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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경미 ]


나는 참 아날로그인 사람이다. 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아직도 소중한 사람에게는 손 편지를 건네고 싶은 사람이다. 실은 좋게 포장을 해 아날로그인 사람이다. 기계들의 조작이 서툴고 컴퓨터의 작동도 낯설어 컴퓨터를 사용하다 보면 어느새 머리에서 슬슬 열이 차오르는 사람이다. 보다 못한 남편이 DNA 구조상 없는 기능 같으니 마음을 비우는 건 어떻겠냐고 말했으니 긴말이 필요 없다. 이런 나를 데리고 사는 나도 여간 갑갑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동안은 아쉽고 답답한 대로 그래도 버텼던 것 같다. 3~4년 전부터 소중한 일을 맡게 되어 매주 파워포인트로 작업할 일부터 문서를 만드는 일이 많아지자 남편에게 묻는 빈도가 잦아졌다. 처음에는 자상하게 가르쳐 주던 남편도 물었던 것을 또 묻거나 묻는 횟수가 잦으니 여간 성가셔하는 것이 아니었다. 


남편이 불퉁불퉁 설명할 때가 많아지자 귀찮게 하는 건 난데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내 마음도 좋지 않았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자존심도 상하고 약이 올랐다. ‘내 힘으로 해내고 말리.’ 아쉬워도 꾹 참고 씨름을 해나갔다. 그 후 하나하나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이라는 믿을 구석이 빠지니 울며 겨자 먹기로 답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 무지의 세계 컴퓨터 작업에서 혼자 하는 것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아이가 들고 오는 교과서 문제에 답을 해 주었다. 아이도 처음이니 충분히 물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들고 오는 문제가 몰랐거나 어려워 서가 아니라 문제를 잘 못 읽었거나 실수로 틀린 것들을 보게 되었다.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봐.”라고 얘기하면 문제를 읽다 말고 “아!”하고 자기도 멋쩍은 듯 실소를 보이고 가곤 했다. 엄마를 믿거니 하고 두 번 생각도 않고 오는 것이다. 다음부터 엄마에게 물어볼 것이 있으면 몇 번을 풀어보고도 모르겠으면 그때 가지고 오라고 했다.


어떤 날은 몇 번을 보아도 모르겠다고 문제를 들고 왔다. 아이가 들고 온 서술형 수학 문제는 문제 하나에 가지고 있는 질문이 세 개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단답형처럼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도 답을 찾으려고 이렇게 저렇게 여러 방법을 대입해야 했다. 입으로 설명하며 답을 찾아가는데 답을 찾게 되는 순간 내 공부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답을 찾으려고 여러 방법을 동원하며 풀어가는 시간이 진정한 공부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는 “엄마도 잘 모르겠네. 엄마도 너희처럼 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다 알았지만 지금은 엄마가 그것을 배운 지 많이 지났잖아. 엄마는 지금 엄마 책을 보거나 엄마 공부를 하고 있지? 이건 엄마 공부가 아니어서 답을 찾으려면 엄마도 다시 보고 생각하고 해야 해. 이 답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어제 배운 바로 너야. 잘 생각해봐. 답을 찾을 수 있어.”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었다. 지금은 초등학생이어서 엄마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올지 몰라도 조금만 지나면 엄마도 모른다는 사실이 들통 날 게 뻔하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가르쳐 주려고 내 공부처럼 붙들고 미리 공부할 마음은 내게 조금도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 스스로 찾게 하는 것이다. 믿을 구석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대신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려고 하는 것은 틀린 작대기 표가 있는 시험지를 들고 왔을 때 화내지 않는 것이다. 틀린 것은 다시 풀어서 알게 되면 되는 것이라고 가볍게 넘긴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있다. “틀리는 것은 좋은 거야. 틀린 것을 통해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니까 틀리는 것은 좋은 거야.”라고 말해 준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이 틀린 것을 대하는 마음이 덜 무겁다. 왜 아이라고 동그라미만 있는 시험지를 들고 오고 싶지 않았을까? 아마 엄마가 뭐라 하기도 전부터 그 시험지 자체가 아이의 상심이 됐을 수도 있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렇게 몰랐나? 하는 실망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보는 엄마마저도 "이렇게 쉬운 걸 틀리면 어떡하니? 도대체 몇 개를 틀린 거니?"라고 따져 물으면 아이는 얼마나 위축이 들까? 단지 틀린 문제들을 통해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아는 일만 남았다고 얘기해주면 좋겠다. 나도 마냥 말랑하지만은 않다. 단골처럼 덧붙이는 말이 있다. “틀리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했지? 그런데 틀린 문제를 또 틀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야.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면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해.”라고 들려준다.     


