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윤
[The Psychology Times=허정윤 ]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중 ‘스트레스’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사와 뉴스 등 온갖 다양한 매체들에서 ‘스트레스’를 다루는 콘텐츠는 넘쳐난다. 이곳저곳에서 ‘현대인들의 스트레스 지수’, ‘스트레스의 부정적인 측면’, ‘스트레스 해소 방법’과 같은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제는 ‘스트레스’라는 말 자체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현대인들의 그 단어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스트레스가 얼마나 만성적이고 심각한 문제이며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며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 과학적인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는 어떠한 원리로 작용하는 것일까?
위키미디어 제공과학적인 스트레스
어떠한 외부 사건으로 인해 몸속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마구 분비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생존 모드’에 돌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출할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인식되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이와 대비되어 우리가 비교적 평온한 상태에 있을 때는 부교감 신경계가 활성화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교감신경계가 어떤 일을 하는지를 논하는 것이 이 기사의 주제는 아니지만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기 시작하면 우리의 몸은 우리가 마주했다고 느끼는 엄청난 위협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교감 신경계가 흥분하면 심장박동수와 혈액 순환이 어마어마하게 빨라지고, 동공이 확장되어 주변 시야를 확보하고, 면역 체계가 약화되며 온갖 장기까지 그 영향이 미친다. 이렇게 단숨에 생존 모드의 상태를 만들어 우리는 위험에 즉각적이고 본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것이다.
생존 모드의 기원
그렇다면 왜 우리의 몸은 스트레스 호르몬에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여 작은 위협 요인에도 온갖 화학 물질을 내뿜게 된 것일까? 그것은 먼 옛날 우리의 몸이 외부 현실에 존재하는 실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취했던 자연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이 진화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투쟁-도피 반응’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고대의 원주민이 먹을 것을 구하다가 맹수를 마주쳤다고 해보자. 맹수와 맞서서 싸울지, 도망갈지, 숨을지 빠르게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한순간에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에 즉각적인 판단과 행동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상황에서 몸이 생존 모드로 전환되어 맹수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현대의 상황은 어떠할까?
이렇게 즉각적으로 마주한 ‘맹수와의 만남’이라는 외부 상황에 대처하여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우리의 몸은 생존 모드에서 벗어나 다시 원래의 부교감 신경계 수준이 되며 균형 잡힌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상황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맹수가 쫓아오는 상황이 아닌 인간관계의 일들이나 직장에서의 상황들이 우리의 교감 신경계가 활성화 되게끔 하는 방아쇠로 작용한다. 즉 과거만큼 우리의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가해지는 상황이 아님에도 우리의 몸은 상사의 이메일이나 헤어진 전 연인의 연락, 상대방이 무심코 던진 말에 즉각적으로 생존 모드로 들어가게 된다. 이와 동시에 우리의 몸은 이에 맞서기 위해 엄청난 양의 호르몬을 내뿜는다. 하지만 여기서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맹수가 떠나면 해결되는 것처럼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몸은 사라지지 않는 외부 위험에 대항하여 계속해서 흥분된 상태를 지속하게 된다.
계속되는 생존모드
계속해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방출되는 상태가 지속되면 몸이 균형을 잃게 되고 오랜 기간 위협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 몸은 정상적인 작용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가끔 위험 상황이 닥칠 때만 비상경보기가 울리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몸이 제대로 된 휴식과 안정을 취하지 못하고 정신과 신체 모두가 쇠약해질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스트레스 호르몬이 방출되는 과정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의 몸이 마구잡이로 작은 일에 생존 모드로 진입하는 것을 경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험 점수를 보고, 새로운 과제 알림을 보고, 혹은 제출한 보고서가 대폭 수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연락을 보고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즉각적으로 생존 모드에 접어들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차분히 안정시키고, 대응할 방안을 생각하고 온갖 나쁜 호르몬을 마구 내뿜는 스트레스 모드에서 빠져나와 평정심을 유지하여 닥친 일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간다면 우리 몸은 금세 다시 균형과 안정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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