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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채진우 ]



장소복제기억착오증(Reduplicative Paramnesia)은 특정 장소가 두 곳 이상에 동시에 존재하거나, 기존의 장소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고 믿는 증상이다. 이는 드물게 나타나는 착각적인 질환으로, 주로 뇌졸중이나 외상성 뇌손상 후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측 대뇌반구와 양측 두정엽에 동시에 손상이 있을 때 이러한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장소복제기억착오증은 잘못된 장소 인식과 기억을 특징으로 하며, 환자는 자신이 현재 있는 장소가 실제로 다른 곳에 존재한다고 믿거나, 잘 아는 장소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한다.




장소복제기억착오증의 발병 원인과 그 메커니즘


장소복제기억착오증은 다양한 신경학적 질환과 관련이 있다. 뇌졸중, 뇌출혈, 뇌종양, 치매, 뇌염, 그리고 여러 정신질환 등에서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은 종종 환자가 특정 장소에 대한 명확한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 장소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지게 되면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벤슨(Benson) 연구팀이 1970년대에 보고한 사례에서는 한 환자가 자메이카 플레인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그 병원이 사실 타운턴에 위치한 병원 지점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믿은 병원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었던 타운턴에 있다고 확신했고, 때로는 병원이 자신 집의 여분의 침실에 있다고도 말했다. 이러한 착각은 흔히 환자가 알고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고 믿거나, 심지어 비현실적이고 이국적인 장소로의 이전을 상상하는 경우도 있다.


이 질환의 원인으로는 뇌의 기억과 친숙함을 담당하는 시스템의 장애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뇌의 우측 반구 손상은 시각적 공간 인식과 시각적 기억을 손상 시켜 장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어렵게 만든다. 동시에, 전두엽의 손상은 잘못된 장소 인식을 억제하는 데 필요한 기능을 방해한다. 전두엽이 담당하는 억제 기능의 약화는 환자가 잘못된 믿음을 고집하게 만들며, 이는 장소복제기억착오증의 특징적인 행동이다. 최근의 연구들은 이 이론을 지지하고 있으며, 전두엽 손상이 있는 환자들이 허위 기억을 사실로 믿는 경향을 보이는 것과 장소복제기억착오증이 연관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장소복제기억착오증과 뇌의 기억 체계


장소복제기억착오증의 메커니즘에 대해 여러 이론이 존재하지만, 현재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이 질환이 기억과 친숙함을 담당하는 뇌 시스템의 장애에 의해 발생한다고 본다. 픽(Pick)의 초기 설명에 따르면, 이 질환의 주요 원인은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구조가 손상되면서 발생하는 "발작적인 공격"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의식적인 기억이 방해를 받아 환자가 장소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벤슨 연구팀은 우측 대뇌반구의 손상이 환자가 장소를 인식하는 능력을 저하시킨다고 봤으며, 전두엽 손상은 혼란에서 발생하는 잘못된 인식을 억제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론은 현대의 연구에서도 대체로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전두엽과 관련된 연구에서는 환자가 허위 기억을 자신도 모르게 사실로 믿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우측 대뇌반구 손상은 아노소그노시아(anosognosia)와도 관련이 있다. 아노소그노시아는 환자가 자신이 겪고 있는 장애나 결손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장소복제기억착오증에서 나타나는 인식 부족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시각 시스템의 벤트럴 스트림(ventral stream)에 대한 손상이 이 질환의 발생과 관련이 있다는 설명 또한 제기됐다. 이 시각 시스템은 시각 피질과 측두엽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측두엽은 기억의 형성과 회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 부위와 전두엽이 강하게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이 손상되면 장소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기억 통합의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소복제기억착오증의 역사와 발견


장소복제기억착오증이라는 용어는 1903년, 정신과 의사 아놀드 픽(Arnold Pick)에 의해 처음 사용됐다. 픽은 알츠하이머병이 의심되는 환자가 자신이 다니던 병원이 다른 지역에 동일하게 존재한다고 믿는 증상을 보고했다. 그러나 이 현상은 1788년, 스위스의 자연주의자 샤를 보네(Charles Bonnet)에 의해 처음 보고됐다. 보네는 코타르 증후군(Cotard Delusion)을 앓고 있는 여성을 관찰했으며, 이 여성이 자신의 병원이 다른 지역에 있다는 착각을 일으켰다고 기록했다.


이후, 전두엽 손상이나 외상성 뇌손상과 관련된 여러 연구가 진행되었고, 장소복제기억착오증은 점차 신경학적 연구의 중요한 대상이 됐다. 1976년, 벤슨 연구팀은 장소복제기억착오증을 신경인지 결함의 일종으로 설명하면서 이 질환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벤슨은 환자들이 보여주는 장소복제 증상을 단순한 착각이 아닌, 뇌의 기능적 결함으로 설명하려 했다. 이로써 장소복제기억착오증은 단순한 정신적 착각을 넘어서 뇌 기능의 복잡한 장애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참고문헌

1) Carmela, G., and Carlo, B., (2013). Reduplicative Paramnesia: Not Only One. The Journal of Neuropsychiatry and Clinical Neurosciences. Retrieved from: https://psychiatryonline.org/doi/full/10.1176/appi.neuropsych.12030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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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12-26 0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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