저항이 줄어들 것이다.




혹시 나는?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남들에게는 쉽게 한 마디씩 참견을 늘어놓기도 한다. 자신도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면서 타인에게는 비교적 쉽게 툭툭 말한다. 친구가 고민을 털어놓을 때나, 아이들이 숙제를 할 때도 그렇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인도 내가 생각하는 무언가를 똑같이 느끼고, 어쩌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오래도록 지켜보며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만약 정말 정말 한 마디를 던져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면, "해라"의 말투가 아닌 "하는 게 어때?"의 둥근 화법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는 평소 타인이 듣기 싫어하는 잔소리를 남발하고 있지 않은지, 혹은 외부의 요구에 맞춰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 부디 잔소리가 없어지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1. 1) 에드워드 데시리처드 라이언. 2000. 자기 결정 이론(SDT). The Guilford Press
  2. 2) 윤대현, [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난 청기구리시키면 하기 싫고말리면 하고 싶어중앙일보, 2015.03.10., https://www.joongang.co.kr/article/1731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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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3-17 08: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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