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현
현역 마지막 타석, 비록 명백한 아웃이었지만 언제나 그랬듯 1루로 전력질주하는 양준혁[1].
꿈과 희망, 낭만과 기쁨, 도움과 친절함이 가치를 잃어버린 시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는 말에, "잘 사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인데?" 하며 생각보다는, 정답을 갈구하는 시대. 그리고, 꿈과 낭만을 선택하여 "보기에 잘 사는 삶"을 일궈낸 사람들을 보며, "저것이 정답이다"라고 소리치는 시대. 내 옆 사람을 믿지 못하고, 믿지 않는 시대.
심리학의 제자리
그 속에서 심리학은, 과학이라는 아주 큰 시대적 유행에 난도질당해 그 본질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사실 본지에 게재된 글들, 그리고 심리학이라는 주제로 작성된 수많은 글들을 읽으며, 마음 어느 한켠이 공허했음을 돌아본다. 여타 함께 열심히 달려왔을 동료 기자분들과 그들의 수고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과학으로 점철되어 과학으로 끝이 나는, 오늘날의 심리학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심리학의 본질은 결국 "사람"이다. 사실, 모든 학문의 본질은 결국 "사람"이다. 이 글을 읽고 있을지 모를 당신의 전공과 생업이 무엇이라 한들, 그곳에서 당신과 당신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의 존재와 기능, 상호작용과 부작용들을 모두 제하면, 당신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혹시 유의미한 어떤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것을 확인한다면, 제발 알려주길 바란다.
그래서 완전한 전향을 의도하고 기획하여 심리학의 제자리를 찾아주고자 노력했다. 우습지 않은가? 인본주의를 외치며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선언하자, 결국 대부분의 공간에서는 불안과 염려, 걱정과 혐오만이 넘쳐나게 됐다. 사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도, (아직은) 자신들의 인지적 능력을 뛰어넘는 어떤 존재도 생산할 수 없다. 다만, 사람은 "감동"을 안다. 그것이 심리학이 비춰야 할 공간이다.
글의 제자리
지난 한 달 간, 당신은 총 몇 권의 종이책을 읽었는가? 아니면, 혹시 몇 편의 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였는가? 그것도 아니면, 몇 개 단어 정도를 읽었는가? "글." 심리학의 제자리와 더불어 "글"의 시대적 역할에 대해서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금붕어는 7초 정도의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 본인 또한 쇼츠와 릴스 등의 짧고 휘발성이 강한 컨텐츠의 자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글은, 너무나 길다.
감동을 주는 글
그래서 심리학과 글의 제자리는 공통된 지점을 가리킨다. "깊은 울림을 주는 것." 잠시의 쾌락을 위해서는, 쇼츠와 릴스면 충분하다. 세상을 표면적으로 잘 이해하고 싶으면, 과학적인 심리학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울림을 주고 싶다면, 어느 것 하나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시간의 개념을 일부 이해하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과거의 존재를 붙잡고 산다. 치매가 질환으로 분류되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렸을 적 '사랑의 요정,'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폭풍의 언덕'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기억이 있다. 그런 상상을 바탕으로 형성된 기억, 아니, 추억은, 스물하나가 된 지금도 생생하다. 적어도, 책의 이름과 내용,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등장인물은 선명히 남아 있다. 그것이 글의 힘이다. 그리고 과거의 순간으로 사람들을 데려다주는 것이 심리학의 역할이다. 그러면, 당신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혹은 뜨겁지만 그리 가볍지는 않은, 해리포터의 그것과도 같은, 눈물이 맺혀 있을지도 모르겠다.
줄이며
여섯 편의 기획과 여섯 편의 짧은 기사를 작성하며 '잘들 읽고 있는지' 궁금했다. 의견나누기 게시판에서 기획기사를 보며 길게 소회를 남겨준 동료 기자분들을 보며 한 명이라도 내가 원했던, '감동'이 있었다면 성공이라고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많은 힘과 노력을 쏟은 기획기사보다, 노력은 덜 들었지만 소위 '어그로'가 끌리는 제목을 가진 기사의 조회수가 현격히 높은 것을 보며 기성언론사의 기자들에게 잠시나마 공감할 수 있는 지점도 있었다. 또 홍보와 마케팅의 중요성도 알게 됐다. 아무리 양질의 글을 만들어내도, 결국 잘 알려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조직의 규율이 글의 본질보다 중요해질 때 어떤지를 느끼고 본지에 글들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본지에도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마지막이지만 가장 중요한, 모든 과정을 인도하시고 이루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출처:
1. [사진]양준혁, '마지막 타석 전력질주' [OSEN]. (2010). https://m.sports.naver.com/general/article/109/0002138964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1883
스포츠 너머의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