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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경미 ]


나는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다. 나이에 비해 키가 작고 아담한 내가, 동네 아이들을 안아주고 업으니 “자꾸 애기들 업으면 키 안 커. 동생들 업어주는 거 아니야.”라고 꾸중을 하셨다. 어떤 날은 “오늘 애기 업었나 안 업었나 보자” 하시며 옷을 들추어 등을 보시더니 “또 업어주었네”라고 하셨다. 그때는 깜짝 놀라 등에 뭐가 쓰이나 싶어 다시는 업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친척들이 모이면 친척 아이들을 돌보는 당번을 자처하기도 했던 나는 성장을 하고 자연스럽게 유아교육을 전공했다. 공부를 마치고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천직으로 알고 사명감과 행복감으로 일을 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어른들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고 아이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어른들에게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그 당시 내가 근무하고 있던 어린이집은 4~5세 아이들이 100명, 또 유치 교육과정의 6~7세 반 아이들이 200명이 되어 300명 정도의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었다. 차량 선생님, 주방 선생님 및 정교사들을 모두 합치면 근 30명이 되는 교직원들이 함께 일하는 곳이었다. 어린이집이 원아모집을 하는 날은 새벽부터 줄을 서야 겨우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다.


인근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와서 하나같이 똑똑하고 두각을 나타낸다고 찾아와 인사를 하신 적도 있었다. 그러니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자자했다. 그런데 나는 그 교육현장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수, 과학책, 주사위 수책, 한글 수업, 종이접기 책 등 아이들의 학습의 분량이 너무나 많았다.


물론 몸으로 하는 체육수업, 발레수업 등 기타 활동들도 다양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놀이를 통해 배우고 다양한 것들을 직접 경험해야 하는 아이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교재들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기에 바빴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공부와 학습이라는 테두리 안에 놓여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아이들이 공부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 같은 교육 현실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유아, 유치 시기에 아이들은 자연을 가까이하고 그 안에서 뛰어놀면서 몸으로 배움을 얻어간다고 생각한다. 많은 교육보다는 부모와 갖는 안정적인 애착 안에서 애착의 지경을 넓혀, 건강한 유대감과 완만한 사회성을 길러 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치 과정부터 이렇게 딱딱한 의자에 앉아 학습위주의 수업들을 해나가고, 조금 더 성장하면 학원이라는 곳으로 스케줄이 짜여서 이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사교육만이 정답은 아닐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며 지금 남편인 남자 친구와 교육관들을 공유하곤 했었다. 



이렇게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교육에 대한 관심과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결혼을 해 첫아이가 뱃속에 찾아왔을 때 말도 못 하게 기쁘고 행복했다. 그 당시 소망하던 임신소식과 학원 합격소식이 함께 들렸다. 하고 싶었던 분야의 공부를 하니 공부도 너무 재미가 있었다. 아동심리, 집단상담, 교육철학, 인지심리학 등 관심 있었던 수업을 들으며 임신기간을 보냈다.


출산과 조리를 하고, 신생아 아기를 키우는 6개월 정도 한 학기를 쉬고 7개월 된 아기를 맡기고 다시 학교에 갔을 때는 완모를 하는 아기를 위해 모유를 짜서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대학원에는 이동식 유축기를 가지고 다니며 빈 강의실을 이용해 유축을 했다. 일주일에 두 번 낮시간에 가는 것이니 하루는 아버님께, 하루는 지인께 아이를 맡기고 대학원 수업을 받았다. 아이를 맡기러 가는 길에 7개월 된 아기에게 항상 상황들을 설명했다.


아기 띠를 하고 이동하면서 “엄마 학교 잘 다녀올게. 엄마 어디 가는지 알지? 엄마랑 뱃속에서 수업 들었었지 엄마도 잘 다녀올게. 서은이도 젖병 적응 잘하고 엄마 모유 잘 먹고 있어요. ‘네’ 하고 대답해야지?” 하면 신기하게도 아기는 “네”하고 대답을 했다. 우리는 매일 그날이 되면 같은 대화를 하곤 했다.      



