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세현
[The Psychology Times=황세현 ]
개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관계
치열한 경쟁 속 각자 살아남아야 하는 혹독한 현재 사회에서 우리 중 다수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개인주의를 택했다. 타인과의 친밀한 교류를 통해 힘을 얻기보다는 타인을 나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게 되었고 이는 곧 모두가 모두를 경계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개인은 모든 에너지를 최소화함으로써 생존 에너지를 비축해야만 한다. 따라서 감정적 에너지는 가장 비효율적이고 쓸모없는 소모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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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극도로 경쟁적인 사회가 건강한 것인가 하는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현대인들이 이러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사람 대 사람의 관계를 건강하게 형성할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가 든다. 예로부터 철학자들은 공동체의 힘을 강조해왔다. 우리는 작든 크든 공동체에 속함으로써 안정감과 유대감을 얻는다. 또한 타인과의 접촉과 교류를 통해 나 자신의 자아 또한 발전시킨다.
책임감이 결여된 관계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우리는 책임감을 배우기도 한다. 인간관계를 지속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책임감이 따르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도 가족이라는 공동체 내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그 내부의 관계가 건강히 지속될 수 있다. 가장이 가정을 혼자서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임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책임감, 서로를 올바른 방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책임감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책임감이 결여된 관계를 선호한다.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관계란 얼마나 쉽고 간편한가. 우리는 언젠가부터 그런 관계를 “쿨”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랑을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사람들
이런 경향은 사랑에서도 나타난다. 지금의 사회에서 “진정한” 사랑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회의주의가 종종 머리를 든다. 진정한 사랑은 없기에, 서로의 이익을 채워줄 수 있는 가벼운 관계를 선호하기도 한다. 그래서 연애를 하더라도 각자의 개인적인 이익에 반하는 요소가 발견된다면 즉시 그 연애를 끝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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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어떻게 이익만 있는 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 내게 돌아오는 이익이 있다면 내가 조금은 손해를 봐야 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손해를 보는 것에 상당한 (사회적)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내가 좋아서 하는” 연애에서만큼은 손해를 보기 싫은 마음일 수도 있다.
우리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온전히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많지 않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 중 대부분이 사랑과 관련된 것들이다. 우리는 연애를 하지 않기로, 결혼을 하지 않기로,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고 그것들이 어쩌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일 수도 있다.
사랑에 빠지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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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사랑이 고프다. 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대개 언젠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차가운 현실에서 자신을 구원해줄 나만의 운명의 짝이 있을 거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언젠가 아주 우연히 첫눈에 사랑에 빠질 대상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버릴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올 어바웃 러브』의 저자 벨 훅스는 “사랑의 감정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의 행위를 하는 데 따른 결과”라고 썼다.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에서 사랑의 구성요소가 친밀감, 열정, 그리고 헌신이라고 한 바 있다. 마지막 요소인 헌신은 결심과 책임감을 의미한다. 결심은 사랑을 시작하고 또 유지해 나가겠다는 약속이다. 책임감은 상대를 존중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세계를 넓혀가겠다는 마음이다.
온몸을 던져 사랑하기
즉 사랑은 수동적으로 운명에 몸을 맡겨 ‘빠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위이다.
사랑이 언제나 아름답고 계몽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은 고통스럽고 슬프고 화가 나는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려는 의지”(벨 훅스, 『올 어바웃 러브』)이며 그것은 곧 우리 자신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다.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中 한 장면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너도 사랑지상주의니? 사랑은 언제나 행복과 기쁨과 설렘과 용기만을 줄 거라고?”
“고통과 원망과 아픔과 슬픔과 절망과 불행도 주겠지. 그리고 그것들을 이겨낼 힘도 더불어 주겠지. 그 정도는 돼야 사랑이지.”
자신을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은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것이다. 자아존중감이 잘 형성된 사람은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평소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았으면 하고 꿈꾸었던 사랑을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벨 훅스, 『올 어바웃 러브』) 이것을 깨닫고 실천하게 되면 폭력이 결코 사랑의 형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억하자. “사랑하려는 ‘의지’를 갖고서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벨 훅스. (2012). 올 어바웃 러브. 책읽는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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