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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이주원 ]


사진 출처: Pixabay

| X가 되어버린 남자친구

 

남자친구와 이별하고 난 다음 날, 세상은 그대로인데 그녀의 세상만큼은 달라졌다. 아침에 습관처럼 확인하던 남자친구의 연락도, 함께 가려고 계획해두었던 휴가 일정도 한순간에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렸다. 아직 헤어진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 

 

성화에 못 이겨 울적한 기분으로 만나러 간 친구는 “똥차 가고 벤츠 온대.”라는 위로의 말을 전한다. 몇 주가 지나도 그녀가 울적함을 표현하자, 주변 사람들이 한마디씩 건넨다. 

“다른 집중할 일을 찾아보면 어때?”,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아. 오늘 만나러 갈래? 아니면 소개팅 고?”, “언제까지 그럴건데? 바쁘게 지내봐.”

 

모두 다 틀리지 않은 말인데도, 그녀의 마음은 침울함으로 요지부동이다. 남자친구와 이별한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과정은 무엇일까?

 


상실감에 대응하는 방어 전략

 

연인과의 이별은 친밀했던 관계가 깨어지는 경험으로,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별이란 의미 있는 애착 대상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으로, 이러한 상실의 경험은 삶에서 겪는 여느 다른 경험보다 심한 정서적 고통과 상처를 안긴다.

 

이처럼 상실감은 보편적인 감정일 수 있으나, 상실감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똑같이 행동하지는 않는다. 상실감에 대한 반응은 그 사람의 방어 전략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방어 전략은 문제 상황에서 취하는 심리적 기제로 효과가 있으면 적응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으나, 효과가 없으면 부적응으로 발전할 수 있기에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 

 

위 사례에 등장한 친구들의 조언도 하나의 전략이지만, 직면하는 대신 다른 대상으로 주의를 전환하는 것은 억압하고 회피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때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그녀에게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억압과 회피는 감정 접촉에 어려움을 불러일으키고, 동기와 욕구의 발견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상실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회복을 더디게 만들 수 있다. 그녀에게는 상실의 경험을 자신의 삶에 통합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이를 ‘애도’라고 부른다. 

 


발달적 애도를 향해서

 

애도 반응에 대한 이해 

이별에 따르는 다양한 생각, 감정, 행동은 때로 부적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감정의 폭포가 쏟아질 땐 나만 유난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애도 반응이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상실에 대한 반추와 미래의 상실에 대한 걱정, 그리고 분노와 슬픔의 감정은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흩어지기도 한다.

 

적응적 애도를 위한 태도

애도는 상실을 경험한 당사자인 나를 돌아보는 과정이다. 애도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는 ‘자기’를 주체로 상실을 수용하는 것이다. 받아들이는 것에서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이별하고 나면 ‘그 사람은 나를 왜 떠났을까?’, ‘그 사람은 언제, 어떤 사람과 연애를 시작할까?’의 생각에 빠지고는 한다.

 

여기서 우리는 초점을 전환해야 한다.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일부처럼 여겼던 타인이 떠난 것이므로 내 안에 있는 타인의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그 사람을 잃은 것인가?’, ‘나에게 그 사람은 어떤 존재였는가?’ 등의 성찰은 자기 이해 및 수용에 이르게 한다. 먼저 자기를 세울 때, 타인과 관계를 다시 살펴볼 여력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개인의 심리•사회적 발달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발달적 애도의 토대가 되어준다.


발달적 애도: 의미 재구성을 통한 자기 성장

TV 프로그램 <환승 연애>에서는 X와 이어지지 않은 커플에게 ‘당신의 X는 당신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라는 자막을 띄워준다. 지금까지 다룬 상실과 애도의 관점에서 이 자막을 다시 이해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이별한 관계를 단지 ‘타인에 의한 배제’로만 정의할 수 있을까? 

 

관계가 서사라는 점에서 애도는 이야기를 통해 이별 전후 관계가 갖는 복합적인 의미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이별은 삶에서 분리된 객체가 아닌 통합된 전체로 사건 그 이상의 새로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애도 과정에서 개인은 심리적 고통을 회복하고, 자기 성장의 발달을 이룬다. 이러한 점에서 이별한 관계는 외적인 결과보다 내적인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상실한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가까운 이의 상실을 마주하면 불안이 떠오른다. 곧이어 얼른 상대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고, 빨리 해결책을 주고 싶어진다. MBTI의 T와 F 논쟁을 떠나, 스트레스 상황에 놓였다는 점에서 당신은 그런 방식으로 도움의 손길을 건넬 수 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quick fix(임기응변)보다는 친구가 그 슬픔에 충분히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주면 어떨까? 그것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일이 아니다. 단지 상실감에 빠진 이의 곁에 ‘존재’하는 것이다. 친구가 애도의 과정을 겪을 때 옆에서 묵묵히 버티고 함께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존재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관계적 자원이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해주고 싶다.

 



참고문헌

1) 박현정. (2024). 상실과 애도에 관한 질적 연구. 한신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 이윤희, 김수임. (2022). 대학생의 연인과의 이별 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 인간이해, 43(1), 109-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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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9-03 13: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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