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린
[The Psychology Times=안혜린 ]
영화 「미나리」는 이민자의 땅으로 불리는 미국, 그곳에 뿌리내렸던 ‘1세대 한국인 이민자’들의 삶을 그려낸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이 영화는 그 당시의 이민자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큰 공감을 얻었다. 나는 동시에 「미나리」는 타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들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우리 ‘가족’과 관련된 주제를 생각해 보도록 이끌어 준 영화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아칸소로 이사 온 주인공 가족은 열악한 환경이지만 농사를 짓고 병아리를 감별하는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한국에 살던 외할머니까지 아칸소의 ‘집 같지 않은 집’으로 거주지를 옮기며 본격적으로 다섯 가족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금부터 이 가족의 방대한 이야기를 ‘순자와 데이빗의 갈등’ 그리고 ‘제이콥과 모니카의 갈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민자들의 이야기’에서 나아가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관점으로 분석해 보려고 한다.
할머니와 손자란 이름 아래 세대 및 문화 갈등
먼저, 데이빗과 순자의 갈등부터 다루고자 한다. 손자 데이빗은 미국의 ‘Grandma’와는 다른 행동을 취하는 한국의 ‘할머니’인 순자에게 거부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데이빗의 입장에서 순자는 할머니임에도 쿠키를 만들 줄 몰랐고 자신에게 맛없는 보약을 매일 먹였으며, 자신을 돌봐주기는커녕 종일 TV만 열심히 시청하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순자에게 데이빗은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 않다.”라고 하거나 다른 가족들에게 “할머니한테 한국 냄새가 나서 싫다.”라고 이야기하며 순자에 대한 자신의 거부감을 여실히 표출한다 이후, 데이빗은 할머니인 순자에게 심한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등 자신의 불만을 드러내며 급기야 마시는 물 대신 자신의 소변을 가져다주기까지 한다
이러한 데이빗을 본 관객들은 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혹은 그의 행동에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을 투영하여 불편한 마음을 가지기도 할 것이다. 누구나 종종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철없던 어린 시절이 있지 않은가? 데이빗과 순자의 갈등은 크게 보면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문화를 다시 세대와 국적이라는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이처럼 「미나리」에서는 이들 사이의 문화적 차이로 발생하는 두 가지 갈등을 다루고 있다고 본다. 먼저, 이 두 사람은 할머니와 손자의 관계로 적게는 40년, 많게는 80년 정도까지의 나이 차이가 날 것이라 짐작된다. 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둘의 이러한 나이 차이는 자연스럽게 문화의 차이로 이어질 것이며, 이것이 바로 세대 차이다. 두 사람은 태어난 시대가 다르기에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순자는 아침에 쌀밥 대신 빵이나 파스타를 먹는 손자가 낯설고, 데이빗은 쿠키를 구워주는 대신 보약을 챙겨주는 할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이들의 세대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순자와 데이빗은 살아온 나라 또한 다르다. 그래서 데이빗은 전형적인 미국의 Grandma를 순자에게 기대하는 것이고, 한국의 할머니인 순자는 그런 데이빗의 기대를 결코 충족해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데이빗은 할머니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관계가 되어간다. 이는 할머니인 순자의 노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와 함께 손자인 데이빗이 내적으로 성장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손바닥도 마주쳐야 박수 소리가 나듯이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긴 어렵기 때문이다. 다친 데이빗에게 “You are strong boy.”라고 말해 주는 순자와 어디론가 떠나려는 순자를 붙잡고자 뛰어가는 데이빗에게서 갈등을 해소하고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각자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과 아내란 이름 아래 가치 갈등
두 번째로, 제이콥과 모니카의 갈등을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다섯 가족 중 아버지인 제이콥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 구성원에게 성공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쓴다. 그래서 병아리를 감별하는 일을 잠시 미루고 대출을 받아 한국 채소 농사 사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순탄하게 진행되는 듯 보였던 농사는 물 부족, 거래 취소, 화재와 같은 문제들이 연이어 발생하며 차질이 생기고 만다. 반면 그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 그리고 순자의 딸인 모니카는 자신의 성공보다는 가족들의 안전과 행복을 우선시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심장이 약한 데이빗을 생각해 병원이 가까운 집을 원하고 한국에서 홀로 생활하는 순자를 생각해 미국의 집으로 데려오는 모습에서 모니카의 이러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두 사람은 결혼하여 한 가정을 꾸린 부부이지만, 이처럼 상이한 가치관을 가진 개인들이다. 가족 구성원을 사랑하는 마음은 서로 같지만, 그 방식의 차이가 있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듯싶다. 즉, 제이콥은 현재 자신이 성공해야 미래의 가족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고, 모니카는 미래보다는 현재의 시점에서 가족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이러한 두 사람 사이의 가치관 갈등이 더욱 두드러지는 장면은 아칸소로 이사한 영화의 초반부 장면과 병원에서 농사를 주제로 다투는 후반부 장면이었다. 제이콥이 아칸소에 마련한 새로운 집은 모니카에게는 전혀 집으로 보이지 않았다. 땅에 집이 박혀있지도 않은 바퀴 달린 집이 소중한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안전한 ‘집’일 리가 없다고 모니카는 생각했다. 또한, 집의 위치가 데이빗의 병원과 거리가 있는 외지였기 때문에 모니카는 더더욱 제이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사한 날 밤, 이들의 새로운 보금자리에 태풍이 찾아왔고 모니카는 집의 안전을 확신하지 않는 제이콥의 무책임한 모습을 보면서 결국 분노를 터뜨렸다. 그날 이들의 싸움은 단순한 부부싸움이 아닌 가치관 대립이었다. 자신의 성공을 꿈꾸며 채소 농사를 하기 위해 아칸소의 바퀴 달린 집에서 살자는 제이콥과 현재 가족들의 안전과 행복이 더 중요한 모니카의 첨예한 갈등이었다.
