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예린
[The Psychology Times=안예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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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고등학생 때 방송 동아리에 들어갔었다. 다른 학생보다 일찍 등교하여 아침 방송을 준비했고, 점심시간에는 서둘러 점심을 먹고 점심 방송을 준비해야 했으며 방과 후에는 방송실에 남아 모든 뒷정리를 끝내야 했다. 학교에서 행사가 진행될 때는 쉬는 시간도 없이 온종일 뛰어다녔다. 방송부에 들면서 학기 중에는 남들보다 배로는 일찍 등교해야 했고, 늘 마지막까지 학교에 남았다.
그렇게 힘든 학교생활을 보냈음에도 필자는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학교에 일찍 가기 싫다며 투정 부렸던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동아리 부원들끼리 다투고, 담당 선생님과 갈등이 생기고, 사고가 일어났던 일도 마찬가지였다. 불행했던 기억은 대부분 지워진 채,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만 남아 그 시절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있다.
아마 많은 사람이 필자와 같은 경험을 겪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의 기억은 흐려진다. 그런 와중에 사람은 좋은 기억만 남기려 하고 나쁜 기억은 모두 잊으려고 한다. 이처럼 과거를 아름답고 즐거웠던 일로만 기억하고 추억하려는 심리를 므두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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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두셀라 증후군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 ‘므두셀라’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라멕의 아들이자 ‘노아의 방주’를 만든 노아의 할아버지로, 무려 969살까지 살았다. 이는 터무니없는 숫자로 느껴질 수 있으나 그 시절에는 인간의 수명이 수백 년을 가뿐히 넘었을 때였다. 그럼에도 969살까지 살았다는 것은 충분히 놀라운 일이며, 므두셀라는 그 후로 장수의 상징이 되었다.
그럼 생각해 보아라. 현대 의학으로 인간의 평균 수명은 100세이다. 그러나 현재 많은 사람이 20대에 들어서면서 인생의 번아웃을 느끼고, 무기력함에 빠지고 있다. 그렇다면 900년이 넘는 긴 삶을 살았던 므두셀라는 얼마나 더 많은 경험을 겪었을까? 그는 세월이 흐를수록 과거의 좋았던 기억만 떠올렸고, 그 시절을 무척이나 그리워했다. 이러한 므두셀라의 모습에서 바로 ‘므두셀라 증후군’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과거의 향수에 젖고, 좋았던 그 시절 그리워한다. 필자의 경우에는 고등학생 때 힘들었던 학창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남성의 경우에는 군대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불행하고 우울했던 기억으로부터 도망가려는 도피심리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퇴행 심리이기도 하다. 과거의 일들을 좋았던 일로만 기억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왜곡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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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가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회귀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본능을 이용한 마케팅이 현대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는데, 이를 레트로 마케팅(Retrospective marketing)이라고 한다. 주로 90년대 음악과 학창 시절, 유행, 풍경을 추억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마케팅으로, 그 시절을 겪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도 색다른 경험을 느끼게 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있으며, 과거 흥행했던 아이돌 노래가 역주행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레트로 마케팅이 성공할 수 있던 요인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므두셀라 증후군을 이용한 것이다.
과거를 즐겁고 아름답게만 기억하려는 심리는 누구나가 지니고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며 당연한 현상이지만, 정도가 심해지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레트로 마케팅처럼 과거의 아름다웠던 한 장면을 추억하되, 그곳에 완전히 빠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 결국 사람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미래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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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므두셀라 증후군. [충청타임즈]. (2015).
URL: https://www.cc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431235
기고/므두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 [설악신문]. (2016).
URL: http://www.soraknews.co.kr/detail.php?number=3124
'므두셀라 증후군', 나의 과거는 아름답기만 하다. [JNBS 전주대신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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