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영
[The Psychology Times=하지영 ]
비교적 어린 나이에 우리는 여러 번의 졸업을 거친다. 졸업식에서 꽃다발을 들고 본인을 자축, 혹은 타인을 축하하며 한 단계의 배움이 유효기간에 다다랐음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게 해서 받은 졸업장이 소유자에게 가져다주는 의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누군가에겐 인생을 살면서 당연히 가져야 되는 것, 누군가에겐 배움의 증표, 누군가에겐 피나는 노력의 결실, 누군가에겐 그저 흘러가버린 시간이 가져다준 그 시간의 기회비용일 것이다. 여기서 기회비용이랑 경제학적 의미로 여러 대안들 중 하나를 선택할 때 선택의 주체가 포기한 대안 중 가장 큰 가치를 지니는 것을 말한다.
즉, 어떤 시점에 그 선택의 주체에게 졸업장을 얻는데 필요한 긴 ‘시간’과 ‘졸업장이라는 증표’ 이 둘 중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이 차선일지 고민하여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 것이다.
한국에선 초등교육부터 중등교육까지가 의무임에 따라 두 개의 졸업장을 필수적으로 갖는다. 따라서 이는 졸업장이 가지는 의미 중 하나인 인생을 살면서 당연히 가져야 되는 것에 포함된다. 고등교육 이수는 선택이지만 의무교육으로서의 필요성이 상승함에 따라 일부 무상교육이 진행 중이다.
따라서 오늘날 대부분이 어린 나이에 세 개의 졸업장을 필수적으로 가지게 되며 선택과 필수의 경계의 모호함을 배워간다. 물론 교육은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보다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지만 학교에서 사회성을 배우며 흡수하는, 기본적인 사회적 동물의 태도를 제외하곤 자기주도적 생각이 아닌 자기주도 학습만을 강요하는, 남들이 하기에 해야 하는 당연한 것(여기서 말하는 남들 또한 나와 같은 사람들이다. 즉, 행동 주체가 모호한 환상이 만들어 낸 가상의 집단이다.)을 따라야 중간이라도 간다고 그래 왔던 과거의 시간이 쌓여 정해진 매뉴얼을 배우기에 이는 한 사람이 인생을 사는데 중요한 자아정체성 형성기를 내포하는 긴 시간의 기회비용으로써 최선으로 사는 삶 치곤 내면의 가치가 높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무 교육을 지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이미 배운 것이 있다. 한 번도 우리 손으로 최선을 선택한 삶은 산 적이 없었고 그동안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후회와 반성의 수단과 방법조차 알 수 없다는 것. 그대로 성인의 나이에 다 다르면 또 다른 시작을 한다. 이때 손에 쥔 것은 꽤 많은 양으로 뇌에 축적된 의무 교육에 따른 학습량, 범법 행위를 하지 않는 법, 남들보다 잘 살고 싶다는 사회적 지위로의 욕망 등일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삶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고 본인에게 자각시킨 순간 동시에 목표의 방향성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사라졌을 때의 막막함, 모두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각자 본인과 맞는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 감정의 졸업이라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수천 가지의 종류와 수만 가지의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내면에서의 소리, 두 손으로 쥐고 긴 세월 삶을 달려가는 데에 큰 원동력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 이는 내면과 외면의 소통에서 스스로 깨닫고 더 나은 행동을 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이어진다. 표면으로의 매뉴얼이 아닌 감정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는 본능적인 슬픔 혹은 행복을 말 그대로 배움의 증표로 여겨 후회하고 반성하고 끝내 졸업한다면 또 다른 선택의 기로가 열리게 된다. 이는 인간성의 성장으로도 이어진다. 타인 혹은 본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이 불러일으킨 후회와 반성은 말 그대로 본인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과 손을 잡은 채 겪는 성장을 의미한다.
졸업을 하며 끝맺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린 시절 거쳐 온 교육 혹은 환경이 내게 가져다주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미성숙한 본인을 인정하여 자신에게 조금 더 열린 선택의 기회를 부여한다면 그 어느 시점 꽃다발을 건네받으며 ‘시간’과 ‘졸업장이라는 증표’ 모두를 가졌다는 승리감에 스스로 진심 어린 축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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