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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스크롤 압박'... 긴 글 읽지 않는 사회의 위험성 - -불확실성을 어려워하는 사회... 인지적 종결 욕구 때문?
  • 기사등록 2024-10-07 11: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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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윤서정 ]


‘그래서 이게 뭔데? 세 줄 요약 좀’ ‘안 읽을 사람들 위해서 한 줄 요약’


인터넷 커뮤니티나 댓글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말이다.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긴 글을 읽었을 때 정확한 정보보다 빠르고 명징해 보이는 정보를 얻기 위해 시작된 ‘세 줄 요약’ 문화는 특정 커뮤니티뿐 아니라 인터넷 전반,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문화가 됐다. 사람들은 긴 글을 읽고 스스로 요지를 파악하기보다는 소화하기 쉽게 누군가가 미리 정리해둔 짧은 글만을 원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맞춰 네이버는 2017년 11월부터 네이버 뉴스에 요약봇 서비스를 도입하기도 했다. ‘요약봇’은 바쁜 현대인들이 뉴스를 끝까지 보기 어려운 점을 이유로 들어 네이버 측이 자동 추출 기술로 짧게 뉴스를 정리해 보여주는 서비스다. 이는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간결하고 빠르게 정보를 수용하고 넘어가려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로 인해 등장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글뿐만이 아니다. 동영상 컨텐츠 시장에서도 유튜브 숏츠, 틱톡 등 숏폼의 인기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점점 더 짧은 컨텐츠를 선호하고 주로 소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소화할 수 있는 컨텐츠의 길이도 점점 짧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세 줄 요약’을 요구하거나, 짧은 컨텐츠만을 선호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바로 ‘인지적 종결 욕구’ 때문이다.


 

네이버 뉴스 요약봇 서비스



인지적 종결 욕구란?


인지적 종결 욕구란 인지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동기화된 경향성이다. 어떤 질문에 대해 모호함을 피하고 어떻든 확고한 답을 원하는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앞서 이야기했던 ‘세 줄 요약’, “그래서 결론이 뭔데? 핵심만 얘기해.”라고 말할 때의 경우다. 인지적 종결 욕구가 강해지면 어떤 문제든지 분명한 답을 원하는 경향이 짙어진다. 불확실한 상황보다는 질서를, 자유와 개성보다는 규칙,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을 선호한다.


1993년 인지적 종결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에어리 쿠르굴란스키는 인지적 종결 욕구에 5가지 차원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첫 번째는 삶이 질서 정연하고 구조화되기를 바라는 질서에 대한 선호다. 두 번째는 일관되고 변하지 않는 지식을 선호하는 예측 가능성에 대한 선호다. 세 번째는 신속하게 종결에 도달하고자 하는 판단의 명확성이며, 네 번째는 애매한 상황을 싫어하는 모호함에 대한 불편감이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차원은 자신의 판단과 일치하지 않은 증거나 의견을 고려하지 않으려고 하는 폐쇄적 사고이다.

 


인지적 종결 욕구, 부정적인가?


이러한 인지적 종결 욕구는 다층적이고 총체적인 현대 사회의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 쉽다. 빠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간결해 보이는 정보만을 계속해서 요구하다가는 흑백 논리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인지적 종결 욕구가 강해진 사람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얻은 답이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것으로 보인다면 그 답이 정답이 아니더라도 더 이상 정보를 탐색하지 않고 그것을 답으로 결정하는 성향을 띠게 된다. 이러한 성향은 사람을 편협한 사고에 갇히게 하고, 나아가 세상을 흑백으로 인식하게끔 만든다. 


세상의 다양한 사안에는 그와 상호작용하는 수많은 맥락이 존재한다. 이를 알아보고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 없이 명확한 답이나 내가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는가에만 집중하게 된다면 결국 모두 ‘정치화된 집단’ 안에서만 머무르게 될 뿐이다. 


개개인이 주체가 되어 이야기가 오고 갈 수 있는 공론장이 양극단의 집단으로 분화되면 개인은 내가 과연 어떤 집단에 속할 것인가를 택하는 데에만 몰두하게 된다. 양극단으로 분화된 집단은 자아 효능감을 얻기 어려운 소외된 개인에게 소속감을 부여하고 다른 집단을 향한 무한한 증오를 부추긴다. 이렇게 된다면 공론장은 그 자체가 가진 힘인 재가공, 전복, 생산, 창조의 힘을 잃고 그들만의 정치적 효능감과 만족감에 천착하여 집단적 폐쇄성만을 띠게 된다. 이런 현상이 민주주의가 훼손된 모습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요약에는 언제나 왜곡이 존재한다


요약은 곧 왜곡이다. 빠르고 단편적인 정보만을 원한다는 건 자신의 판단을 요약의 주체에게 외주 맡기는 것과 같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한 사안이나, 당연한 진리로 일컬어지는 전제들도 판단을 뒤엎거나 보류하는 기계적 중립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판단을 내려야 할 때는 충분한 정보로 충분히 숙고하는 습관을 들이자고 제안하고 싶다. 우리는 공론장을 자신의 입장에 유리하게 끌고 가고 싶은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능동성으로 이 세상과 부딪혀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1)강준만, 『소통의 무기』, 개마고원, 2017. 

2)“네이버 뉴스에 ‘요약봇’ 출현..“핵심만 보여줘요”, <이데일리>(2017.11.28.),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8/0003980671?sid=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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