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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하지영 ]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하루 일과를 모두 끝내고 집에 들어와 침대에서 휴식을 청하면 그렇게 안정적이고 편안한 마음일 수가 없다. 소위 말하는 ‘현생’, 자본주의 사회에서 치열하게 밥그릇 챙기는 일상에서 벗어나 정신줄을 놓아버려도 되는 유일한 순간이다.

당신에게 ‘집’이 주는 의미는 어떤 의미인가? 내 침대가 놓여있는 곳, 허락 없이 잠을 청하고 맘 편히 의식주를 영위할 수 있는 곳 등의 의미를 댈 수 있다. 단순히 돈을 지불해 빌렸거나 소유한 ‘주택(House)’의 뜻이 아니라 ‘집(Home)’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단순히 생각했을 때도 주택이나 아파트보다는 집이라는 단어가 더 편안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영화나 책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넌 마치 내 집 같은 편안함을 줘.’라는 표현은 들어봐도 ‘넌 마치 아파트 같아.’라는 표현은 들어본 적 없다. 그만큼 나에게 친밀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사람이나 사물에게 쓰는 표현이다. 그런 ‘집'을 갖기 위해 우리는 소유한 재산 중 가장 큰 파이를 내놓고도 평생 돈 모아도 못 살 아파트를 또다시 올려다보며 부유한 쉼을 꿈꾼다. 편안함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금전적 부담감이 내포되어 있다. 사적인 나만의 공간에 있어 요구하는 심리적 안정감과 이와 충돌하는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욕구는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고, 우리에게 집이 가져다 주는 의미는 무엇이 있을까.


 


김영성(2007)에 따르면 집이란 인간에게 안정의 근거와 그에 대한 환상을 제공하는 이미지들의 집적체이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환상으로서의 집 혹은 심리적 이미지로서의 집을 상상하게 된다.

일정을 마치고 쉼을 갖기 위해 돌아오는 곳이 집이듯, 집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분할을 전제로 한다. 일로 대변되는 삶의 흐름을 절단하는 기능이 근대적인 공간으로서의 집을 정의한다는 것이다. 

즉, 집이라는 사적 공간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공적 공간과의 지속적인 접촉이 필요하다. 이에 사람들에게 딜레마가 생겨난다. 집에 대한 환상은 궁극적으로 ‘현실’의 범주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집 안에서 평화와 안식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흐름을 절단하는 공간이지만 또한 현실과 연결되어 있는 아이러니, 여기서 우리는 사실 완전한 정착이란 없는 것이 아닐까 의심해 볼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정착하는 삶’을 위한 지난한 과정이었다. 이동과 방랑과 표류의 삶을 끊어내고, 일정한 곳에 자리 잡아 안전하게 머무르고자 하는 욕망은 모든 인간이 염원하는 삶의 기본 조건이다. 

이러한 역사는 만남과 헤어짐,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는 기나긴 바깥 여정 속에 최종적으로 발 디딜 곳은 어쩌면 내 소유의 주택이 아닐까 하는 집의 이미지가 제공한 환상을 만든 이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주택을 비롯해 좋은 차, 좋은 가족을 만들려고 애쓰지만 현실은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도시가 없어졌을 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일과 쉼의 경계선은 오로지 주택으로만 나뉘는 게 아니다. 그 경계선 속엔 사람이 있고 취미가 있고 문화가 존재한다. 따라서 자신에게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모든 것들에게 집이라는 이름을 붙여보는 건 어떨까.



이미지가 아닌 경험의 산물


살면서 가지게 될 내 소유물 중에 제일 비싼 것이라 할 수 있는 주택, 그곳에 정착하기 위해 희생된 많은 시간과 노동력은 모두 소중하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틀에 갇혀 남들과 같은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에너지를 다 써버린다면 다양한 집으로 정착할 수 있는 내재된 힘들을 다 잃어버리게 되진 않을까.

삶의 도로에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길 위의 유랑자가 되어 나에게 안식처가 되는 모든 사람들과 사건, 애착 물건, 소중한 취미들을 집이라 여겨 돌아갈 수 있게 된다면 추후 지나왔을 때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나만의 큰 집 한 채가 어느새 지어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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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김영성 (2007). 집의 심리학과 느림보의 삶 -「우렁각시는 알까?」. 본질과 현상사. 243, 250-251

브런치, 영화 <노매드랜드> 리뷰, https://brunch.co.kr/@bhhmother/10

송석주, ‘노매드랜드’, 삶과 사람을 기억하다, 독서신문, 2021.05.23, 오피니언, https://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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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6-20 06: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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