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우
[The Psychology Times=최지우 ]
세상을 단순하게 보기 위한 노력
세상은 복잡하다. 특히 현대 사회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해서, 뭔가 뭔지도 모른 채로 지나가는 것만 같기도 하다. 이렇게 복잡하고 불안정한 세상에서, 우리는 세상을 좀 더 단순하게 보기 위해서 인간을 나누고 정의한다. 인간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정의를 내리고 그들을 그룹으로 나눠야 수많은 인간들을 좀 더 쉽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방식의 예로 예전엔 혈액형, 별자리 등이 있었지만 요즘은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MBTI다. MBTI는 세계의 80억 인구를 16개의 유형만으로 나누는 기법이다. 이제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얘기되는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서로의 MBTI를 맞추기도 하고, 누군가의 MBTI를 들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략적으로 파악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필자는 INFJ다. 다섯 번의 MBTI 검사 중 다섯 번 모두 INFJ가 나오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 모두 ‘INFJ의 정석’이라는 식으로 나를 얘기해서 ‘나는 인프제’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매우 깊게 박혀 있었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왔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면서 나를 설명하기 위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계속 생각해야 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몇십 년인데 나를 단 몇 분 안에 설명해야 한다니. 그렇게 간단하게 소개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가 MBTI였고, 그 짧은 시간 안에 ‘나’를 어떻게 압축해서 설명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래서 나를 짧은 몇 단어로 규정하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한창 MBTI에 ‘과몰입’하던 시절, 인프제의 특징들을 읽어보면서 나와 되게 비슷하다고, ‘진짜 인프제‘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비슷한 점들도 많았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어느 순간 그 모든 특징들을 나에게 끼워맞추고 있었던 것 같다. MBTI 특성상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같은 설명들이 많은데, 필자는 그 설명들로 하나의 틀을 만들어 나를 그 안에 가두고 있었다.
필자가 규정했던 필자의 특징 중 하나는 ‘낯을 많이 가리고, 좁고 깊은 관계를 선호한다’였다. 물론 그때의 필자는 이런 사람에 가까웠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규정하다 보니 더 그런 사람이 되어갔다. 예를 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엄청 잘하고 왔던 날이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경험에 대해 별 생각이 없겠지만, 나는 내가 낯을 가리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빠져 ‘오늘은 나답지 않았네’라고 생각해버렸다. 내가 규정해놓은 ‘나‘의 틀에서 벗어난 경험을 하게 될 때 그것이 나답지 않고 이상하다고 느껴버렸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날 수 없었고 ‘나‘는 점점 작고 너무나도 특정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내가 정해놓은 나의 틀을 벗어나서
그러다가 얼마전 큰 변화를 겪었다. 지금껏 내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고 원래의 필자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게 된 적이 있었다. 정말 새로운 나를 마주하게 되면서 ’나‘는 원래 생각해오던 것보다 훨씬 더 변화무쌍하고 큰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를 정의하고 판단하는 것을 멈추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나니, 새로운 일에도 두려움 없이 도전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 전에는 ‘나는 이런 특성이 있으니까 이 일은 못할 거야’라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고 도전을 피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가 다양한 면을 가진 존재이니 단 몇 단어로 정의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나의 경계를 넓혀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 마음가짐은 타인에게도 적용된다. 우리가 보는 타인은 그들의 극히 일부의 면일 뿐이다. 그들도 나처럼 단 몇 가지 단어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극히 일부만 보고 ‘이 사람은 나랑 안 맞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판단하기보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는 노력이 중요할 것 같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나도 설명할 수 없는데 타인은 오죽하겠는가.
나의 세상이 너무 좁게만 느껴진다면 내가 지금까지 나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었는지 돌아보자. 그리고 잠깐만이라도 인간과 세상에 대해 판단하는 것을 멈춰 보자. 열린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더 크고 잠재력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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