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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정연수]



상담자의 진정성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상담 장면에서 ‘진정성(authenticity)’은 단순한 윤리적 덕목을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깊은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다. 이는 특히 정서적 안정감과 신뢰 형성에 민감한 내담자에게 있어, 상담자의 존재 방식 자체가 상담의 효과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경험한 심리상담 실습 현장은 이 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진정성’은 어떤 스킬이나 기법 이전에, 상담자 자신의 내면과 끊임없이 마주하고 성찰하는 고유한 여정이라는 사실을 직접 체득할 수 있는 자리였다.


서울대학교 홍지선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 「상담자가 상담관계에서 경험한 진정성 발현 과정」은 이러한 통찰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귀중한 연구다. 홍 박사는 상담 경력 15년 이상, 평균 25.5년의 숙련 상담자 18인을 심층 면담하고, 그들이 상담 과정에서 경험한 진정성의 자각과 발현 과정을 근거이론(Grounded Theory) 접근을 통해 분석하였다. 이 논문은 상담자의 내적 변화가 단순한 ‘기술적 성장’이 아닌 ‘존재의 성숙’이라는 점을 실증적으로 밝혀낸다.


연구에 따르면, 진정성의 발현은 ‘비진정성의 자각’에서 출발한다. 이는 상담자가 스스로 진실하지 못한 태도, 혹은 사회적 역할에 갇힌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필자 역시 실습 초반 ‘좋은 상담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내담자의 불편한 정서나 돌발 반응 앞에서 당황하고 회피하고 싶은 충동을 자주 경험했다. 특히 내담자가 “이 이야기 안 하면 안 돼요?”라고 말했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주제를 돌렸던 순간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 장면 뒤에는 평가받고 싶지 않은 나, 틀리고 싶지 않은 내가 있었다. 그 순간이야말로 진정성과 가장 멀어진 지점이었고, 동시에 그것을 자각한 출발점이기도 했다.


논문에서 제시된 다음 단계는 ‘치열한 내적 씨름’이다. 상담자는 자신의 감정, 기대, 불안과 맞서 싸우며, 상담 장면 속에서의 반응을 끊임없이 반추하고 성찰한다. 필자에게는 회기가 끝난 뒤 상담일지를 쓰는 시간이 바로 그 씨름의 장이었다. “왜 나는 그때 침묵했을까?”, “진심은 무엇이었나?”,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은 매 회기마다 반복되었다. 상담은 단지 내담자만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상담자가 자기 자신과 깊이 만나야 하는 시간임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들이었다.이러한 내적 씨름을 거치며 상담자는 ‘자기 및 타인의 수용’으로 나아간다. 자신의 불완전함, 즉시 해결해주지 못하는 무력감조차 인정하며, 내담자 역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로 확장된다. 어느 회기에서 한 아동 내담자가 그림 그리는 것이 싫다고 말했을 때, 예전 같았으면 대체 활동을 급히 제안했겠지만, 그날 나는 단순히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했다. 어떤 개입보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함께 받아주는 것이 먼저임을 배운 순간이었다. 이후 아동은 스스로 블록 놀이를 제안했고, 그 속에서 이야기가 자연스레 피어났다. 이는 ‘해야 하는 상담’이 아닌 ‘함께 존재하는 상담’으로 전환된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홍지선 박사는 이러한 변화를 ‘관계에 기꺼이 관여하기’라 표현한다. 상담자는 더 이상 전문가로서의 완벽한 태도를 유지하려 하기보다, 내담자와 정서적으로 연결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관계에 몸을 담그게 된다. 이때 진정성은 특정 말이나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함께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실습 마지막 회기, 한 아동이 “선생님은 내가 좋아요?”라고 물었을 때, 나는 잠시 멈추었다가 조용히 “응, 나 너랑 이야기할 때 참 좋아”라고 말했다. 그것은 이론으로 배운 공감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느낀 진짜 감정이었다. 진정성은 그 순간 자연스럽게 발현되었고, 내담자 역시 그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이러한 과정은 단선적인 변화가 아니라 순환적인 흐름이다. 홍 박사는 “비진정성의 자각 → 내적 씨름 → 수용 → 관계 관여 → 존재의 누림”이라는 일련의 단계를 제시하며, 이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성숙해지는 여정이라고 설명한다. 상담자의 진정성은 한 번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와의 관계, 자신에 대한 인식, 그리고 삶의 태도 속에서 계속해서 새롭게 구성되고 드러난다. 상담실 안에서의 작은 진실이 상담자 개인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진정성 발현에 영향을 주는 요인도 복합적이다. 연구는 환경적 요인과 개인내적 요인을 제시하며, 전자는 의미 있는 타인으로부터의 수용과 동료 집단과의 교류, 후자는 정서적 측면의 수치심 극복과 인지적 측면에서의 정신화(mentalization)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필자 역시 실습 기간 중 받은 슈퍼비전이 큰 힘이 되었다. 슈퍼바이저는 내가 실수했을 때도 비난하지 않고, 감정을 충분히 다루도록 지지해주었다. 그 경험은 나 스스로를 더 신뢰할 수 있게 만들었고, 내담자 앞에서 더 솔직해질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요컨대, 상담자의 진정성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단기간에 습득되는 역량이 아니라 삶 전체를 통해 다듬어지는 존재 방식이다. 이 진정성은 내담자에게는 신뢰와 안정감을, 상담자에게는 흔들림 없는 내적 중심을 제공한다. 필자의 실습 경험은 이 점을 몸으로 깨닫게 해주었다. 진정성은 완성된 모습이 아니라, 진실하려는 ‘의지’와 ‘연습’ 속에 존재한다. “잘하려고 애쓰는 나”에서 “있는 그대로 진심으로 반응하는 나”로 옮겨가는 이 여정은, 결국 상담자 자신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길이기도 하다.



