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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정세현]

 


"나도 팀에 도움이 되고 싶은데 일이 너무 어려워.."
"내 의견을 내고 싶은데, 무시당하면 어떡하지..?"


우리는 직장이나 학교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이유는 대부분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다. 프로젝트를 완수하거나, 함께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 협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항상 편하지만은 않다. 자기 능력 범위를 벗어난 과제를 맡아 팀에 피해를 줄지 걱정하거나, 조직의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말하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직 내에서 위축되는 사람들이 가장 경계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오피스 빌런(Office Villain)"이다. 오피스 빌런이란, 사무실을 뜻하는 "오피스"와 영화 속 악당을 의미하는 "빌런"을 합친 말로, 조직 분위기를 해치거나 동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뜻한다. 실제로 2022년 10월, HR 기술 중심 기업 인크루트가 직장인 81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내 오피스 빌런 관련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9.5%가 "오피스 빌런이 주변에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특정 개인이 빌런으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개인의 성격, 의사소통 방식, 조직의 구조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조직의 구조적 요인이 오피스 빌런을 만들어내는 원인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조직의 역할 분배가 만들어내는 집단의 빌런]


집단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하게 세분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역할 분배가 적절하지 않으면, 개인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역할의 모호함을 초래하여 구성원의 성과를 저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조직 내 저성과자의 발생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사람들은 조직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저성과자를 종종 "빌런"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저성과자의 능력 부족이 아닌 "85/15 법칙"이다. 조직심리학자 에드워드 데밍(Edward Deming)이 제시한 이 법칙에 따르면, 저성과자의 85%는 시스템의 문제로 인해 발생하며, 나머지 15%만이 개인의 역량이나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즉, 저성과자가 생기는 주된 원인은 인사 시스템을 포함한 조직 구조와 역할 분배 문제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조직의 수직적 구조가 만들어내는 집단의 빌런]


과도한 수직적 계층문화를 가진 조직 구조 또한 특정인을 빌런으로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조직은 본래 “구조적 경직성”이라는 특성을 가지며, 기존의 방식과 체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변화가 조직에게 불확실성과 추가적인 비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조직 내에서 기존 틀을 벗어나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저항 세력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 


2015년 독일의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이 디젤 차량의 배출가스 시험을 조작한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그 당시, 기업 내 내부 엔지니어 몇 명이 경영진에게 이러한 조작이 불법이며 장기적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조직의 수직적 문화 속에서 이러한 경고는 묵살되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문제를 제기했던 일부 직원들을 노조와 경영진 모두가 따돌리고 해고하는 일이 있었다. 즉, 조직 내부에서 윤리적 문제를 지적한 사람들을 조직의 방향성과 맞지 않는 "불편한 존재"로 취급한 것이다.


조직의 계층적 구조뿐만이 아닌, 조직의 환경적 요인도 집단 내 빌런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이다. 조직 내 환경적 요인은 구성원들의 “심리적 안전감”이라는 개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구성원들이 처벌이나 비난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조직 환경을 의미한다. 만약 심리적 안전감이 낮다면, 구성원들은 자신의 의견이 배척될까 봐 소극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이처럼, 걱정으로 인한 소극적인 행동이 반복되면서 점차 조직과 맞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건강한 조직을 위한 해결 방법1 – 구성원들 간의 주기적인 피드백]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방안은 구성원들 간의 주기적인 피드백이다. 조직의 역할 분배가 개인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역할의 불명확함으로 인해 낮은 성과를 내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조직은 각 구성원이 자신의 역할을 문제없이 수행하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필요할 경우 역할을 재정립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실제로 미국의 OTT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인 "넷플릭스"는 구성원 간의 솔직하고 직접적인 피드백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4A” 지침을 통한 피드백 시스템을 시행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선의의 의도를 가지고 도움을 주려는 자세(Aim to Assist)와 실행할 수 있는(Actionable) 피드백을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이후, 피드백을 받은 사람은 이를 감사하는 태도(Appreciate)로 받아들이고, 피드백의 수용 여부(Accept or Decline)를 스스로 결정한다. 체계적인 A4 피드백 시스템을 기반으로, 넷플릭스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선두 주자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다.

A4 피드백 시스템처럼, 구성원들이 자신의 역할 수행 수준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비판보다는 성장에 집중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조직 내 저성과자의 수를 줄이면서 건강한 조직을 형성할 수 있다.

 



[건강한 조직을 위한 해결 방법1 – 조직 내 구성원을 위한 프로그램 사용]


조직 내에서 구성원 간의 갈등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를 효과적으로 조정하고 해결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구성원 간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도 건강한 조직 문화를 구축하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도입하면, 구성원의 직무만족도와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스트레스 문제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근로자의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에서 실제로 널리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이다. EAP는 상담, 컨설팅, 코칭 서비스를 통해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구성원 스스로 해결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문적인 프로그램으로, 이를 이용해서 구성원들의 만족도를 조사하는 연구는 과거부터 진행되어 왔다.


2018년, 직장인 24,36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제 설문 조사에 따르면, 3개월간 EAP를 이용한 후 직원들의 근무 태도와 건강 상태가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 평균 결근 시간이 7.4시간에서 3.9시간으로 감소했으며, 직장 참여도 향상과 스트레스 감소가 확인되었다. 또한, 삶의 만족도에 심각한 문제를 보고한 직원 비율이 프로그램 이용 전 38%에서 이용 후 17%로 줄어드는 유의미한 개선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결과는 EAP가 조직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며, 구성원의 건강한 조직 생활을 위해 전문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시사한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절반 이상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낸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인 만큼, 그들은 그곳에서 나름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우리 모두를 빌런으로부터 구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조직이 우리의 히어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1) 권수연, “직장인 10명 중 8명, '직장내 오피스 빌런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뉴스앤잡, 2022.10.19, https://www.newsnjob.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71 

2) 명순영, 반진욱, “오늘도 속 썩이는 오피스 빌런 ‘저성과자’ : ‘일못러’, 버리고 갈까? 고쳐 쓸까?”, 매경ECONOMY 통권 제2220호, ㈜매일경제신문사, p65-59, 2023.08 

3) SBS뉴미디어부, “내부고발자 무시하고 해고한 VW의 '어두운' 역사”, SBS NEWS, 2015.10.14,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215481

4) 최호진, “직원 피드백 문화 만든 넷플릭스, 인재 모으기 성공”, 동아일보, 2024.12.05,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41205/130571868/2

5) Mark Attridge, David Sharar, David A, 1961-, DeLapp, Gregory P, Vender, Barb, "EAP Works: Global Results from 24,363 Counseling Cases with Pre-Post Data on the Workplace Outcome Suite (WOS)", Institute for Health and Productivity Management, 2018-12, https://archive.hshsl.umaryland.edu/entities/publication/036e4198-7a29-43e2-94d9-dcfd5faba512

6)김성건, “EAP의 도입 및 활성화에 관한 연구-LG하우시스 사례를 중심으로-”, 디지털융복합연구, 제11권, 제10호, 331-340,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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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3-17 08: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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