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연
[The Psychology Times=유시연 ]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이 있는 사람은 죄가 없고, 돈이 없는 사람은 죄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말일 것이다. 이 문구는 1988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질극인. 일명 ‘지강헌 탈주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지강헌 탈주 사건'이란?
1988년 10월 8일, 영등포 교도소에서 대전교도소와 공주교도소, 공주치료감호소로 이송되던 25명의 죄수 중 12명이 교도관을 흉기로 찌르고 탈주하여 서울 시내로 잠입했다. 이들의 죄명은 폭력, 절도 등으로 잡범이었으나, 사회보호법에 의한 보호감호제도로 인해 징역형이 끝난 후에 별도로 주어지는 보호감호처분까지 총 17년간 죗값을 치르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70여억 원을 횡령한 전경환(전두환의 막내동생)은 겨우 징역 7년을 선고받자, 이 상황에 불만을 가지고 탈주하게 된 것이다.
탈주 과정에서 최후까지 잡히지 않은 5명 중 4명인 지강헌, 안광술, 강영일, 한의철은 경찰의 검문을 피해 서울 여러 군데를 전전하였고, 10월 15일 밤,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위치한 고모 씨의 집에 잠입해 그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인질로 잡혀있던 고 씨가 새벽에 탈출하여 인근 파출소에 신고하며 경찰이 고 씨의 집을 포위했다. 대치가 지속되던 낮 12시경, 한의철과 안광술은 지강헌이 가지고 있던 총으로 자살했고, 지강헌은 경찰에게 비 지스의 ‘홀리데이’ 카세트테이프를 요구한 뒤, 노래를 들으며 창문을 깨 유리 조각으로 목을 찔러 자살을 시도했다. 자살을 시도하는 지강헌의 모습을 보고 인질이 소리를 지르자, 경찰 특공대는 인질이 위험에 처한 상황으로 판단하여 무방비 상태의 지강헌에게 총을 발사하였고, 그는 몇 시간 뒤 세브란스 병원에서 사망하며 사건은 막을 내렸다.
이 사건은 돈 있고 권력이 있는 자는 특혜를 받고, 그렇지 못한 자는 중형을 받는 대한민국의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분노로 시작되었으며, 이는 많은 국민들에게 일종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더욱 화제가 되었다.
'지강헌 탈주 사건'이 화제가 된 또 다른 이유
이 사건이 다른 인질극과 차별화되어 인식되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인질에 대한 인질범들의 태도가 그리 공격적이지 않았다는 점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지강헌 일당은 신촌 일대에서 여러 곳의 집을 그들의 은신처로 삼았는데, 그들이 선택한 네 번째 집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대우를 받게 된다. 그들이 들이닥쳤으나 그 집의 가족은 그들에게 따뜻한 밥상을 대접한 것이다. 그들의 이전에는 받지 못했던 대우에 금세 마음이 풀리면서, 신발을 신고 들어왔던 집의 방바닥을 직접 걸레로 닦기도 하는 등 한결 부드러워진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또한 그 가족들이 독실한 신앙심을 지닌 것을 보고 자신을 위해 기도를 해달라 부탁하고, 눈물을 보이는 등 불안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 집에서의 감정적 변화는 다음 목적지인 북가좌동의 마지막 은신처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테러 특공대의 포위로 인해 대치 상황이었으며, 지강헌 일당은 경찰이 가까이 오면 인질을 해치겠다며 위협을 이어간다. 하지만 인질에게 총을 겨누면서도, 귓속말로는 ‘미안하다, 정말 이럴 생각이 없다. 절대 다치지 않게 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그들을 안심시키려 했다고 한다.
인질들은 왜 그들을 위한 탄원서를 썼을까; 스톡홀름 증후군
이 사건은 인질극이 일단락된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강헌 일당의 은신처로 지목되어 인질로 잡혔던 다섯 집 중, 무려 세 집에서 유일한 생존자이자 가해자인 강영일을 위해 탄원서를 제출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처음엔 겁을 먹었으나 지강헌 일당의 행동은 위협적이지 않았으며, 전국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그들의 행동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마땅하나 그들에게 인간성을 느꼈다.’며 사회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가해자들의 처지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서 일어난 강도 사건에서, 인질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은 강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법정에서 증언을 거부한 일이 있었다. 당시 범죄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닐스 베예로트는 이 현상을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정의하면서 이는 ‘인질이 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호감을 품게 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심리학적 용어로 쓰이게 된다.
스톡홀름 신드롬이 어디에서나 흔히 발생하는 현상은 아니다. 심리학자는 스톡홀름 신드롬이 발생하는 환경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를 주장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심리학자 프랭크 오크버그의 주장이다. 그는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계속해서 가정에 남아있는 이유에 대해 그들이 가해자로부터 벗어나도 독립할 힘이 없기 때문에 안전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고, 이후 사회에 나갔을 때 의식될 다른 사람의 시선, 그로 인한 정신적 수치심이 그들을 가정에 남아있게 한다고 설명한다. 이외에도 ‘크레디트반케 인질극 사건’을 예로 들어, 오랜 시간 지속되는 인질극은 피해자의 유아화를 진행시켜 가해자의 인질 관리가 유아 시절 부모의 보살핌, 양육 행위와 비슷하게 느껴짐으로써 이것이 향후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싹트게 되는 것이라는 주장 등 피해자의 공포 심리가 가해자에 대한 연민으로, 극단적으로는 사랑의 감정으로까지 발전하는 과정에 대해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정신적 질병보다는, 외상적 상황에 대한 개인의 자기방어에 더 가깝다. 증상 역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유사하기 때문에 치료 역시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행해진다고 한다.
인질범은 왜 인질을 해치지 않았을까; 리마 증후군
스톡홀름 증후군과 정반대의 현상으로는 ‘리마 증후군’이 있다. ‘리마 증후군’은 인질범들이 인질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자신을 인질과 동일시함으로써, 공격적 태도가 줄어드는 이상현상을 가리키는 심리학적 용어이다. 이는 1996년 12월 17일,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반군이 일본 대사관을 점령하고 인질들과 4~5개월을 함께 생활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인질들이 가족과 편지하는 것을 허용하고, 자신의 신상을 밝히는 등 마음을 여는 사건에서 유래되었다. 인질범이 인질에게 호의를 베푸는 기이한 현상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사건 발생 지역의 이름을 따 ‘리마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리마 증후군의 발생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진 않았으나, 유래가 된 사건에서는 반군들 중 인정이 많은 사람이 있었다거나 인질의 수가 너무 많아 밀착관리가 힘들었기 때문으로 보는 견해 등 다양한 견해가 공존한다.
탈주범 지강헌 사건은 탈주범들의 범죄 과정으로 인해서도 화제가 되었으나, 지강헌이 뱉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사건 자체보다도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각에서는 이 문구에 대해 그들이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뱉은 변명일 뿐이라고 비판하지만, 당시 많은 서민들은 이 말에 내적으로 깊은 공감을 표하며 그들의 처지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어쩌면 이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보인 알 수 없는 유대감은, 국민 모두가 알고 있지만 밖으로 굳이 내뱉지 않았던 당대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동의의 표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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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및 참고문헌
- Soo Ki Choo. (2005). 인질과 스톡홀름 신드롬. 분쟁해결연구, 3(1), 33-62.
- 박은미. (2019). 성폭력과 ‘스톡홀름 증후군’. 가톨릭 평론, 20, 46-54.
- 함재봉. (2018). ‘스톡홀름 증후군’에 사로잡힌 한국. 현상과 진상, 2018(9), 9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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