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빈A
[The Psychology Times=조수빈A]
사진 출처: Pixabay
최근에 필자는 요즘 흥행하는 영화 ‘파묘’를 봤다. 오랜만에 보는 영화라 참 재밌게 봤는데, 특히 최민식 배우의 연기가 눈에 돋보였다. 집에 와서 최민식 배우에 대해 찾아봤더니 마침 몇 주 전에 <유퀴즈 온더 블럭>에 출연하셨더라. 배우로서 걸어온 여정을 담담하고 유쾌하게 풀어내시는데, 그중에서도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연기 후유증에 관한 이야기가 유독 마음에 걸렸다.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 역을 맡았던 최민식 배우는 촬영 중에는 물론 그 이후까지 후유증이 남았다고 고백하셨고, 필자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가 꺼져도 배우의 삶은 계속되는 것처럼 촬영이 끝난다고 해서 배역의 연기가 완전한 종결을 맞이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우리야 화면에서 보고 말지만, 어쩌면 화면 속 캐릭터가 화면 너머의 배우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P.D.S.D (Post-Dramatic Stress Disorder)
배우들이 공연 후 겪는 심리적 후유증인 PDSD(Post-Dramatic Stress Disorder)는 잘 알려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와는 다르다. PDS라고도 불리는 이 개념은 2006년 오스트랄라시아 드라마학회 컨퍼런스에서 마크 세톤 교수가 처음으로 언급한 용어로, 공연 후 일상에 미치는 영향부터 트라우마 유발까지 배우들이 겪을 수 있는 모든 후유증을 일컫는다(주선하, 2017). 이러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플래시백, 불안, 공황발작, 불면증, 우울, 신체화 증상, 개방성 결여, 이유 없는 분노로 인한 폭력적인 공격성, 반복적인 파괴 행동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손지원, 2018).
PTSD와 다른 점은?
심리적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영향이었는지, 자발적인 의지였는지에 따라 PTSD와 PDSD를 구분할 수 있다.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의 영향에 의해 현상이 발생하고, 그 현상에 따른 심리적 후유장애를 개인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것이 PTSD라면, PDSD는 배우가 이 상황이 허구임을 인지하고, 역할에 따라 스스로 연기에 몰입하면서 발생한다(주선하, 2017). 앞서 언급한 최민식 배우의 경우 외에도 연기 후유증에 시달리는 배우들이 많다. 원인과 결과가 충분히 예측 가능한데도 대비와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은 결코 넘겨짚을 문제가 아니다.
해외는 어떨까?
영국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사업 조직이 연합하여 만든 자선단체 Atrsminds가 공연 예술가의 심리 치료의 중요성에 대해 알리고, 그들을 지원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노은정, 2020). 미국은 연기한 역할을 안전하게 제거하는 디롤링(De-roling) 기법의 개발과 적용을 통해 배우의 신체적, 심리적 건강을 증진하고(Bailey & Dickinson, 2016;권지혜, 조영일, 2023에서 재인용), 특정한 작품에서 배우의 정서 문제가 가중될 위험성이 있는 작품의 경우 심리전문가를 동반하여 촬영을 진행하기도 한다(권지혜, 조영일, 2023).
우리나라가 정신 건강, 심리 치료에 대한 인식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한다. 특히 방송과 언론에 공개적으로 노출되는 직업일수록 부정적인 여론과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심리 치료가 쉽지 않다. 만약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돌 경우, 업계 내 이미지와 평판에 지장이 갈 수 있으므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심리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노은정, 2020).
행복한 연기를 할 수 있는 그날까지
현재 국내에서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나 콘텐츠문화진흥원에서 심리 지원을 위한 상담이나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있지만, 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 수에 비해 실질적인 지원과 연구는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무엇보다 PDSD라는 개념이 아직 생소하다 보니 배우 스스로가 PDSD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 고통스러워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리기도 한다. 사랑하는 캐릭터 뒤에는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있고, 배우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떠올리게 된다. 하루빨리 PDSD에 관한 문제의식이 물 위로 떠올라 모든 배우가 후유증의 두려움 없이 연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출처
tvN D ENT, [#유퀴즈온더블럭] 급히 촬영 중단? 국민 배우 최민식 자기님이 들려주는 연기 후유증으로 인한 에피소드부터 수백만 원짜리 가위의 탄생 비하인드 썰까지!|#갓구운클립, 2024.03.09 접속
URL: https://youtu.be/MJ-U9UcnTHA?si=rZMXa3E0CS8nKSZe
주선하. "연기자들이 겪는 P.D.S.D(Post-Dramatic Stress Disorder)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2017. 경기도
손지원. "공연 후 배우가 겪는 심리적 후유증(Post-Dramatic Stress)에 대한 고찰." 국내석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2018. 서울
노은정. "배우들을 위한 심리지원 시스템 구축에 관한 예비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한양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 2020. 서울
Bailey, S. & Dickinson, P.(2016). The Importance of Safely ‘De-roling’ Methods: A Journal of Acting Pedagogy, 2: 1-18.
권지혜 and 조영일. (2023). 작품 속 역할의 간접 외상 경험이 배우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FGI(Focus Group Interview)를 중심으로-. 한국범죄심리연구, 19(1),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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