이 첫 번째 대립은 제이콥이 한국에서 모니카의 어머니인 순자를 이들의 미국 집으로 데려오는 조건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이후 둘은 다시 한 번 같은 문제로 가치관 갈등을 보여준다. 순자로 인해 집에 불이 나기 직전, 모니카와 제이콥은 데이빗의 병원에서 농사를 주제로 다투게 된다. 모니카는 제이콥에게 농사 사업을 그만두고 캘리포니아로 다시 이주해 가족과 함께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제이콥은 그런 모니카에게 “아빠가 성공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라 주장하며 혼자서라도 아칸소에 남겠다고 말한다. 모니카는 가족보다 농장 일을 우선시하는 제이콥의 모습에 실망하며 둘의 관계가 이대로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채 끝나는 듯싶었다.
그러나 이후, 불이 난 창고에서 제이콥이 농사 수확물보다 아내 모니카를 구하는 장면을 통해 그가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보다 남편으로서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 지향하는 바가 조금 다르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았기에 제이콥과 모니카의 갈등이 해소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두 사람은 지속적으로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상대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남편을 믿어주며 탐탁지 않은 아칸소의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려고 노력한 모니카와 아내의 어머니인 순자와 미국에서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한 제이콥, 가족보다 농장을 우선하는 남편에게 실망했으면서도 불이 난 창고의 농사 수확물을 지키고자 몸을 던지는 모니카와 농사 수확물보다 그런 아내를 구하는 것이 먼저였던 제이콥에게서 갈등 해소를 위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가족 구성원을 나와 다른 ‘개인’으로 인정하려 노력하기
순자와 데이빗 그리고 모니카와 제이콥 사이의 갈등과 이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분석하면서, 현대 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자신과 다른 가족의 모습을 인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인식을 확장할 수 있었다. 가족이란 서로 다른 경험을 하며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개인들의 집합체이다. 같은 집에서 함께 산다고 해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견해를 가졌을 것이란 생각은 아주 단편적이고 잘못된 편견이다. 때문에, 서로 다른 개인들이 하나의 가족으로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가족 구성원들은 저마다의 노력을 해야 한다. 즉, 자신과 다른 가족 구성원과 갈등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순자와 데이빗처럼 혹은 모니카와 제이콥처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려는 정신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나리」는 ‘1세대 한국인 이민자’들의 이야기이면서도, 갈등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오늘날 우리 가족의 모습을 담아낸 영화였다. 우리는 종종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해 다투고 미워하기도 하지만 그들을 존중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그래서 「미나리」란 영화는 우리 가족의 일상이 은은하게 담겨있기 때문에 이민자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에게도 잔잔한 여운과 감동을 전달해 준 창작물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연약하지만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나는 미나리처럼, 그리고 절망스러운 상황에 굴하지 않고 다시 삶을 열심히 살아가려고 다 함께 노력하는 영화 「미나리」의 주인공들처럼 오늘날 우리 가족들 간에 혹은 앞에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친다고 해도 우리도 그것을 잘 극복할 수 있길 바라며 비평을 마치고자 한다. 함께 살아가다 종종 우리가 서로 대립하는 순간이 찾아온대도 순자와 데이빗 그리고 모니카와 제이콥처럼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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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정이삭, <미나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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