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연
[The Psychology Times=이해연 ]
‘사랑의 시인’이라 불리는 진은영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요즘 들어 갑자기 죽은 청소년이 많다는 것이다. 죽음과 자살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키워드보다도 주목하고 싶은 건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갑자기’이다.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청소년들이 갑자기 죽었다고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유서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아는 단어는 ‘어쩔티비’인데 이는 유서에 쓸 수 없는 단어이다. 청소년이 고통을 표현하는 일이 마지막까지 좌절되어 유서가 없고, 그러니 남이 보기에 ‘갑자기’ 죽은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런 현상이 사회 곳곳에서 고요하고 사소하게 일어나고 있다.
적합한 어휘를 골라 고통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감정을 건강하게 돌보는 일 중 하나이다. 심리학자 메튜 D. 리버먼 교수는 한 실험에서 중대한 시험을 앞둔 학생들에게 걱정과 불안함에 대해 글로 쓰게 했다. 그리고 해당 학생들이 감정을 표현하지 않은 학생들보다 더 좋은 점수를 거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교수는 이 밖의 다른 실험들을 통해서도 감정을 적절히 서술할 수 있을 때, 감정의 고통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줄어듦을 확인했다.
감정을 곧잘 인식하고 표현하면 행복한 삶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 또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어휘를 고르는 동안 감정을 정리할 수 있게 되며 알 수 없던 마음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다. 마음의 이름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건 자신을 지키고 성숙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 있어 창피함, 외로움, 무안함, 짜증 남… 따위의 많은 감정은 ‘킹 받는다’라는 하나의 단어로 정의된다. 한 집단이 공통적인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며 유대감을 형성하는 걸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진은영 시인은 인터뷰의 말미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어쩔티비’를 쓰는 아이들의 어휘력이 문제가 아니라, 또래 집단에서 쓰이는 그 외의 단어들을 들어줄 대상이 아이들에게 있는가부터 살펴야 한다고 말이다. ‘감정의 2요인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간략히 말하자면 감각을 느끼는 것과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인지적인 과정은 다르다는 이론이다. 즉 느끼는 감각이 불확실하면 감각 자체를 주변 정보를 보고 힌트를 얻어서 감정의 이름을 붙인다는 것이다.
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캐나다의 심리학자 도널드 더턴과 아트 아론은 흥미로운 실험 하나를 진행했다. 단단한 콘크리트 다리와 위태로운 흔들다리를 건너는 그룹을 나누고, 각각 그룹이 다리를 건너는 동안 반대편에 서 있는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확률을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결과는 흔들다리를 건넌 그룹이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심리학자는 이 실험을 통해 위험한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심을 사랑의 설렘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는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 해석하곤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주변 환경은 우리의 감정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친다. 앞서 말했듯 ‘킹 받는다’는 문제가 될 게 아니다. 하지만 고통받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킹 받는다’만이 남아있다면, 어쩌면 일종의 표현이자 토로였을 그 말이 그저 메아리처럼 맴돌고만 있다면,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돌보는 데 어리숙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는 일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시적이기도, 지속적이기도 하며 단조로운가 하면 복합적이다.
때로는 이 모두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은 뛰어난 작품을 탄생시킨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조차 물음 하나를 남겼다.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정말 가능할지 말이다. 일평생 언어와 동고동락한 위대한 소설가마저 감정을 정확하게 전하는 일에 의문을 품었다. 그러니 더더욱 고통을 표현하는 일이 좌절되는 문제를 청소년 개인의 차원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서 청소년들을 돌보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시인의 말대로 청소년들에게 과연 ‘킹 받는다’라는 말 너머의 마음과 감정을 들어줄 수 있는 대상이 있는가. 그런 대상과 환경이 구축될 수 있는 사회인가.
학교 학원 집으로 반복되는 일상, 학습된 언어로 덮어둔 고민과 마음, 그보다 우선시되는 숫자와 기호들. 그런 것들이 청소년들을 어느 곳으로 어떤 모양으로 내몰았는지, 우리는 이미 무수히도 많이 목격해왔다. 이제라도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어쩔티비’ 외의 언어와 관계를 돌려주어야 한다. 원래 그들이 누려 마땅했던 것들, 이를테면 건강한 관계와 바람직한 소통망 따위의 것, 자신의 감정을 긍정하고 올바르게 표현할 줄 아는 태도 같은 것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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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 우영희, (2019), 『감정인식과 감정표현이 인간관계와 행복에 미치는 영향』, 대전대학교 상담대학원, 대전
2. HiDoc 뉴스, [Website], 『참지 마세요, 표현하세요… 나를 위해서라도 감정을 말로 표현해야 하는 이유』,
2021, https://www.hidoc.co.kr/healthstory/news/C0000636233
3. 시사IN, [Website], 『10년 만에 돌아온 ‘사랑의 시인’』, 2022,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496
4. SISUNnews.co.kr [Website], 2014, https://sisu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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