코로나 시기 조용히 글을 쓸 시간이 내게는 역부족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는 나나 아이들이나 자신만의 시간이나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나를 위해 남편은 토요일에 가까운 카페를 이용하라고 시간을 내주었다. 어느 토요일 헤드셋을 끼고 수업을 듣는 초등학생 남자아이와 엄마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른 대우받는 느낌이 들 것 같아 아이도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아들의 틀린 문제를 보고 설명하던 엄마가 화가 난 것이다. 아까도 풀었던 것 아니냐며 치솟는 화에 목소리가 커지다 못해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설명을 한 후 다른 문제를 내밀었다. 문제를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시간인 것이다. 아이가 푸는 동안 엄마도 노트를 펴 열심히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아이의 오답을 체크하였다. 


결국 정답지를 손에 쥐고 앞서 풀어 본 엄마의 손이 아이의 등을 내리치고 말았다. 곳곳에서 쳐다보았지만 엄마 눈에는 틀린 문제만 보였다. 아이도 죄인이 되어 고개를 숙이고 틀린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아이의 민망해하는 모습을 보니 저렇게까지 주눅이 들게 해서 하나 더 맞는 문제가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숙인 고개만큼 자존감도 저 밑으로 내려가 있는 것 같았다. 정답을 쥐고 흔드는 엄마가 아니라 정답을 찾을 기회를 주는 엄마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슴 깊이 드는 시간이었다.     



사실 내가 아이들에게 정답지를 주는 것은 아이들을 믿는 마음도 있지만 밑에 동생들이 엄마 손을 찾는데 한가하게 채점하는 것도 어느 순간 벅차지는 부실한 엄마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은 채점도 아이 스스로 한다. 답안지도 아이의 것이다. 적응하는 일학년이 끝나고 나면 나는 아이에게 빨간 펜을 주고 직접 확인을 하게 했다. 누구는 초등학교까지는 아직 어리고 힘드니 엄마가 다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아이에게 답지를 주면 보고할 수도 있는데 답지는 따로 관리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각자 하게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TV에서 강용석 변호사가 나오셔서 공부비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보게 되었다. 그때 아이의 문제집의 채점을 스스로 하게 하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다. 아이가 직접 채점을 하며 내가 알고 맞은 문제는 무엇이고 모르고 맞은 것은 있는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인지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문제 풀고 난 후 채점도 일인데 하며 일말의 양심에 찔림이 있던 나는 그때부터 더 홀가분하게 아이에게 채점을 맡겼다. 실은 내 역량이 그만큼이었다.     


나는 어릴 때 책이 많이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래서 딸들에게 책이 많은 환경을 주려고 했고 책이랑 친구처럼 놀게 해주려고 했다. 아이들 어릴 때는 책을 읽어주려고 노력했는데 육아에 해를 거듭할수록 꾀가 났다. 이제는 아이들이 들려주는 책 속의 이야기가 생소한 것들이 많았다. 과학이야기, 역사, 꽃말에 얽힌 사연들이며 엄마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많아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재밌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엄마가 모르는 이야기들을 전해 주느라 신이 나 했다.           


엄마가 잘 모른다는 것은 때로는 아이가 알고 있는 것을 마음껏 자랑하고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다. 신이 나서 마음껏 얘기하고 싶어 지게 좀 모르는 엄마가 되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엄마에게 정답이 없다는 것 또한 아이에게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일 것이다. 아이에게 정답을 말해 주지 말자. 대신 정답을 말해주는 아이에게 감탄하는 엄마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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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6-07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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