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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나윤 ]



앞선 기사에서 숏폼이 주는 짧은 쾌락은 도파민 중독을 일으켜 장기적으로는 행복을 ‘덜’ 느끼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빠른 호흡으로 쾌락을 주는 숏폼을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 등장하는 ‘소마’와 비교하기도 했다. 소설에서 소마를 복용하며 살아가는 문명인과 대비되는 존재가 바로 ‘야만인’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문명인의 삶의 방식과 야만인의 삶의 방식. 즉 빠른 쾌락과 느린 행복을 비교하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행복은 어떤 형태일지 고민해 보려 한다.

 



야만인 존은 문명인 남녀 사이에서 생겨나 야만인 구역에서 길러진 남자이다. 그의 어머니 린다는 존을 임신한 상태로 야만인 구역에서 조난을 당해 그곳에서 그를 낳는다. 야만인들은 문명인과 달리 초월적 존재를 믿고, 육체의 고통을 감내하며 정신적 가치를 추구한다. 그곳에서는 편리와 효율보다 도덕을 기반으로 한 규율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문명인들이 ‘모두가 모두를 소유한다’는 세뇌 교육을 통해 결혼이란 비효율적이고 어리석은 제도라 믿으며 다자간 연애와 쾌락을 추구하는 반면, 야만인의 세계에서 결혼은 서로에게 평생 충성한다는 맹세이며, 외도는 큰 금기이다. 존은 이러한 야만인들의 문화를 배우고, 문명 세계에서는 금지된, 오래된 고전 문학을 읽으면서 자라난다. 문명인은 쾌락의 추구로, 야만인들은 쾌락의 절제로 기쁨을 얻는다.

 



행복을 느끼기 위한 필수 관문, 자서전적 기억


당신은 누구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싶은가? 앞 기사에서 짧은 쾌락은 도파민 중독을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가 짧은 쾌락을 멀리해야 하는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다.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라. 오랜 친구와 여행을 떠난 순간, 가족이 오랜만에 모여 함께 식사한 순간, 가고 싶었던 맛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 이러한 행복한 기억은 대부분 육하원칙에 따라 서술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런 기억을 일화기억 (episodic memory)의 한 종류인 자서전적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이라고 한다.

 기억의 종류


자서전적 기억은 한 개인의 삶에서 일어났던 경험에 대한 기억으로, ‘자신’이 중심이 되는 만큼 구체적이고 오래 기억이 남는다. 실제로 암기할 내용을 자기 자신과 관련지어 학습하는 기억술이 효과적이라는 연구도 존재한다. 앞서 말했던 예시들과 같이 행복한 순간들은 자서전적 기억을 남겨 우리의 뇌 속에 오래 저장된다.

 

자서전적 기억은 긍정 정서와 연결된다. 한국 심리치료학회지에 개재된 한 연구에서는 긍정 정서 반응이 우울 증상에 미치는 영향에서 자서전적 기억의 조절 효과를 연구했다. 연구 결과, 단순히 긍정 정서를 떠올릴 때가 아니라, 긍정 정서를 자서전적 기억을 회상하며 떠올릴 때 우울 증상 완화에 효과가 있었다. 이는 사람을 우울에서 벗어나고 행복하게 만드는 데 자서전적 기억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연구에서 긍정적 자서전적 기억 회상이 우울 증상 개선에 도움을 준다고 밝혀졌다. 또 노인이나 우울 집단 등 정서 취약 계층의 건강을 위해서도 자서전적 기억 화상 치료가 활용되고 있다.

 



휘발되는 짧은 행복의 감각


그렇다면 빠른 쾌락, 즉 소마와 숏폼은 자서전적 기억을 남길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당신이 오늘 시청한 숏폼의 내용을 기억해 낼 수 있는가? 어제 시청한 것은? 한 달 전은? 아마 기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숏폼이 주는 쾌락은 행복이라기보다 자극에 대한 단순한 반응에 가깝다. 필자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감각적 자극에 대한 단순한 반응 이상의 것이다. 더 복잡하고 복합적인 감정이다.

 



행복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행복은 단순하지 않다. 행복은 때때로 고통과 인내와 같은 감정을 수반한다. 고대 그리스의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의 극한 절제에서 진정한 쾌락이 온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통과 행복은 반대의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 서로서로 필요로 하며 존재한다. 행복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감정과 함께 존재한다.

 

<멋진 신세계>에서 버나드와 함께 문명사회에 들어온 야만인 존은 어떠한 철학적 사고도 없이 인간 고유의 정신세계를 약물과 세뇌로 통제하는 문명에 대한 강한 혐오를 내비친다.

 

“그 끔찍한 건 먹지 말아요. 그건 독약이에요, 독약이라고요”….“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죽이는 독약입니다


그는 문명인들이 행복 그 자체로 여기는 소마를 독약이라고 칭하며 수동적이고 단순한 쾌락과 능동적이고 복잡한 행복을 구분했다. 존은 결국 문명사회를 거부하고 숲으로 돌아가 야만인으로서의 삶을 이어간다. 마을의 노인들에게서 배운 대로 활을 만들고, 밭을 경작하며 그는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그는 일을 하면서 벅찬 기쁨을 느꼈다. 무엇이든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스위치를 누르거나 손잡이를 돌리면 그만이라 아무 할 일 없이 런던에서 나태하게 여러 주일을 보낸 다음이라서, 기술과 인내를 요구하는 무엇을 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순수한 기쁨이었다.

 

그의 기쁨은 소마의 기쁨과 달리 땀이 필요하다. 그의 기쁨은 육체의 고통과 정신의 인내를 양분 삼아 자라난다. 그가 추구하는 행복은 곧바로 찾아오지 않으며 과정과 시간을 요한다. 소설은 문명인과 존이 각각 기쁨을 추구하는 방식을 대비하며, 쾌락과 행복의 질적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행복과 쾌락을 구별하기


픽사의 애니메이션 <월 E>중 한 장면


단순한 쾌락을 극한으로 좇으면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픽사에서 2008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월 E에는 액시엄 호에서 살아가는 미래인의 모습이 나온다. 그들은 24시간 편안한 자동 이동 의자에 누워 영상을 시청하거나 음식을 먹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원하는 모든 것이 즉시 대령 되는 환경에서, 인간은 고도비만의 체형으로 스스로 걷지조차 못하며 나태하게 살아간다. 이러한 삶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간편하게 쾌락을 얻는 것이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일까? 무성의하게 숏폼을 넘기면서 우리는 정말 행복할까? 숏폼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단순한 쾌락과 진정한 행복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질 좋은’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 아닐까. 




*참고문헌

1). 임지혜, 이혜진. (2020). 긍정적 자서전적 기억 회상이 우울집단의 슬픈 기분 개선에 미치는 효과. Korean Journal of Clinical Psychology, 39(2), 87-97.

2). 강보라, 김은정. (2020). 긍정 정서 반응이 우울 증상에 미치는 영향: 자서전적 기억 특정성의 조절효과. 한국심리치료학회지, 12(1), 19-37. 

3). 김인혜, 안현서, 신지원 and 박상미. (2022). 지역사회 거주 노인의 자서전적 기억 기능과 주관적 건강의 관계. 한국노인작업치료학회지, 4(2), 25-37.

4). 올더스 헉슬리. (2015). 멋진 신세계. 소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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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9-27 12: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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