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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한유진 ]




귀를 막고 싶은 사람들


바야흐로 '고자극 시대'가 도래했다. 우리는 정말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자극의 늪을 헤엄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본래 사람은 깨어 있는 내내 수많은 자극을 맞닥뜨리게 되지만, 요즘에는 원하는 경우라면, 업무 중이든 길을 산책 중이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중이든, 언제든지 자극을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자극을 몸에서 떼어놓기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그마한 '도파민 상자'와 같은 휴대폰을 어디든 들고 다니며, 집에서 혼자 음악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서 어디에서든 이어폰을 끼고 청각적 자극을 추구할 수 있다. 하지만 휴대폰을 끄고 헤드폰을 머리에서 벗는다고 해도 자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거리에만 나가도 수많은 전광판과 홍보 영상, 그 영상이 담고 있는 소리가 당신의 눈과 귀를 점거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과 함께 동시에 '도파민 디톡스'라는 단어도 유행하고 있다. 이런 자극들에 과하게 노출되어 무기력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도파민 디톡스를 진행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과도한 자극을 분리해 내어 뇌의 변화와 기능 저하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자극 속에 살면서도 자극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고 있다. 모든 자극을 차단하고 절대적인 평화 속에 있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봤을 법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쯤에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사람은 정말 자극이 없는 세상을 원하고 즐길 수 있을까? 고자극 시대는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것일까?



자극 없는 세상, 인간을 미치게 한다.


1930년 독일, 심리학자였던 볼프강 메츠거(Wolfgang Metzger)는 처음으로 간츠펠트 효과(Ganzfeld Effect)를 발표 후 체계화했다. 이 이론은 기본적으로 시각이나 청각 등의 자극을 갑작스럽게 완전히 없애 버릴 경우, 뇌 자체가 환각이나 환청을 만들어 낸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뇌가 누락된 신호를 찾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신경 잡음을 증폭시키고, 이에 따라 사람은 모든 감각을 차단한 가운데에서도 기하학적인 패턴을 보거나 불규칙적인 소리를 듣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실험실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일상생활 속에서도 빈발하는데, 특히 갱에 갇힌 광부들에게서 이런 문제가 자주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고립된 광부들은 빈번하게 환각을 보며, 사방이 눈밖에 보이지 않는 극지방 조난 상태나 심각한 경우 독방에서 오랜 수감을 거친 중죄인에게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이들은 대개 현실과 환각 사이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한다. 2006년 BBC 방송에서는 이를 직접 실험으로 증명했는데, 빛과 소리가 완전히 차단된 독방에 실험자들을 이틀 간 가두어 둔 것이다. 이들은 입실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끊임없는 환각 현상에 시달렸으며, 뱀이나 용 같은 상상 속의 괴물이라는 구체적인 형상까지 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실험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으며 기억력과 계산 능력에도 문제가 생겼다. 



'고자극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


간츠펠트 효과를 근거로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과도한 자극으로부터 도망치려 하지만, 동시에 완전한 자극의 박탈을 견딜 수도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자극을 모두 없앤다고 해서 완전한 평화가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극으로부터 벗어나기를 항상 소망하게 되는 것일까? 이는 자극으로 인해서 생긴 무료함 때문이다. 휴대폰이나 이어폰처럼 자극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없으면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지루함과 무료함, 그리고 이런 무료함이 생기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번 이런 지루함에 빠지게 되면 더 큰 자극을 찾게 되기 때문에, 이런 연쇄에 지친 사람들이 자극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너무 많은 자극으로 인해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면, 잠시 집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복잡한 감각을 뒤로하고 잠시 불을 끈 채로 명상을 즐겨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오늘도 내 몸의 수많은 감각들이 잘 작동하고 있음에 감사하면서 하루 정도의 휴식을 가져 보자. '고자극 시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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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1-15 13: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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