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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진다연 ]


 

필자에게 ‘우울’이란 단어는 여전히 잘 와 닿지 않는다. 지겹도록 익숙한 것에 비해 잘 만져지지 않는 감정이다. 행복, 슬픔과 같은 단순한 감정으로 치부하기엔 그 뿌리가 너무 단단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특정한 감정이 지속된다는 것만으로도 병이 될 수 있다는 게 인정의 과정을 두렵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슬픔증’은 없지 않은가. 그 경중에 대해서도 말하기 어렵다. 고비 같은 새벽을 넘기면 고작 하룻밤 사이에 까마득해질 때도 있는 반면, 조금 무기력하게 시작하는 아침이 몇 달이 넘게 일상을 좀먹기도 한다.

 


우울 자체에 모호함을 느껴서인지, 필자는 스스로가 우울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자주 회의감을 가졌었다. 여러 우울증 진단 기준도 이미 어엿하게 존재하지만, 필자는 본인 나름의 기준을 세우는 쪽을 택했다. 바로 우울, 그 정의에 충실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鬱(울), 무언가 꽉 막힌 거 같을 때 우울을 인지한다. 가슴이 답답하다던가, 숨통이 막힌다던가, 정체됨을 느끼는 모든 증상 말이다. 수렴적인 성질이 강하다는 부분에서 우울을 다른 여타의 부정적 감정과 구분하곤 한다. 슬프면 울부짖고, 불안하면 방안을 이리저리 맴돌고, 분노하면 입을 막고 소리를 지르지만, 우울하면 막히고, 갇힌다. 제 혼자만 수동인 것이다.

 



한의학에서의 우울증



필자가 우울의 진단에 ‘鬱’을 사용하기 시작한 데에는 한의학적 개념의 역할이 컸다. 한의학에서는 우울증을 주로 ‘氣鬱(기울)’, 직역하면 ‘기가 막히는 것’으로 설명한다. 한의학에서는 생명 활동이 정, 신, 기, 혈의 4요소로 영위된다고 보는데, 여기서 기는 신체 활동의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이다. 다른 요소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동력이 되어주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심장의 펌프질 및 이로 인한 혈액 순환, 이러한 ‘動’ 자체를 기의 역할로 본다. 아무리 혈액이 충분해도 기가 순환 및 전신으로 산포시켜주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이런 기의 흐름을 막는 鬱結(울결)을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울결의 증상은 여러 유형이 있는데, 간기울결형, 심비양허형, 담기울결형, 기허담결형, 기울화화형, 음허화왕형 총 7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간기울결에 대해 살펴보자. 한의학에서 간은 정신작용을 조절함으로써 심정을 유쾌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간의 기운이 막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근심하고 감상적이게 되며(多愁善感), 심장이 답답하며(心煩) 울적하고 즐겁지 못하며(抑郁不樂) 한숨을 잘 쉬고(善太息) 울먹거리는(欲哭)등의 억울성 정서를 초래한다고 본다. 우울증의 증상과 대부분 동일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기만 할까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우울증은 마음의 병인데, 어떻게 신체 기관의 병이 우울을 초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칠정’이라는 한의학적 개념을 꺼내어 보자. 칠정이란 기쁨(喜), 성냄(怒), 근심(憂), 사려(思), 슬픔(悲), 놀람(驚), 두려움(恐)의 7가지의 정서 상태를 말한다. 칠정의 정서가 지나치면 각 장기의 기와 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로 인해 병이 초래될 수 있다. 또 반대로 장기에 병이 생겨 칠정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즉, 지나친 근심 또는 슬픔으로 신체 기관이 정상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그로 인해 부정적 정서가 더욱 악화 되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우울증 치료의 한의학적 접근법은 이 악순환의 굴레를 끊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여러 가지 치료법으로 마음을 안정시킴과 동시에, 신체를 건강하게 함으로써 부정적인 정서로부터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입술 옆에 포진이 생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처럼 체내에 잠복해 있다가, 건강이 나빠져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기회 감염균’ 이라고 한다. 흔히들 우울증은 감기와 같다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 감염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 아팠냐는 듯 훌훌 털어낼 수 있는 우울도 있지만, 평생 마음 어딘가에 잠복해 있으면서, 빈틈을 보이면 귀신같이 나타나 온몸을 누비고 다니는 우울도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앞선 한의학적 시선을 우울증에 대한 진단뿐만 아니라, 예방을 위한 지침으로써도 활용해 보는 건 어떨지 권유해본다.


인간으로서 감정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니 평소 몸을 튼튼히 하고 마음을 가지런히 하여, 밀려오는 우울함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견고한 벽을 쌓는 건 어떨까? 우울을 건강히 인정하면서도 함몰되지는 않게, 우울의 공격으로부터는 나를 방어할 수 있도록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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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한국한의학연구원. (2016). 우울증 韓醫임상진료지침. 엘스비어코리아.

신흥묵. (2016). 장부경락학. 청홍

김상현 외.(2020). 울증(鬱證)의 개념 정립에 관한 문헌고찰. J of Oriental Neuropsychiatry. 2020;31(2):121-133

민족의학신문 [Website]. (2014). URL: http://www.mjmedi.com/news/articleView.html?idxno=27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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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3-20 18: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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