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
[The Psychology Times=이유진 ]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모든 이들이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에서 트라우마가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자주 다뤄진다. 일상생활에서 '나 그거에 트라우마 있어'라는 말로 특정 물체에 대한 비호를 들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그리 가벼운 단어가 아니다. 트라우마는 재앙적 사고로 인한 외상이나 정신적 충격을 의미하며 다양한 상황으로 인해 발생한다. 성폭행, 강도로 인한 죽음의 위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등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즉 트라우마의 본질적인 핵심은 죽음의 각인이다. 트라우마를 한 번 겪은 사람은 몇 시간, 며칠, 몇 년의 시간이 지나도 세월의 흐름에 관계없이 그때의 감정, 상황, 기억을 분 단위로 기억하며 사건 속에서 살아간다. 강렬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으며 자신을 공감해주는 사람의 부축을 받으면서 남은 생을 통과한다.
사회적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 또한 존재한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재적응상 문제가 될 정도의 범국민적으로 우울과 분노 같은 심리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연구가 다수 보고된 적이 있으며 최근 발생한 이태원 참사 때 주된 희생자와 나이가 비슷했던 또래 20-30대에게 더 치명적으로 다가왔다는 글이 있다.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 외에도 목격자 등 해당 행동을 막지 못한 사람도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PTSD 진단 기준에서 트라우마를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PTSD와 흡사한 증상을 호소하는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를 도덕적 손상이라고 부른다. 도덕적 손상은 심리적인 우울, 불안, 분노, 죄책감, 수치심, 자기 증오, 손상된 감정을 따른다. 이외에도 사회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행동, 도덕성에 대한 믿음의 상실 등을 동반하기도 한다.
또한 전 국민이 함께 겪은 일제강점기, 남북 분단 등의 큼직한 사건은 사회적 트라우마를 넘어 민족적인 트라우마로 남는다. 이를 '역사적 트라우마'라고 정의한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개인이 겪는 트라우마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첫 번째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자아 심리학 속 트라우마는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주로 겪는 반면 역사적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은 과거의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게서도 자주 나타난다. 더욱 신기한 것은 사건의 세대를 넘어 후세대까지 트라우마가 유전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일제강점기를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일제강점기 독립투사의 수모에 분노하며 눈물 흘리고 다른 나라에는 져도 일본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분위기를 들 수 있다. 라카프카는 사건을 경험하지도 않은 후세대가 트라우마를 겪는 원인을 전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이는 "연구자와 자신의 연구 대상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과정들을 자기 자신의 담론이나 관계 속에서 수행적으로 반복, 재현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사회 내 해당 사건을 경험한 이들과의 직접적인 교류와 미디어와 같은 매체를 통한 간접적인 교류를 통해 후세대는 전이를 경험한다.
집단적인 트라우마는 집단 전체의 리비도가 좌절되는 과정이다. (리비도란 프로이트가 제시한 개념이며 정신 활동의 에너지를 의미한다) 일본이 위안부에 관련된 망언을 할 때 한국인은 일제강점기를 떠올리며 집단적인 분노를 표출하는데 이는 한국인이 식민 트라우마를 갖고 있으며 일본, 즉 외세 집단과 조선 민족 집단의 관계에서 발생한 트라우마인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역사적 트라우마가 세대를 거쳐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가 치유되지 않은 사회구조적 조건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그것이 치유되지 않으며 새로운 사건과 연결되어 부가적인 트라우마가 양산되고 있는 결과일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과거의 역사 사건에 대한 분석을 통한 트라우마 원인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트라우마 대상에 대한 감정의 핵심 원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그들에 대한 분노에 집중하기보다는 우리에 대한 믿음을 더 키워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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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부종, 김세건, 손원희, 최윤경, 「세월호 1주기 뉴스 노출 시간이 집단 정서에 미치는 영향」, 『한국심리학회 연차학술대회』, 2015, 8권, 278쪽.
심우찬,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한 범국민적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 맥락적 접근으로의 도덕적손상에 관한 연구」, 『서강대학교 생묭문화연구서』, 2017, 제 44집, 167-222 (56 pages)
김종곤, 「 '역사적 트라우마' 개념의 재구성」, 『시대와 철학』, 2013, 24권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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