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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유세웅 ]


'하나, 둘, 셋'


형욱(가명)님은 수술 직전에 숫자를 세보라는 의료진의 말대로 하나, 둘, 셋을 따라 했더니 잠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떴을 때 두 손은 묶여 있었고,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지? 왜 이렇게 목이 마를까?'


형욱 님은 불안하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마취약제를 사용한 탓인지 머리가 아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수술받으러 수술실로 향했다는 사실이 흐릿하게 기억났다.


'수술은 잘 된 건가? 아니면 이렇게 죽는 건가?'


바로 그때 누군가가 와서 말을 걸었다.


- 안녕하세요. 깨셨어요? 손 한번 주먹 쥐어 보시겠어요? 잘 움직이네요. 발도 한번 까딱까딱 움직여보세요. 잘 움직이네요. 다행이에요. 저는 담당 간호사고요 형욱 님 맞으시면 고개 한 번만 끄덕여보세요.


- (고개 끄덕임)


- 지금 계신 곳은 수술 후에 상태 회복하기 위해서 있는 중환자실이에요.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하니 불안해하지 마세요. 수술 전부터 물을 마시지 못하셔서 목이 마르실 텐데 지금은 인공기도가 목에 있어서 물을 드릴 수가 없고 나중에 인공기도를 제거하면 입 한번 헹궈드릴게요. 그리고 형욱 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몸에 있는 관이나 인공기도를 제거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상태가 많이 나빠질 수 있어서 인공기도 하고 있을 때만 손에 억제대를 하고 있을게요. 나중에 풀어드리겠습니다.


간호사의 말을 듣고 형욱 님은 자신이 중환자실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설명을 들으니 불안한 감정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그러나 갈증이 나는 것은 너무 참기 힘들었다.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물을 마시지 못하니 차라리 포기하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침상 발치 쪽 벽에 있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성경 말씀이었다. 형욱 님은 평소 그렇게 교회를 열심히 다니진 않았지만 '너를 고쳐 주리라'라는 글이 위로가 되었다. 수술받기 전에도 심장 상태가 워낙 좋지 않다고, 최후의 방법으로 수술을 한번 해보자고 얘기를 들었던 형욱 님의 입장에서는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자 믿고 싶었던 말이었다.


불안함이 사라지고 마음이 위로를 받자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형욱 님이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는 동안 옆에 있어주는 건 간호사뿐이었다. 필요를 물어봐주고, 몸에 있는 소독약을 닦아주고 가래를 뽑아주고 말을 걸어주는 간호사들 덕분에 형욱 님은 힘겨운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


하루가 흘러 형욱 님은 상태가 호전되었고 인공기도를 제거하게 되었다. 형욱 님이 가장 먼저 한 말은 목이 마르니 물을 달라는 게 아니었다.


- 간호사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 말에 나도 위로받는다. 고맙다는 그 말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형욱 님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채 하루를 또 중환자실에서 보냈다. 이젠 밥과 물을 먹을 수도 있고 몸에 달고 있던 약들도 하나씩 떼어가니 점점 자유의 몸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약을 드리러 형욱 님 곁으로 다가갔는데 형욱 님이 말을 걸었다.


- 선생님, 제가 앉아서 쭉 지켜보니까 중환자실 간호사 너무 힘든 거 같아요. 대학병원 간호사라고 하면 다들 좋은 직장 다니는 줄 알고 있던데 막상 와서 보니까 일이 너무 힘들어요. 서비스도 너무 좋고 한데 밥도 못 먹고 앉아서 쉬는 시간도 없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간호사 선생님들 모습을 보니 안쓰러워요.


그 말을 들으니 울컥했다. 하루하루가 쉬웠던 적이 있었던가. 매일 응급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긴장감 속에서 일하며 주 5일 40시간 근무는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고, 근무 후에는 너무 힘들어 쉬는 날 하루는 잠자는 걸로 다 지나가고 내 개인 생활은 거의 보장받지 못하는 나날들 아니었던가. 


그래도 한 번씩, 힘들 때마다 이렇게 꼭 한 번씩 간호사의 노고를 알아봐 주시고 고마움을 표현해주시는 환자분들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내 인생 일부의 시간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많다.


퇴근 후 주어지는 자유시간에 조금 더 자고 싶고, 놀고 싶은 마음을 참고 글을 쓰는 이유도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형욱 님에게 '너를 고쳐 주리라'라는 글이 위로가 되었듯이, 내 글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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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8-05 22:4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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