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우
[한국심리학신문=송연우 ]
아~ 초등학생 때가 매일 놀 수 있어서 좋았지.
아~ 중학생 때가 공부도 덜 어렵고 즐거웠지.
아~ 고등학생 때가 그래도 풋풋했지.
아~ 대학생 때가 젊고 패기 넘쳤지.
아~ 결혼하기 전이 자유롭고 편했지.
아~ 애 낳기 전이 덜 귀찮고 덜 힘들었지.
살면서 힘들고 지치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면, 우리는 자주 과거를 돌이켜보곤 한다. 어릴 적이 좋았지, 하고 내뱉는 한숨은 덤. 근데, 저 문장들을 다시 한번 보자. 돌이켜보면 우리의 모든 시절이 다 좋았다는 걸 알겠는가? 왜 유독 과거를 그리워하게 되는 걸까?
기억 편향, 그 너머에는
제가 다닌 초등학교에도 버건디 빛깔의 커튼이 있었답니다.
지난 시절에 대한 좋은 추억뿐만 아니라 나쁜 기억까지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노력해 본 적, 다들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 여전히 뇌리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시절, 졸업 사진을 찍기 위해 6개의 학급이 돌아가며 강당에 모였다. 가장 맨 앞, 맨 오른쪽 자리에 앉았다. 사진사는 우리 학급 학생들에게 손가락으로 브이(V) 포즈를 취하라고 말했다. 필자는 검지와 중지로 만든 브이가 아닌, 엄지와 검지로 만든 브이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사진사가 “XX 놈아, 그거 말고!”라 외치자, 학급의 모든 학생이 웃었다. 담임 선생님마저 작게 웃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너무 당황하고 속상했던 제 마음과는 180도 다른 분위기에 울컥하는 마음을 누르고 억지로 웃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기억나는 걸 보면, 여전히 큰 상처로 남아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 기억을 떠올릴 때면, ‘그래도 추억이 많은 강당에서 사진을 찍은 게 나쁘지만은 않았어’라는 생각을 종종 기억에 덧붙이곤 한다. 나빴던 느낌을 계속해서 떠올리기 싫다는 핑계로 기분을 합리화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초등학생으로 살았던 6년의 삶이 조금 그리워지기도 한다. 이렇듯 과거에 대한 좋은 추억, 나쁜 일조차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여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려는 ‘기억 편향’의 경향성을 ‘므두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이라고 부른다.
'므두셀라 증후군'이란
므두셀라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노아의 할아버지로, 인물로, 969살까지 살았기에 장수의 대명사로 유명하다. 므두셀라는 나이를 먹을수록 과거를 떠올릴 때 좋은 기억만 떠올리고,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가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가진 나쁜 기억을 모두 지워버렸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므두셀라 증후군이란 용어는 아일랜드의 소설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가 1921년 출간한 ‘므두셀라로 돌아가라(Back to Methuselah)’에서 처음 사용했다. 그가 사용한 ‘므두셀라’란 단어 또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현대 사회에서의 현실을 비판하고, 여유롭고 한적했던 과거의 삶을 그리워하며, 그 향수를 표현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의미한다.
과거가 그리운 '어른이'들을 위한 마케팅
이런 심리를 이용한 것이 바로 ‘레트로 마케팅(Retro Marketing)’이다. 레트로는 회상, 추억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Retrospect’의 약자로 1970년대에 마케팅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상품으로 소비자층을 유혹하는 판매 전략을 의미하는 ‘레트로 마케팅’은 ‘과거를 빌려와 현재를 파는’ 것이다. ‘새로운’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New’와 결합한 ‘뉴트로(Newtro)’ 또한 신조어로서 현 2~30대의 소비 유행을 끌어나가고 있다.
현대에서 빈티지와 레트로 문화를 누리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과거의 모습 그대로 과거의 물건과 문화가 복원되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과거의 모습을 기반으로, 현대의 문화와 선호를 반영하여 새롭게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첫 번째 방식을 드러내는 현상으로는 사람들의 빈티지 가구, LP와 바이닐, CD와 CD 플레이어, 필름 카메라 등 아날로그 감성이 담긴 물건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특히 편의점(GS25, CU 등)은 레트로 마케팅을 선도하는 대표적인 사업장 중 하나다. GS25는 지난 2023년 10월 ‘미니붕어빵’, ‘즉석슈크림붕어빵’을 선보이며 동절기 차별화 간식 상품 라인업을 확대해 왔다. CU는 ‘자이언트 추억의 밀 떡볶이’, 호빵, 어묵과 호떡 등을 출시하며 4~50대의 ‘그 시절 간식’에 대한 그리움과 반가움 모두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2023 앤서니브라운 크리스마스 씰 세트 (크리스마스씰 기부스토어, https://loveseal.knta.or.kr/christmas/mobile/detail.html?idx=450
특히 GS25는 ‘크리스마스 씰’을 소재로 두 가지 방식 모두를 이용한 마케팅을 진행했다. 과거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에 우표 옆에 붙인 크리스마스 씰을 생산하여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했다. GS25와 대한결핵협회와 협력하여 진행된 <2023 크리스마스 씰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 속으로’>에는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대표작 캐릭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와 웃고 있는 아빠, 아기 곰 등 귀엽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캐릭터들이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노렸다. 그뿐만 아니라 GS25는 씰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를 겨냥하기 위해 ‘씰&굿즈 세트’ 또한 기획하며, 대한결핵협회를 위한 성금과 GS25의 매출 두 마리 토끼 모두 잡았다.
2~30대 주 소비층이 된 MZ 세대와 ‘레트로’를 그리워하는 4~50대 소비층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인 만큼, ‘빠른 유행 변화와 대량 생산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하고 새로운 개성’을 추구하고 ‘어릴 적 행복했던 기억 속에 자리한 먹거리와 놀거리’를 좇는 행보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참고문헌
1) 김주헌. (2025). 레트로와 빈티지 트렌드: 과거의 향수가 아닌 새로운 감성. 소비자 평가. http://www.iconsumer.or.kr/news/articleView.html?idxno=27351
2) 박병률. (2020). 좋은 기억만 떠올리는 ‘므두셀라 증후군’. 주간경향.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4&art_id=202002211600421
3) 신범수. (2024, 1). 레트로 열풍 이번엔 편의점이다. 넥스트 이코노미,(236), 54-55.
4) 유경희. (2023, 3). Art 유경희의 ‘그림으로 보는 유혹의 기술’ | “과거는 다 좋아” 므두셀라 증후군 : 12살 연상 카페 여주인 평생 사랑한 반 고흐. 매경이코노미,, 80-81.
※ 심리학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에 방문해서 확인해보세요!
※ 심리학, 상담 관련 정보 찾을 때 유용한 사이트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심리학, 상담 정보 사이트도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재미있는 심리학, 상담 이야기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yeonu82@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