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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박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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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OECD가 발표한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 · BLI)’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적 연결 지표는 2022년 기준으로 41개국 중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해당 조사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한국인의 응답은 OECD 평균 수치를 밑돌았다.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종식되며 3년 만에 일상을 되찾았으나, ‘인간관계의 정상화’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과제로 남았다. 과거에는 주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수록 마음을 더 많이 나누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공유했다면, 오늘날 현대인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 및 팬데믹을 거치며 대인관계를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고슴도치 딜레마


고슴도치 딜레마란, 인간관계에서 서로의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욕구가 공존하는 모순적인 심리상태다. 이는 1851년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저서 「소논문집과 보충논문집(Parerga und Paralipomena)」 내 고슴도치 우화에서 유래한다. 고슴도치들은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몸통의 가시가 서로를 찔러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멀리 떨어지면, 각자가 고립된 상태 속에서 추위를 견뎌야 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결국 이들은 서로의 가시에 찔리지 않으면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깨닫게 된다. 

 


현대인은 마음속에 고슴도치를 키운다


이는 인간의 사례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인관계에서 상처를 받지 않으면서 적절한 거리 두기를 통해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그들의 인간관계는 SNS 친구, 덕질 메이트, 동네 소꿉친구, 대학 동기, 동아리 선후배 등 종류와 범주가 다양하고 복잡하다. 

이에 사람들은 관계의 중요도와 목적에 따라 지인의 호칭을 달리 부르고,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정도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친구와 자연스럽게 만나 친밀감을 쌓는 것이 보편적이었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그 과정을 스스로 통제하고 조절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고슴도치 딜레마가 사람들로 하여금 ‘목적주의적 인간관계’만을 좇게 해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특정 목적을 위해 관계를 맺은 지인에게 그 이상의 친밀도와 정보 및 감정 교류를 요구하는 것은 ‘실례’라는 인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보편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또한 친구 사이에 약간의 불화와 갈등이 발생할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관계를 쉽게 끊어버리는 현상이 당연시되고 있다. 굳이 하나의 관계에 얽매이지 않아도 다른 관계를 맺을 기회가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더불어 감정과 시간을 들여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SNS나 연락망을 차단하는 것이 간편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것도 원인 중 하나다. 이에 사람들은 점차 ‘관계 맺고 끊기’에 매너리즘을 느끼게 되었고 깊이 있는 대인관계를 구축하는 것에 어려움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


사실 고슴도치 딜레마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다. 이는 관계 심리학 중 일부 현상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에게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스스로 이러한 딜레마에서 빠져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살면서 한 번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온 마음을 다해 애정과 헌신을 보여주었으나 상대가 이에 부응하지 않는 경우를 상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때 마주할 마음의 상처와 상대와의 어색해진 관계를 감당하는 것이 두려워, 사전에 진정한 관계 맺기 자체를 차단하거나 회피해 왔는지 모른다. 이에 대인관계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친밀감을 추구하는 행위는 ‘관계의 적정선을 넘는 무례한 행위’, ‘자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 ‘좋았던 관계를 파탄 내는 행위’ 등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제는 고슴도치 딜레마에서 벗어날 때


고슴도치가 친구의 가시에 찔리면 몸에서 피가 나듯이 인간도 누군가에게 외면받으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상처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찾으며 괴로워한다. 

 

-그는 왜 나를 떠났을까? 

-내가 너무 들이대서 부담스러웠나? 

-내가 갑자기 친해지려고 해서 당황했을까? 

-나에게 그 정도의 마음은 없었는데, 괜히 친한 척을 해서 싫었나? 

 

실제로 친구가 떠난 이유는 당신과 전혀 관련이 없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상대에게 거부당한 것에 대한 고통과 굴욕, 서러움과 분노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들은 소중한 지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어주는 것을 두려워하고 향후 진정한 대인관계 구축에 있어서 지속적인 실패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상처받아도 괜찮다. 상처가 발생한 원인은 내가 아닐 확률이 높으니 주변에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주저 말고 먼저 다가가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넓고 얕은 유대 관계도 좋지만, 힘들고 지칠 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깊은 관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운 당신, 이제는 고슴도치 딜레마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간관계 속에서 ‘찐 행복’을 누릴 때다.

 

 


참고문헌

김난도 외 9명, 「트렌드 코리아 2023」, 미래의창, 2022

배르벨 바르데츠키, 「버려야 할 것, 남겨야 할 것」, 걷는나무, 2021

중앙일보, [Website], 2024, “한국인, 서로 밀쳐내는 고슴도치 같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6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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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5-23 14:4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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