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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가기 위한 여정이 계속 이어지도록
  • 기사등록 2021-12-01 11: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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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우주, 그곳을 향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


"엄마, 나는 달에 꼭 가 보고 싶어."

"그래? 참 신기하다, 엄마는 너무 황량해서 싫을 것 같아. 네가 엄마 나이쯤 되면, 정말 신혼여행으로 달에 갈 수도 있겠다. 근데 우리 아들은 왜 그렇게 달에 가 보고 싶어?"

"음... 그냥 달이라는 공간을 보고 싶어. 직접 우주란 곳을 경험해 보고 싶어."


항상 우주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 땐 반짝거리는 별들과 달이 신기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주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삶에 매료된 게 더 큰 것 같다. 우주왕복선이 굉음을 내뿜으며 이륙하는 순간을 보면 가슴 벅찼고, 닐 암스트롱과 같은 우주비행사가 되어 우주를 직접 내 눈으로 보겠다는 열망이 있었다. 


아주 평화롭지만 동시에 극도로 위험한 세계. 수많은 좌절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우주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도 저 사람들처럼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고, NASA 홈페이지에 출근도장을 찍기도 했다. 레고 달 착륙선, 인공위성 시리즈는 출시되자마자 사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조립했다. 그 정도로 우주가 좋았다.


모두가 미쳤다고 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도전 정신과 용기, 인내에 대한 깊은 존경. 내가 우주, 그리고 그 곳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들을 동경하는 이유이다. 내가 잘 살고 있나 막연한 걱정이 들 때,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스스로가 의심스러울 때, 2018년 영화 <퍼스트 맨>을 반복해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전하는 삶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하세요?


<퍼스트 맨>은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위플래쉬>, <라라랜드>를 만든 감독의 우주 영화라니. 거기에 주연은 <라라랜드>의 주인공이기도 한 라이언 고슬링이었다. 이 영화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릴 이유는 많았다. 


그러나 공개 이후 평가는 극과 극으로엇갈렸다. 이전에 본 적 없는 영화라는 극찬부터 영화 끝나고 가장 빨리 나간 사람이 최후의 승자라는 혹평까지, 감독의 역대 작품 중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 되었다.


그 누구도 도전하지 않은 세계에 발을 내디딘 인간의 이야기.

호불호가 격하게 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퍼스트 맨>은 그 제목처럼 우주가 주인공이 아니라, 달이라는 미지의 공간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First) 한 인간(Man)에게만 지독하게 집중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간은 바로 우리 모두가 한 번은 이름을 들어보았을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다. 


영화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 닐 암스트롱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구가 아닌 다른 천체에 발을 내딛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가 일생일대의 도전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심정은 어땠는지 조명한 영화는 많지 않다. <퍼스트 맨>은 닐 암스트롱이라는 한 인간의 순간들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열정과 진취, 도전정신 같은 단어들과는 거리가 아주, 매우, 굉장히 멀다.


우주라는 알 수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한 여정은 혹독하고, 힘들고, 외롭다.

테스트 파일럿으로 일하던 닐은 딸 캐런의 죽음을 슬퍼할 시간도 없이, NASA의 제미니 프로젝트에 지원해 우주로 날아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닐과 동료들은 고문에 가까운 훈련을 반복한다. 1분에 몇십 번씩 3차원으로 회전하는 구에 탑승해 극한의 멀미와 스트레스를 버텨야 한다.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서서 구토하며 훈련을 마치면 몇천 페이지 분량의 우주비행 이론을 공부한다. 그런 과정을 무한 반복한다. 정말 우주로 갈 수는 있는 건지 누구도 장담 못한 채로.



사고가 나서 죽었을 때 신원 확인이 어려운 직업이라면,

그 직업을 택하기 전에 심사숙고해야 한다.



베테랑 우주비행사 존 영 (John Young)이 남긴 말이다. 아폴로 1호 발사 테스트에 참여한 닐의 동료 3명도 시험 발사 중 화재로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닐은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백악관 연회에 참석한 와중에 소식을 접한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닐은 전화기를 붙잡고 흐느낀다. 돈만 퍼먹는 일을 왜 도와줘야 하는 정치인들을 설득해야 하는 백악관의 어느 좁은 방에서 닐은 고통스러워한다.


이후 닐은 신경질적으로 일에만 몰두한다. 달 착륙선 모의 테스트 중 기체에서 비상 탈출해 얼굴에 피멍이 들고, NASA 관계자들은 테스트를 강행하려는 닐을 만류한다. 그러나 닐은 "그런 걱정을 하기엔 너무 늦은 거 아니냐"며 받아친다. 그리고 한밤중에도 고요하게 떠 있는 달을 열망과 분노가 뒤섞인 눈빛으로 응시하며 임무를 준비한다.


아폴로 11호 탑승 전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가족과의 만남.

운명의 날 하루 전, 아내 재닛은 닐에게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정확히 말하고 떠나라고 압박한다. 두 아들도 아버지에게 묻는다.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냐고. 살아올 수 있는 일이냐고. 닐은 쉽게 입을 떼지 못 하지만, 결국 있는 그대로 설명한다. 죽을 수도 있지만, 살아서 돌아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독수리는 (오롯이 버텨내며) 내렸다.


운명의 날. 1969년 7월 16일. 닐 암스트롱, 마이클 콜린스, 에드윈 올드린은 아폴로 11호 우주선 "컬럼비아"에 탑승하고 날아올랐다. 3일간의 여정 끝에 달 궤도에 도착한 후, 3명은 착륙선 "이글"에 탑승해 7월 20일, 고요의 바다에 착륙했다. 고통스럽고 긴 여정 끝에, 독수리는 날갯짓을 멈추었다.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인류의 열망을 이룬 순간. 역사에 영원히 남을 말을 남긴 닐은 달을 둘러본다. 저 멀리 보이는 푸른 지구, 착륙선과 성조기. 조심스럽게 달을 걷던 닐은 어느 크레이터 앞에 멈춰 선다.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무력하게 떠나보내야 했던, 딸 캐런의 이름이 새겨진 팔찌를 꺼낸다. 그리고 캐런이 좋아했던 노래를 나지막이 불러주며 팔찌를 떠나보낸다.


딸, 아빠 왔어.

끊임없는 의심과 걱정, 고통, 괴로움 속에 달에 내린 닐의 마음은 어땠을까.

마침내 해냈다는 기쁨이었을까. 늦기 전에 딸과의 소중한 순간을 기릴 수 있어서 안도했을까.

영화는 한 종족의 위대한 성취가 아닌, 아직 끝나지 않은 한 인간의 삶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그럼에도 도전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 퍼스트 맨이니까.


<퍼스트 맨>이 내 마음에 깊게 남은 이유는 간단했다. 닐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수도 없이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했고, 그 모든 과정을 숨기지 않았으니까. 우리 모두 처음 사는 인생, 각자 원하는 별을 향해 하루하루를 여행하는 퍼스트 맨임을 영화는 나에게 알려주었다.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하루하루 도전한다.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학교를 가고, 학원을 가고, 출근을 한다. 그 과정은 아름다울 때보다 고통스럽고 힘들 때가 훨씬 많다. <퍼스트 맨>은 도전하는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지만, 그럼에도 그럴 가치가 있다는 평범하지만 모두가 잊고 지낸 메시지를 전한다. 


이 세상에 혼자만 남겨졌다고 느껴질 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

세상이 내 존재를 잊고 나를 버렸다고 생각할 때.

그럴 때 이 영화를 찾아주면 좋겠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도 나아가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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