진정성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상담자는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때로는 흔들리고, 불안하고, 잘 모르겠는 상태로 내담자 앞에 앉는다. 그러나 진정성은 그 모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으려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필자의 실습은 그 용기를 배우는 여정이었다. 매 회기마다 내담자 앞에 선 나 자신에게 "지금 나는 얼마나 진실한가", "이 반응은 정말 내 감정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상담자답게 보이기 위한 역할인가"를 묻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때로는 답답했고, 때로는 부끄러웠지만, 분명한 것은 그 질문들 덕분에 상담자라는 역할 뒤에 숨겨져 있던 '나'라는 사람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실습 중 만난 ADHD 아동과의 관계는 나의 진정성을 시험하고, 동시에 그것을 확장시킨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 아동은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았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자주 보였다. 나는 계획한 활동이 무너질 때마다 당황했고, 당황한 나 자신을 숨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아이 앞에서 “나도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라고 조심스럽게 털어놓았을 때, 오히려 아이는 더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상담자는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옆에 함께 있어주는 사람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진정성은 '잘하는 상담'보다 '진심으로 있는 상담'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실감한 것은 실습 마지막 회기였다. “선생님은 내가 좋아요?”라고 물은 아이에게 “응, 나 너랑 이야기할 때 참 좋아”라고 말한 그 짧은 순간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 나는 그 대답을 준비해 간 적이 없고, 그 말이 정답인지 확신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진심은 의외로 단순했지만, 깊었다. 나는 그 순간, 내 존재로 상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느낌은, 내가 상담자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안다. 진정성은 단지 상담실 안에서만 필요한 자질이 아니라, 일상과 삶 전반에 스며들어야 하는 삶의 태도임을. 실습을 통해 배운 진정성의 감각은 일상의 대화, 관계, 그리고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나를 꾸미지 않고 말하는 연습, 서툴지만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 그 모든 것들이 상담자로서의 성장을 넘어서 인간 정연수로서의 변화를 만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상담자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때로는 서툴러도 진심은 통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진심이 상담이라는 만남을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는 믿음을 실습을 통해 얻게 되었다. 진정성은 결국 도달해야 할 이상이 아니라, 계속해서 살아내야 할 삶의 방식이다. 나 역시 그 길 위에서 천천히, 그러나 진실하게 걸어가고자 한다.


참고논문

1) 김예실 , 이희경 (2020). 상담 과정에서 상담자의 진정성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32(2), 609 - 638.
2) 심은정, 이희경. (2022). 상담 전공 내담자가 경험한 상담자 진정성과 치료적 변화에 관한 질적 연구.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2(7), 332-344.

3) 홍지선. (2018). 상담자가 상담관계에서 경험한 진정성 발현과정 (박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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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8-04 08: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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