나의 성장 과정에서 느꼈던 점과 유아교육과 교육학을 공부하며 느꼈던 점들, 또 여러 가지 책을 통해 정립한 교육철학들을 가지고 첫아이를 키웠다. 아이에게 항상 눈을 맞추고 많은 얘기들을 했었다. 언제나 아기 언어가 아닌 일반 언어로 모든 얘기들을 풀어서 설명하며 들려주었고 수다쟁이가 되어 아이와 교감하며 지냈었다. 아이랑 있는 동안은 순전히 엄마 모드로 있다 아이가 잠든 10시 이후에서야 학생모드가 되었는데 과제를 하다 보면 아기가 새벽에도 2~3시간 간격으로 모유를 찾았다. 모유를 찾는 아이 옆에 누워 수유를 할 때도 잠들면 안 되니 정신을 차리고 30분을 꼬박 젖을 물리고 일어나 다시 과제를 하다 보면 새벽 5시가 돼서야 잠을 자야 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그리고 아기의 기상 시간에 맞추어 다시 엄마 모드로 아이랑 눈을 맞추며 놀았다. 몸은 고단했지만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배우고, 너무나 소중한 첫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큰 행복이었다.



첫아이를 키울 때 나보다 먼저 결혼을 했지만 아직 아기가 없는 친구네 집에 가서 놀기도 하며 보냈었는데 그 친구가 시험관 아기를 통해 귀한 아기를 얻고 키우며 내게 한 말이 있었다. “너 서은이 2~3살 때 어떻게 그렇게 안 된다는 말 한 번을 안 했니? 내가 그때는 안 키워봐서 몰랐는데 정말 하루에도 몇 번을 안된다고 외치는지 모르겠다. 넌 어떻게 안되다는 소리를 한 번을 안 했니?” 그랬다. 아이를 무조건 받아주는 엄마여서 안 된다는 말을 안 했던 것이 아니다. 언어의 선택을 다르게 했던 것이다.


같은 말을 전달해도 “안돼” 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좋겠네. 이렇게 할까?”라고 긍정어로 항상 말했었다. 돌아보면 첫아이를 키우는 시기, 항상 내 마음엔 아이 안에는 선한 의도가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아이가 울 때도 아이가 의사를 잘 전달하기 위함이고 아이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와 항상 눈을 맞추고 아이의 마음을 읽으려고 했기 때문에 아이의 의도를 잘 파악했었다. 아이가 이 순간 때가 난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니라 앞서 못했던 불만족을 여기서 땡강으로 푸는구나 라는 것들이 보였다. 아이가 하나이니 그렇게 눈을 맞추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보내는 동안 17개월 때 둘째가 찾아왔다. 둘째도 엄마 뱃속에서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함께 다녔다. 둘째는 태교를 따로 할 여유가 없었다. 언니와 동요를 부르고 동화책을 읽는 소리가 태교가 되었다. 둘째가 뱃속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참 괜찮은 엄마라고 생각할 뻔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는 모유 수유를 하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수유쿠션을 끌어안고 있었다. 내 몸은 ‘꼼짝 마’이니 이제 막 두둘이 지난 큰 딸아이에게 여러 번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다. 그러니 점점 목소리는 커지고 아이에게 화도 내게 되며 나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 앞에 무너짐을 경험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셋째는 ‘태교가 뭐예요?’ 상태가 되었고 세 아이 육아를 하며 목소리가 담장을 넘기 시작했다. 득음의 경지가 되었다. 


‘그때 그 온화한 엄마는 어디로 간 것인가? 나의 교육철학과 나름 가지고 있던 수많은 대화법과 아이를 이해하는 방법은 다 어디로 간 것이지? 교육과 상담을 공부를 했던 시간들은 있었던 것인가?’ 자괴감이 찾아들었다. 혼자서 나를 추스를 시간과 책을 읽는 시간이 고팠다. 아이들이 자는 새벽시간 그 고픔이 나의 잠을 깨웠다. 아이들 숙면에 방해되지 않도록 아이들 발밑에 스탠드를 켜고 책을 폈다. 아이들이 깨 엄마를 찾으면 언제라도 토닥여 줄 수 있는 5분 대기조 엄마 모드로 말이다. 그렇게 다시 교육철학이 담긴 육아서를 보며 내가 너무 멀리 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육아를 하며 내가 꽤 괜찮은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절절하게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다시 책을 통해, 아이들을 통해 계속 배워가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라는 이름에 입학이 있는 줄은 모르겠으나 졸업은 없다. 깨달은 것 같아도 그것을 삶으로 녹아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 된다. 부대낌 가운데 조금은 성숙해졌나 싶으면 이번엔 또 사춘기 엄마라는 새로운 육아세상이 열린다. 


나는 오늘도 꽤 괜찮은 엄마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그 깨달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난 오늘도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아이들이 들려주는 메시지를 통해 나를 돌아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배우는 자세로 가려고 한다. 그 안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엄마가 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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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3-15 09: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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