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현
[한국심리학신문=엄정현]
김영웅 [15]
올 한 해는 프로야구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던 한 해였다. 2025시즌 누적 관중 수는 총 1231만명으로 마무리됐고, 주변의 야구를 본다는 사람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23]. 사람들은 왜 이렇게 야구에 열광했을까.
많은 팬들이 응원하는 팀의 잊지 못할 순간들을 기억하겠지만, 특히 삼성 라이온즈의 팬들은 올 가을을 잊지 못할 것이다. 플레이오프(PO) 4차전 패색이 짙었던 순간, 김영웅은 3점홈런 두 방으로 팀을 5차전까지 끌고 갔다. 아쉽게 5차전은 한화에게 내주었으나, SSG와의 준플레이오프(준PO), NC와의 와일드카드결정전(WC결정전) 모두 소위 ‘도파민이 터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SSG와의 준PO 4차전 8회말 동점 상황에서 터진 디아즈의 2점홈런과 이재현의 백투백 홈런, NC와의 WC결정전에서 보여준 원태인의 6이닝 무실점 호투 등, 삼성 팬들은 가을의 모든 순간이 영화 같았다고 말한다[3].
결과적으로 삼성 라이온즈는 우승은커녕 한국시리즈(KS)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삼성의 팬들이 위와 같이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삼성은 5월 두산과 한화, LG에게 내어준 8연패[1]와 8월 8위까지로의 추락[2] 등으로, 우승은 고사하고, 가을야구 진입에 필요한 5위도 바라보지 못했다. 그랬던 팀이, 가을야구에 진출한 다섯 팀 중 가장 오랫동안 가을야구를 즐겼기 때문이다.
언더독
다윗과 골리앗 [16]
이렇듯 객관적인 전력 상 어떤 경쟁에서 질 것으로 예상되는 주체, 즉 약자를 보통 ‘언더독’이라 부른다[4]. 대부분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이길 것으로 예상하는 그들이 이기고, 언더독은 패배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때때로 언더독이 모든 예상을 깨고 승리를 쟁취하는 순간, 모두가 열광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고 위로를 받는다. 그렇다면, 언더독은 어떻게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엄청난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일까.
그대들의 예상은 틀렸다
레스터 시티의 15-16시즌 우승 [17]
사람들이 언더독으로 예상하는 주체들이 때로 극적인 역전을 일궈내는 첫 이유는, 자신을 ‘언더독’으로 규정하는 그 기대가 틀렸음을 증명하려는 본능 때문이다[5]. 2024시즌 KBO리그가 개막하기 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성 라이온즈가 최종 5위 안에 들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니었다. 오히려 5월에 들어 팀은 상위권에 위치해 있었고, 끝내 2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특히, 역전패 최소 4위(31패), 역전승 1위(40승)를 기록했다[6]. 이런 팀의 성적에 대해 시즌이 한창이던 5월, 베테랑 투수 임창민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했다.
임창민 선수 인터뷰 [18]
“모든 사람들이 저희를 꼴찌라고 예상했는데, 저희들끼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에 팬들도 같이 즐기면서 계속 올라가는 경기를 하겠습니다”
이런 심리는 단순히 어떤 한 선수 또는 특정 팀만이 가진 역량이나 특성, 성격이 아니다. 연구는 이것을 잘 설명해주는데, 가령 어떤 당사자에 대해서 사람들이 그를 언더독이라고 인식한다고 하자. 이때, 당사자가 생각하기에 본인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식이 그리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당사자는 그 인식이 틀렸음을 증명하고자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열망은 단순 열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당사자의 성과를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5].
2025시즌 KBO리그 통합우승팀 LG 트윈스 [19]
그런 의미에서 2025시즌 KBO리그 통합 우승팀 LG 트윈스의 주축 선수들이 김현수[10], 박해민[9], 신민재[8] 등 모두 드래프트에서 실패하고, 육성선수*로 데뷔한 선수들인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모두가 그들을 향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그들은 끊임없이 그런 시선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을까.
