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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한유진 ]


일러스트: 이철원

왕의 DNA부터 극우뇌 아이까지


뉴스부터 소셜미디어까지 뜨겁게 달군 일명 '왕의 DNA' 사건에 대한 관심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교육부 5급 사무관 부모가 담임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하였고, 교육청은 즉각 해당 교사를 직위해제했다는 것이다. 교체된 후임 담임교사는 부모로부터 자녀에 대한 황당한 요구사항이 적힌 편지를 받았다. 편지는 아이가 왕의 DNA를 가졌으므로 왕자에게 말하듯 권유하고, 부탁해야 하며 어떤 행동도 제지하지 말고, 인사를 공손하게 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등 무리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왕의 DNA'라는 이 특이한 단어는 곧장 대중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단어의 출처는 대전의 한 사설연구소였으며, 이들은 자폐와 언어 및 지적장애, ADHD를 약물 없이 상담만으로 완치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었다. 연구소는 품행이 잘 교정되지 않는 심한 ADHD 아동들을 두고 '극우뇌' 혹은 '왕의 DNA'라고 칭하면서 비상식적인 솔루션을 제기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왕자에게 대하듯 말하기, 행동을 제지하지 말기 등 비상식적인 요구들이었던 것이다. 연구소 커뮤니티에는 극우뇌 아이가 동생에게 폭력을 휘두르도록 방치했거나, 좋아하는 음식을 제한하지 않고 주어 비만이 되었다는 등 실패 후기도 다수 올라와 있다. 



사이비 치료로 향하게 되는 이유


일각에서는 이 방식이 2013년 논란이 되었던 '안아키', 혹은 사이비 종교와 비슷하다고 지적하며 비난하고 있다. 장애 아동의 부모들이 헛된 희망에 빠져 자식을 망치고 학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왜' 이러한 발달장애 아동의 부모들에게서 사이비 치료를 믿는 경향이 더 두드러지고 있는지 그 이유다. 누구든지 불가능한 일에 큰 믿음을 가지거나 헛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아픈 아이를 데리고 있는 부모들은 왜 유독 사설 연구소, 일개 치료사 등이 설파하는 대체의학을 깊이 믿고 따르는가? 그런 마음이 들도록 유도하는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자폐성장애 연구를 진행해 온 서울교육대학교 권정민 교수는 근거 없는 사이비 치료에 매몰된 부모들을 심층 면담한 논문을 제시했다. 발달장애 아동의 경우 일반적으로 '비장애 같은 외모'를 지녀, 문제행동이 없으면 전혀 장애를 의심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습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이는 아동도 있다. 자폐성장애는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주류지만, 부모는 겉보기에 멀쩡한 아이를 보며 자연스럽게 아이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절박함을 갖게 된다. 이에 더 나아가 완치가 가능하다는 희망 고문 속에 자신을 밀어 넣기도 한다. 이런 희망 고문은 곧장 해결책을 주는 치료사에 대한 신격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은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과 매우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사태의 발단은 오직 발달장애 아동과 부모의 무지함에만 존재하는가? 권 교수는 극우뇌 이론과 같은 사이비 치료사의 등장에 장애 혐오가 크게 일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를 질병으로 여기고, 부정적으로 인식해 비난하는 행위가 부모에게 극심한 죄책감과 수치심을 준다는 것이다. 장애가 사회적 낙인이 된 이상 부모는 아이의 미래는 물론 가깝게는 직접적 진단까지도 두려워하게 된다. 또한 사회에 만연한 혐오는 필연적으로 치료에 대한 정보의 질과 접근성을 떨어뜨려 갈수록 더 많은 아동과 부모를 사이비 치료의 수렁에 빠뜨릴 수 있다. 사이비 치료에 빠진 학부모들 중 하나는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 안내에 따라 치료를 그만두었는데, 담임교사와 특수교육 담당자가 바른 정보를 안내하고 부모를 적극적으로 설득했기 때문이었다. 공교육과 병원, 사회 전체가 힘을 합치는 것이 부모가 바른 치료를 받고 복지 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길이다.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하는 부모의 '마음'


2021년 조사된 온라인혐오표현인식 통계에서 장애인 혐오는 67%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하며 저소득층, 이주민, 북한이탈주민보다도 앞선 모습을 보였다. 왕의 DNA 관련 기사에는 문제 아동을 특수교육시설로 '치워 버려야' 한다거나, 부모들이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요지의 댓글이 넘친다. 발달장애 아동의 부모들에게 조금 더 공감하고, 그들의 두려움과 낙인에 대한 공포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아마 우리 모두가 함께 수행해 나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권정민. (2022). 자폐성장애 아동의 부모는 왜 사이비 치료를 선택하는가. 자폐성장애연구, 22(2), 11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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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8-26 23:4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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