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진
[The Psychology Times=한유진 ]
생각하지 않으려 할 수록 더 생각이 나
오늘 당신이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졌다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손가락에서 커플링을 빼서 버리고, 집안에 있는 그 사람의 흔적을 몽땅 꺼내 처분하고, 추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것 같은 공간은 피하기로 마음먹는다. 모든 사진을 없애고 연락처는 물론, SNS에 남아 있는 이야기들까지 전부 없애 버리기로 한다. 아마도 당신은 연인을 정말 조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유발할 법한 모든 것들을 치우고 나면, 한결 마음이 나아질 것도 같다. 하지만 이별을 한 번이라도 해 봤던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 것이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 마음대로 어떤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흔히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라는 지시를 받으면 코끼리가 더 생각나게 된다고 한다. 연인을 잊으려고 결심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뇌에게 '잊으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헤어진 연인을 잊기 위해서 온갖 여러 행동을 시도해 보는 것 자체가 이미 연인을 더욱 깊게, 더 자주 생각하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잊고 싶은 기억은 어떻게 떠나 보내야 하는 것일까? 잊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가 기억을 더 깊게 만든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로는 무엇이 있단 말인가?
페니베이커의 반동 효과
어떤 생각을 더는 하지 않겠다고 단정지었을 때, 그 생각이 오히려 더 자주 떠오르게 되는 현상을 두고 심리학계에서는 '반동 효과'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제본스의 역설과 관련된 반동 효과와는 동명의 다른 개념이다. 코끼리를 더 생각하게 되는 사람들은 이상하거나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당연한 경험을 한 것 뿐이다. 헤어진 연인이 아니라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러 절망했다면,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나쁜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목표를 잡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반동 효과 때문에 이 기억을 잊지 못하고 계속해서 얽매여 있기도 한다. 강력한 정신적 트라우마의 발생 기전 또한 이러한 효과와 유사하다.
심리학자 페니베이커는 이런 반동 효과 때문에 절망적인 경험을 단순히 잊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식을 짓누르는 생각들로부터 해방되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제안했으며, 이러한 내용에 대해 타인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은 경험을 희석하는 효과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반동 효과를 줄이는 방법은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마주하는 것이다. 흔히 트라우마 치료 기법으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는 것이나 일기를 작성하도록 하는 방법이 이용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쉽다.
더욱 어른스럽게 '완전히' 잊을 수 있는 방법
그렇다면 헤어진 연인을 잊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까? 일단 생각이 날 만한 물건들을 모조리 내다 버리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페니베이커는 외면하고 싶은 기억을 마주하는 데에 하루에 단 15분만 소모하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15분 동안 간단하게 일기와 같은 글을 작성하거나, 잊고 싶은 대상에 대해서 생각하고 정의내리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무언가를 '완전히' 잊는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글을 쓰는 과정에서 감정을 정리하고 사실을 올바르게 직시할 수 있으며, 더욱 차분하고 이성적인 상태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간단하게 다이어리를 작성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글쓰기와는 영 친해질 수 없다면 그림을 그리거나 눈을 감고 생각만 하는 것도 좋다. 간단한 방식으로라도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발산하고, 절망적인 경험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헤어진 연인을 잊는 데에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어쩌면 평생 동안 잊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기억을 떠올렸을 때 더이상 괴롭고 힘들지 않다면, 그것만으로 당신은 반동 효과를 지우는 데 성공한 것이다. 커플링은 똑같이 버려도 된다. 집 청소를 해도 괜찮다. 생각만 조금 바꾸면 된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 위해 과거와는 작별하고 싶다면, 뒤를 돌아보지 않기에 집중하기보다는 이제껏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지난 기사
하승수, 권석만. (2011). 표현적 글쓰기가 특정 공포증상에 미치는 영향: 한국과 미국의 대학생 집단을 대상으로. 한국심리학회지 : 임상, 30(2), 359-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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