누가 언더독인가: 도전하는 입장, 위협 받는 입장
삼성 라이온즈 박진만 감독 인터뷰 [20]
다음 이유는, 이미 그들에 대한 세간의 기대가 크게 없기 때문에 압박감과 부담감이 적다는 점이다[7]. 소위, 잃을 것이 없는 것. 실제로 올시즌 준PO 진출 확정 이후 삼성 박진만 감독은, "이제 우리가 도전하는 입장이니 압박감을 내려놓고 편하게 풀어갔으면 한다"고 언급했다[14]. 한 이론은 운동 선수들이 경쟁 상황에서 항상 도전하는 입장과 위협 받는 입장, 둘 중 하나로 경기에 임하게 된다고 설명한다[11]. 그리고 자신이 도전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하는 선수는, 위협 받는 입장에 있는 선수보다 더 뛰어난 역량과 성과를 보인다.
단순히 '내가 도전하는 입장'이라는 인식이 어떻게 선수들의 성취에까지 영향을 미칠까. 이를 위해서는 선수들이 어떤 요소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자아 효능감이다. 스스로가 이 경쟁 상황에서 주어진 과업을 잘 해낼 수 있다는, 본인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둘째는 통제력인데, 이는 주어진 경쟁 상황에서 당사자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나 사건들에 적응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말한다[11], [13].
마지막은 목표의 성격이다. 단순히 '옆에 있는 다른 경쟁자보다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잘 하면 된다' 정도로 목표를 설정하는 경우보다 '다른 사람들과는 관계 없이 내가 절대적으로 어떤 기능을 완벽히 통달할 것이다' 수준으로 목표를 설정하는 경우에 그 사람은 위협 받는 입장이 아닌, 도전하는 입장이 된다. 그러니, 상대적인 '성과'(performance-avoidance)에 집중하기보다 절대적인 '성취'(mastery-approach)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12].
이론적으로는 복잡하지만, 본질은 간단하다. 첫째는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확신이다. 둘째는 예측 불가능한 경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 마지막은 다른 사람들에 좌우되며, 그저 그런 수준의 목표가 아니라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지 여부이다. 이 세 가지를 모두 가진 선수라면, 역설적이게도 도전하는 입장이 되어 부담감과 압박감 없이 경기를 치르고 더 나은 성취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할 수 있다
프리미어리그 관중들 [21]
“매 순간이 감동이었고, 보면서 ‘인생의 축소판’을 느꼈다고 해야 될까요? 모든 감정을 다 느낀 것 같아요.”[3]
제20회 미 공군 마라톤 대회 [22]
“그깟 공놀이.” 사람들이 스포츠를 평가절하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스포츠가 ‘그깟 공놀이’에 불과했다면, 지금의 스포츠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스포츠에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빛을 볼,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에 때로는 열광하고, 때로는 좌절한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도전과 경쟁에 처해 있다. 영웅은 멀리 있지 않다.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해 정진하는 우리가 바로 우리의 영웅이다.
- 찾아보기
*육성선수 : 매년 열리는 신인선수 드래프트 이후, 미지명 선수들 중 구단이 추가로 지명하여 입단한 선수. 이전에는 신고선수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일반적으로 기회를 얻기가 힘들고, 소리소문없이 프로 세계에서 모습을 감추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극소수의 경우는 주전 선수를 넘어 구단의 스타 플레이어가 되기도. 언더독의 전형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저자).
