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서
[한국심리학신문=김민서 ]
“어 나 거의 다 왔어. 미안ㅠㅠ 빨리 갈게~”
여러분 주변에는 이렇게 매번 약속 시간에 당연한 듯이 늦는 친구가 있으신가요? 같이 만나기로 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주변 사람들을 5분, 10분씩 기다리게 하는 ‘타임스틸러’. 조금만 일찍 나오면 될 텐데 왜 그들은 습관적인 지각을 일삼는 것일까요.
최상의 시나리오만 생각... 계획 오류 발생
어떤 일을 할 때 소요되는 시간을 실제보다 짧게 예상하는 경향을 ‘호프스태터의 법칙(Hofstadter's Law)’ 또는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라고 한다. 미국 인지과학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자신의 저서 <괴델, 에셔, 바흐: 영원한 황금 노끈>에서 어떤 일을 수행할 때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현상을 지적하며 자신의 이름을 따서 ‘호프스태터의 법칙’이라고 하였다. 책 속 구절이다. “당신의 예상보다 늘 더 오래 걸린다. 당신이 호프스태터의 법칙을 고려했다 하더라도.” 이 현상을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엘 카너먼이 ‘계획 오류’라고 이름 붙였으며, 카너먼은 계획 오류가 과제의 성공 가능성을 지나치게 낙관하는 낙관적 편향에 의해 발생한다고 본다.
계획 오류의 예시로, 약속 장소까지 걸리는 시간을 지도 어플로 찾아보고 그때 나오는 시간만큼 혹은 5분 정도 전에 출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예상 소요 시간은 ‘최적’의 경로로 이동했을 때 예상되는 시간일 뿐이다. 현실은 “엇 이 정도면 제시간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하며 지하철에서 발을 동동 구르거나 당황스러워하기 일쑤이다. 두고 온 물건이 생각나 다시 집에 들러야 하거나,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거나, 갑자기 비가 내려 우산을 사러 가야 하는 등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 수많은 변수가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를 과소평가하거나 고려 사항에 넣지 않는다.
캐나다 심리학자 로저 뷸러는 한 실험을 통해 계획 오류를 증명했다. 로저 뷸러는 대학교 졸업반 학생들에게 졸업 논문을 작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예측해 보게 하였다. 1) 가장 순조로운 경우, 2) 일반적인 경우, 3) 최악의 경우로 구분하게 답하게 하였는데, 실험 결과 1) 27.4일, 2) 33.9일, 3) 48.6일로 예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 학생들이 논문을 완성하는 데는 평균 55.5일이 걸렸는데, 이는 최악의 경우로 예상한 것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린 것이다.
늦지 않으려면 100%+50%
최단 시간을 실제 소요 시간으로 간주하고 무엇을 하든지 항상 늦는 친구에게 어떤 조언이 필요할까?
<에센셜리즘>의 저자 그렉 맥커운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처음 예상한 시간에 50%를 더하여 여유시간을 확보하라고 말한다. 한 시간 정도가 걸릴 것 같은 회의라면 한 시간 반 정도의 일정을 빼두고, 30분을 다양한 돌발 상황에 대한 완충장치로 삼는 것이다. 약속 장소까지 40분이 나온다면, 한 시간 전에 여유 있게 출발하라는 것이다. 그렉 멕커운은 이렇게 하면 지각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남는 시간이 생기면 인생의 보너스처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약속을 중요시하는 태도이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에 의하면, 습관적으로 지각하는 사람들은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한 사람일 수 있다. 시간 약속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세우는 계획인데, 시간을 맞추지 않는다는 것은 그 약속이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거나 가까운 사이여서 지각에 대한 비난이 크게 두렵지 않은 경우일 수 있다. 특히나 이런 행동은 반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계 유지에 있어서 신뢰 형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친한 사이인데 좀 늦는 건 이해해 줄 수 있지’라고 가볍게 넘길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과의 작은 약속에서부터 상호 존중의 태도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나의 시간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시간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가 실제 소요 시간보다 더 짧게 예상하는 계획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50%의 여유시간을 가지고 행동할 때 더 책임감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출처:
그렉 맥커운. (2014). 에센셜리즘. 알에이치코리아.
사피엔스 스튜디오. "조금 늦어도 이해해 주겠지?" 매번 약속에 늦는 '프로 지각러'의 심리⏱️ [타인의 심리 읽어드립니다 EP.22] | 김경일 교수. https://www.youtube.com/watch?v=qt2K-JQNTzU
Roger Buehler, Dale Griffin, and Michael Ross. (1994). Exploring the "Planning Fallacy": Why People Underestimate Their Task Completion Time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67(3), p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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