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The Psychology Times=주해인 ]


출처 : pixabay

심리 상담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어릴 때까지는 심리 상담이 병을 고치는 작업이라고 알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잘못된' 병을 고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것이 최근 성장한 나의 생각이다. 생각보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이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고, 그 일은 머지않아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튼튼하고 씩씩한 어른이 되는 것이 목표였던 어린 나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항상 건강하진 못했다. 낮아진 자존감과 반복되는 무기력증, 삶의 방향의 상실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혼자서는 이겨낼 자신이 없어 상담을 신청했다. 



상담을 시작하게 된 계기


나는 수능을 두 번 쳤다. 첫 입시를 마치고 아쉬움이 남아서 두 번째 입시에 도전했다. 무서울 게 없던 현역을 지나고 조금은 겁이 많은 반수생이 되었다. 수능은 다가왔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자신감은 있었지만 행동하지 않는 내가 싫었다. 나를 벼랑 끝에 몰아붙여야 공부를 '간절히' 하게 될 것 같아 나의 자존감을 스스로 갉아먹었다. 이게 독이 되었던 것 같다. 수능이 끝나고 나서도 갉아 먹힌 나의 자존감은 회복될 것 같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소홀히 했던 나와의 관계를 회복했어야 하는데 수능이 끝나고 나면 마음껏 놀아야 한다는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정말 원 없이 놀았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좋아졌지만 공허한 마음은 여전했고 가끔은 내 삶이 부질없다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이 상태로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틈이 없었다. 숨이 막히는 느낌, 누군가가 나를 쥐어짜 언젠가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기숙사를 나서 학교 산책을 갔다 오곤 했다. 두 시간, 세 시간 앉아있다 들어오면 마음이 조금 나아졌지만 계속 이렇게 지낼 자신이 없었다. 기숙사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는 상담 안내문을 보고 상담 신청서를 냈다. 



상담을 진행하며


상담은 처음이었다. 나는 내 정신력을 믿기 때문에 그동안 항상 혼자 버텨냈다. 남들의 말을 들어주는 게 익숙하던 내가 남에게 내 진솔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나 스스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내 사고를 따라가는 법을 까먹은 듯 내 머릿속은 남의 말에 대해 반응만 할 줄 알았다. 상담 선생님께서 내게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하실 때면 입을 떼기가 어려웠다. 


사실 상담을 신청한 큰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이 세상에 대한 '답'을 내게 알려주실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상담을 진행하며 나는 계속 내 이야기를 풀어내야 했다. 상담 요청서에 나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삼가시면 좋겠다고 적었지만, 나에 대해 섣부르게 판단해주시길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당장 내가 나아질 '답'을 건네주시길 바라며 나는 내 이야기를 풀어냈다. 하지만 한두 번 하다 보니 상담은 그렇게 답을 정해주고 나에게 행동 지침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현재의 나에게 아쉬운 점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어떻게 바뀌길 바라는지 모두 내가 정해야 했다. 어떻게 나아져야 할지 정하는 것도 어려웠다. 나에 대한 모든 것이 어려웠다. 내가 나를 이렇게 모를 수가 있구나. 


상담을 거듭하며 내 생각을 말로 꺼내고 정리해서 말하는 법을 다시 익혀갔다. 점차 내가 이후에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은지 알 수 있었고 내 이야기 속에서 내가 놓치는 부분들을 짚어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내 사고를 진전시키기 위해서 보완해야 할 부분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상담을 통해 깨달은 점


상담을 하며 내가 깨달은 점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나는 너무 이분법적으로 생각한다. 양극단에 치우쳐 사고하고 있었다. 선이 아니면 악이었고 호 아니면 불호였다. 정답 혹은 오답이라는 입시 교육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중간이 없었다. 


두 번째, 나에게 너무 가혹하다. 나는 살면서 나와 비슷하게 사고하는 사람을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일이 내게는 머리를 써야 할 정도로 어렵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돌아오면 녹초가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 같다. 나와 마음이 맞는 친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곤 하는데 상담 선생님께서 그 친구는 나 자신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사실 이 말은 많이 들어왔기에 '그렇구나' 하는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상담을 하며 내가 나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행동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포기'라는 단어를 듣고 상담 선생님께서 한 번 짚어주셨다. 앞서 내가 원하던 소울 메이트가 "난 나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살아가"라고 말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고 물어보셨다. "남 눈치 보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가"라고 말할 것 같다고 답했다. 상담 선생님께서 내 주변의 친구들도 그렇게 말할 것이라고 하셨다. 남에게는 너무 쉽게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할 수 있으면서 나에게는 불가능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나에게 너무 가혹했다. 나를 옥죄는 건 남들이 아니라 스스로 눈치를 보기로 택한 나였다. 보이지 않는 적이 없어졌다. 


세 번째,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의미를 두지 말자. 우리는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고 한다. 행복하지 못한 삶은 실패한 삶인가? 행복이라는 것의 의미를 규정하고자 하면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웃고 있기만 하면 행복한 건가? 저번에 날아갈 듯이 기뻤는데 그게 행복인가? 그게 행복이라면 인생에 행복은 몇 번 없을 것 같다. 남들은 행복이 뭐라고 생각할까?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나면 또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 그리고 행복하지 못한 순간들은 인생에 의미 없는 순간처럼 다가왔다. 첫 번째로 언급했던, 중간이 없는 생각이 계속 나를 지배하는 느낌이었다. 

사회는 우리에게 멋있는 어른이 되라고 한다.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행동할 줄 아는, 이 세상에 인류애 정신이 넘치도록 우리가 행동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렇지 않은 어른들을 볼 때면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다짐하곤 하지만 막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작은 일들이라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내 인생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너무 간절히 바라서 절망하는 일이 많았다.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서 살아갈 이유를 모르겠다고까지 생각했다. 

너무 의미에 집착했다.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나아질 점이 많은 이유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한 사람의 힘은 너무 적기 때문이다. 나라서 불가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 혼자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하다. 나는 한 명의 개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내 소신껏 살아가는 것이 내 정신 건강에도 좋고 이 세상에도 좋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나에게 너무 큰 것을 바라왔다. 이 세상은 나 혼자만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담을 마치며


총 10번, 10주간의 상담을 마쳤다. 매주 미루지 않고 꾸준히 상담하러 온 나 스스로 충분히 손뼉 쳐줘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조금 낯간지러웠다. 별거 아닌데. 그래도 그 10번의 상담을 거치며 나아질 점을 찾아내고 어떻게 나아질지 알아낸 후 노력해 온 나 자신에게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비록 완벽하게 나아진 건 아니지만 이제는 찾아오는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울증을 겪는 친구들,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 나의 정신은 강해서 절대 무너질 일 없다고 자부했지만, 극한의 상황이 되면, 혹은 나와의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 되면 무너졌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것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내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고 우울감에 잠식당했다. 나를 돌볼 시간이 부족했던 만큼 나를 돌보는 방법도 잊어버렸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 그래도 이젠 나를 챙길 시간도 많고 내 인생에 대한 책임 의식이 생겼기 때문에 앞으로의 난관은 잘 헤쳐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지만 사회에서만 살면 미쳐버리는 것이 인간이다. 나의 경험담을 통해 스스로 돌볼 시간의 중요성을 간접적으로 깨닫고 앞으론 자신을 더 사랑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상담에 대한 후기를 마친다. 





이전 기사

대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건 뭘 알아보는 검사예요?

믿음과 믿음이 충돌할 때

SNS 끊기,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4021
  • 기사등록 2022-07-13 12:59:30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