- 참고문헌
1. ‘8연패’ 삼성 괜찮나, 왜 토종 에이스 원태인 대신 5패 이승현이 먼저 선발일까 [OSEN]. (2025). https://www.osen.co.kr/article/G1112567027
2. “164만 관중 열기 속 성장”…삼성, 4위로 시즌 마감과 불펜 과제 [topstarnews]. (2025). https://www.topstar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51027
3. 더 높은 곳을 향해, Fly Lions l 2025 정규시즌&포스트시즌 다큐멘터리 [YouTube]. (2025). https://www.youtube.com/watch?v=LXQPPNkGBvs
4. 언더독 효과 [상식으로 보는 세상의 법칙 : 경제편].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431802&cid=58393&categoryId=58393
5. Samir Nurmohamed. (2020). The Underdog Effect: When Low Expectations Increase Performance.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Vol. 63, No. 4.
6. 정규시즌 2위 사자군단 “가을야구서 더 좋은 모습 보일 것” [영남일보]. (2024).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40929010003452
7. Inspired by Chelsea - Psychology of The Underdog: Why Pressure Raises, Not Breaks, the Few Who Thrive in It [Linkedin]. (2025). https://www.linkedin.com/pulse/inspired-chelsea-psychology-underdog-why-pressure-raises-tembhekar-t23zf
8. '대주자요원' 신민재, LG 새 2루수로 정착할까 [OhmyStar]. (2023).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939667&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9. 박해민, “아직 간절함 잊지 않았다” [MK스포츠]. (2015). https://www.mksports.co.kr/news/sports/6538340
10. 김현수 이적이 김재환 길 열었다, 그럼 '잠실 빅보이'도 김현수 떠나야? LG의 생각은 [SPOTVnews]. (2025). https://www.spotv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81556
11. Meijen, C., Turner, M., Jones, M. V., Sheffield, D., & McCarthy, P. (2020). A Theory of Challenge and Threat States in Athletes: A Revised Conceptualization. Frontiers in psychology, 11, 126.
12. S. Runjuan. (2024). 중국 청소년 테니스 선수용 2X2 성취 목표 성향 설문지 개발 및 검증(박사학위논문). 전북대학교대학원 체육학과
13. The Theory of Challenge and Threat States in Athletes (TCTSA): Applying the model with athletes through imagery scripting. [BELIEVEPERFORM]. https://members.believeperform.com/the-theory-of-challenge-and-threat-states-in-athletes-tctsa-applying-the-model-with-athletes-through-imagery-scripting/
14. 삼성 박진만 감독 "타자들 부담 내려놓길…SSG 김건우 2차전 선발 예상 못해"[준PO] [뉴시스]. (2025).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1009_0003357050
15. "0-4→7-4 대역전" 삼성...김영웅 연타석 3점 홈런 폭발, 대전으로 간다 [마니아타임즈]. (2025). https://share.google/6KppHFHzf9p9AT3Vh
16. David And Goliath Story With Moral For Kids [iNteLLi education]. (2022). https://share.google/KRUey4Sf9c0zZHFi6
17. Leicester City won big by spending small [FOSSE POSSE]. (2017). https://share.google/FHcciW3SqtTy5mJFh
18. 240511 삼성라이온즈 임창민 선수 인터뷰 l "모든 사람들이 저희를 꼴찌라 생각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YouTube]. (2024). https://youtu.be/L_WS4Aw7ST0?si=1CR2dRInZtrGtLlZ
19. LG, 우승했지만 대전서 샴페인 샤워는 없었다…왜? [한겨레]. (2025). https://share.google/uuqvzzehtmarXqFVX
20. 박진만 감독, 경기 마치고 인터뷰 [포토엔HD] [nate 스포츠]. (2025). https://share.google/tacxUkUgVkZurRwlx
21. Sky Sports to give fans the option of listening to recorded CROWD NOISE when Premier League returns to our screens in front of empty stadiums [Daily Mail]. (2020). https://share.google/YYue6fmKTTrQoLvlP
22. 20th Air Force Marathon a huge success [Wright-Patterson AFB]. (2016). https://share.google/0kDSDE1dOXGzFnIYV
23. [피플&포커스] 프로야구 1200만 관중 시대, 20·30대 여성 팬덤 주류로 등판 [천지일보]. (2025). https://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3344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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