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사는 게 재미 없다면, 삶의 000부터 찾아야 한다. - 5화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질까?
  • 기사등록 2022-02-18 08:49:46
기사수정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한민 ]




한국인들은 무엇이든 푸는 것을 좋아한다.



긴장하면 긴장을 풀어야 하고, 오해가 있으면 오해를 풀어야 한다. 기분이 안 좋으면 기분을 풀어야 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끼리는 그간의 회포를 풀어야 한다. 술을 마셔서 속이 쓰리면 뜨끈한 해장국으로 속을 풀고, 감기가 걸려 몸이 찌뿌둥하면사우나에 몸 좀 풀러 가야 한다.


'푸는 것'의 반대는 '꼬이고 얽히고 맺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뭐가 됐든, 꼬이고 얽히고 맺힌 상태를 좋지 않게 생각한다. 대표적인 게 바로 ‘한(恨)’이다. 예로부터 한은 한국인들에게 부정적 정서의 총체이자 불행의 결정체로 이해되어왔다. 


문화심리학의 연구들에 의하면 한은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릴 때 발생한다. 바로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나 간절히 원하는 것이 좌절되었을 때다. 그때는 억울하고 분하고 괴롭다. 한마디로 살맛이 나지 않는 상태다. 




내 탓이다, 내가 못 배운 탓이다, 내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탓이다. 



이런 상태로 살 수는 없다. 사람들은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돌린다. 



그렇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의 키워드였던 ‘헬조선’, ‘N포 세대’의 본질은 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은 퇴영적이고 무기력하지만은 않다. 한국 문화에서 한이란 ‘풀려야 하는 것’이다. 한이 좌절과 체념의 감정으로 알려져 왔던 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의 부정적 자기 인식의 결과다. 잊혔던 한의 다른 측면은 한을 풀겠다는 강한 동기다. 


한을 풀기 위해 한국인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한다.〈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들은 한을 풀기 위해 저승길도 미루지 않았던가. 한국인들은 배고팠던 한을 풀기 위해,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남에게 무시당했던 한을 풀기 위해 살아왔다. 현대사회에서 한국이 이뤄낸 모든 것들은 이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한이 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낄 때, 한이 풀려나갈 때 한국인들은 ‘흥(興)’을 느낀다.



흥이란 재미나 즐거움이 슬슬 올라오는 느낌을 말한다. ‘어? 이거 되겠는데?’, ‘이거 재미있는데?’ 흥에는 맺힌 것을 풀어내고 싶다는 설렘이 담겨 있다. 흥이 오르면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직인다. 춤이다. 춤은 어떤 도구의 도움 없이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꼬이고 얽혀서 풀리지 못하고 맺혀 있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이 꼭 춤일 필요는 없다.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나다운 행위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흥이 오르고 자신을 표현할 때는 자기를 얽매어왔던 억제를 벗어놓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이런 동작은 어떨까?’ 하는 걱정을 가지고서는 제대로 자신을 표현할 수 없다. 막춤이라도 좋다. 괴성을 질러도 좋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다른 이들의 존재다. 



우리말에 ‘추임새’란 말이 있다.


추임새는 ‘얼씨구’, ‘좋다’, ‘잘한다’ 등 춤을 추게끔 만드는 소리를 말한다. 내게 추임새를 넣어주는 사람은 내 옆에 있는 이들이다. 이들은 춤추고 싶은 내 마음을 알기에 내가 어떤 춤을 춰도 이해해준다. 나 역시 그들을 춤추게 하는 존재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공감을 바탕으로 내 춤은 모두의 춤이 되고, 내 즐거움은 모두의 즐거움이 된다. 이것이 바로 신명이다. 


이 장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심야의 고속버스에서 아주머니들이 추는 춤, 노래방에서의 풍경, 공연장에서의 떼창. 신명이란 내 속에 맺혀 있던 무언가를 잘 풀어낼 때의 기쁨,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함께하는 즐거움이다. 신명은 우리들이 느껴왔던 기쁨이자 즐거움이며 감격이고 행복이다. 한과 대비되는, 한국 문화에서 가장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던 감정이다. 


신명의 불씨는 작은 설렘에서 시작된다. 내가 나임을 느끼고 내 삶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는 순간이다. 그 가슴 뛰는 순간에 우리는 재미를, 즐거움을 느낀다. 흥이 솟는다. 


흥은 전적으로 자발적인 감정이다. 심리학 용어로 내재적 동기에 해당한다. 스스로 흥을 내지 못하면 신명에 이를 수 없다. 다시 말해 내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지 못한 이들은 살아가면서 흥이 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신명에 도달하기는 애초에 틀린 일이다. 




그러니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이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부터 찾아야 한다



살아지니까 사는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갈 이유를 가진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의미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개개인이 살아야 할 의미까지 찾아줄 현자는 없다. 



살다 보면 나라고 믿어왔던 모습이 허망하게 무너질 때도 있고, 오랫동안 이루고자 노력해왔던 목표가 덧없이 사라질 때도 있다. 삶의 의미는 그러한 순간들을 이겨내면서 부딪치고 깨어진 자신의 모습을 주워 담고 꿰어 맞추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자기실현이요 개성화(individuation)라고 부르는 과정이다. 


삶은 진정한 자기를 찾는 여행이다. 여행을 가면서 늘 기분이 좋을 수만은 없다. 그 길은 길고 멀다. 그 길에는 빛도 있고 어둠도 있으며, 평탄한 길도 있고 험한 길도 있다. 그러나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힘들고 지칠 때는 휴게소에 들르는 것도 좋다.


맛있는 음식, 함께 여행하는 이들과의 대화, 꿀맛 같은 휴식. 그러나 휴게소에 가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없다. 여행을 즐기자. 그러나 여행의 목적은 잊지 말자.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2364
  • 기사등록 2022-02-18 08:49:46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