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민
[The Psychology Times=이지민 ]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래, 드라마, 소설 등 다양한 매체에서 늘 제외되지 않는 주제이다. 그러나 매체에서 보여주는 사랑의 모습은 획일적이다. 예를 들면 최근 넷플릭스에서 크게 유행하는 <더글로리>의 남자 조력자는 작중 여주인공을 처음 본 순간부터 호감을 느낀 후 그녀가 원하는 것을 도와주고자 노력한다. 여주인공이 떠난 이후에도 꾸준히 그녀를 떠올리고 해마다 문자를 보내며 안부를 전한다. 7~8년 만에 여주인공이 문자에 답을 하자 곧바로 설레하고, 그녀를 위해 직장을 옮기며 합법적이지 않은 일을 기꺼이 가담하기도 한다. 이 비합리적인 그의 행동의 개연성은 오직 ‘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 설명되고, 시청자들은 이에 납득한다.
여러 매체에서 사랑은 불변의 진리이고 남성의 사랑은 대부분 맹목적으로 여성의 사랑은 헌신적으로, 그리고 부모의 사랑은 특별한 설정이 없다면 꾸준하고 따스하게 묘사된다. 제아무리 차가운 남자주인공이라도, 여자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면 다정하게 변한다. 작품의 대표 커플은 다시는 깨지지 않고 대표 커플 중 한 명을 좋아했던 서브 주인공은 이후 마음을 깔끔하게 정리하거나 작품에서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매체 속 작품의 완성도와 ‘기승전결’을 갖춰야함을 감안하더라도, 왜 꼭 맹목적이고 헌신적이고 불타는 것만 같은 사랑만이 다뤄지는 것인가?
심리학자 로버트 스틴버그(Robert Sternberg)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주장하며 사랑이라는 삼각형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사랑은 친밀감, 열정, 결심/헌신이라는 세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요소의 균형 상태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한다. 친밀감이란 상대방에 대해 느끼게 되는 애정과 연결감, 결합되어 있다는 느낌을 일컫는다. 열정이란 낭만, 신체적 매력, 성욕 등과 같은 다양한 욕구들을 말한다. 결심/헌신이란 인내와 책임감과 관련한 사랑의 요소로 단기적, 장기적이라는 두 측면으로 구분되어 있다. 단기적인 것은 어떤 사람, 존재를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것, 장기적인 것은 사랑을 지키겠다는 헌신을 말한다. 이 세 요소들의 정도에 따라 여덟 가지 하위요소가 나오며 이 요소들은 사랑의 종류를 분류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스틴버그는 이 세 가지의 요소가 균형 있게 정삼각형을 이룰 때 완전하고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보았다.
스틴버그가 주장하는 ‘성공한 관계’를 기준으로 친밀감은 두 측면으로 나뉘어 다른 양상을 보인다. 우선 ‘관찰 가능한 친밀감’은 사랑하는 관계끼리 시간을 거듭할수록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되어 점점 줄어든다. 그러나 이 관찰 가능한 친밀감은 낮아지더라도, 잠재적인 친밀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기에 친밀감은 시간이 갈수록 우상향하는 모양을 보인다.
반면 열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양상을 보인다. 열정은 사랑할 초기에는 매우 빠르게 발달하지만, 그 이후의 상대는 전만큼 자극이 되지 않기에 습관화가 되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는 연인 사이에 권태감을 느끼는 것과도 큰 관련이 있다. 결심/헌신 요소는 ‘성공한 관계’를 기준으로 0에서 시작하여 느리게 증가하다가 한 시점을 기준으로 점차 빠르게 증가하고, 장기적으로 관계가 지속될 시 이전보다는 대체로 감소하는 양을 보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랑의 요소 중 ‘열정’만이 급격한 감소를 보인다. 사랑은 다른 감정들보다 호르몬 등 육체적인 증거들이 상당한 정서이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들의 유효기간은 개인차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2년을 넘기지 못한다. 연인과의 관계에서 권태감은 어쩌면 당연히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로맨스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사랑에 맹목적이고 헌신적이다. 스틴버그의 이론과 호르몬의 영향에 따라 드라마의 연인들도 서로에게 시간이 지나면 권태감을 느끼고 이별할 수 있겠지만, 작품은 늘 그 시기 전 그들이 가장 행복하고 맹목적일 때 막을 내린다. 그들의 사랑은 이 세 가지 요소의 균형 없이 열정이 감소하지 않는 양상만을 보인다. 로맨스 작품의 기승전결은 사랑의 ‘열정’ 요소로 채워지고, 사람들은 여자 주인공만을 위해 자신의 온 삶을 바쳐 노력하는 남자 주인공을 보며 환호한다. 대중들의 인기를 끄는 사랑은 어째서 사랑의 유통기한 따위는 없이 영원하게만 보이는 열정 가득한 사랑인 것일까?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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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G. 마이어스,C. Nathan DeWall. (2022). 마이어스의 심리학개론(제 14판). 서울: 시그마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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