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석
[The Psychology Times=변한석 ]
부검은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해부해 사망 원인을 밝히는 방법이다. 그런데,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심리를 연구하는, ‘심리부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심리부검은 자살자의 죽음의 요인을 규명하는 행위이며, 부검처럼 유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 심리부검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는 자살자의 유가족, 친인척, 친구, 동료, 지인들의 증언과 고인이 직접 남긴 유서, 생전 작성한 일기장과 말 습관 등이다.
일반인에겐 낯선 개념인 이 심리부검을 서술한 책이 있는데 바로 <에드윈 슈나이드먼 박사의 심리부검 인터뷰>다.
책의 주인공 ‘아서’는 저자 에드윈 박사에 의하면 ‘천재성을 가진 젊은이’ 로 표현된다. 그는 사망 당일 오전 유서를 쓰면서 자신의 장기를 기증해 달라고 밝혔다. 하지만 공교롭게 그는 약물을 통한 자살을 시도했는데, 약물로 손상된 장기는 이식이 불가능하다. 모순된 증언이다. 이런 모순은 유서 여러 군데에 또 나타난다. 끔찍하게도 그는 오전 한 번의 자살시도 이후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는 유서를 완성하고 저녁에 자살에 성공했다. 그는 유서에서 반복적으로 “나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썼지만, 동시에 그의 여자친구와 형, 동생을 얼마나 많이 생각하는지 자세하게 썼다. 이 역시 자기모순이다. 이런 모순적인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서의 일생
아서의 자살시도는 한 번이 아니었다. 아서의 일생은 ‘자살의 위험요인’과 매우 가까운 삶이었다. 그는 유치원 때부터 통제되지 않은 행동을 보였고, 심지어 7세에 처음으로 언젠가 자살을 할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서는 결국 8세의 어린 나이에 심리치료를 시작했고, 10세 때 부모가 이혼하고, 열네 살 때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그가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행복한 경험을 겪어서였다. 아서가 10학년 때 한 주말 수련회를 가게 됐는데, 그 수련회는 사회적 관계를 돕는 재미있는 수련회였고, 아서 역시 캠프에서 친구를 많이 사귄 긍정적인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련회가 끝나고 아서는 다음 날 학교에 가는 것에 심한 공포를 가지게 됐는데, 너무 즐거운 때를 보내고 나서 다시 끔찍한 학교에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어 첫 번째 자살시도를 했다. 비록 학교에서는 누가 아서를 괴롭혔던 건 아니었지만, 그는 항상 자신이 혼자 소외되어있다고 생각했다.
혼돈의 어린 시절을 보내고, 그는 다행히도 많은 친구를 사귀고, 고등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성인이 되고 그는 처음으로 이성 교제를 시작하고 결혼을 했으며, 파이베타카파(미국 대학의 우등생들로 구성된 단체)에 가입하고, 의대에서도 최고의 우등생이었다. 모든 것은 순조로웠고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아서는 스스로를 과소평가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그는 몇 년 동안 중단되었던 심리치료를 재개했다. 치료기간 동안 그는 부인과의 이혼을 진행 중이었는데, 아서는 부인과 행복했지만, 결혼의 이유가 ‘자신이 불안정하고, 누군가 필요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아서의 세 번째 심리치료는 예전처럼 성공적이었다. 항우울제는 그에게 큰 도움이 됐고, 의대를 졸업하고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아서는 심리치료에 시간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바빠졌고, 기분도 점차 좋아졌다. 그는 이제 치료를 받을 만한 절박한 이유도 사라졌다. 심리치료는 자연스럽게 종료됐다.
하지만 세 번째 심리치료가 끝나고 2년 반 이후, 아서는 자살에 성공했다. 그는 유서에 ‘매일매일이 고통의 연속’이라고 적었다.
아서는 왜 자살을 했을까?
비록 어릴 때의 방황이 있었지만, 아서는 의과대학은 물론 법과대학의 교육과정도 모두 마친 엘리트였다. 모든 역경을 물리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책에는 8명의 전문가의 자문으로 아서의 자살 이유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우선, 전문가는 아서를 ‘저주받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평가했다. 종합적으로 그의 자살은 신경생물학적 요인과 생리적 요인, 그리고 심리학적 요인이 합쳐진 결과라고 보는데, 아서는 자폐증, 청력장애, 고집적인 식습관(샐러드를 절대 먹지 않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생물학적 요인, 절대로 사랑받을 수 없다는 심리적 압박, 만성적 우울감, 낮은 고통 감내 능력,
아서의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똑같은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를 치료했던 정신과 의사는 아서의 사망은 막을 수 없고, 의사의 역할은 그저 시간을 최대한으로 벌려주는 것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놨다. 그의 주변인 중에서도 그의 자살을 충격 없이 받아드린 사람도 있고, 크게 놀란 지인도 있었다.
글을 마치며
아서의 자살을 향한 여정은 무려 두 살 때부터 시작됐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그의 심리 상태는 평생 고통 속에 빠져있었다. 행복을 경험해도 아서는 긍정적인 감정에 거부감을 느꼈다. 누군가 그의 멀쩡해 보이는 ‘가면’을 치우고 아서의 본모습을 봤다면 그는 살 수 있었을까? 필자 역시 정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아서의 심리부검을 통해, 유족의 상처와 앞으로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는 예방책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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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dwin S. Shneidman, 『에드윈 슈나이드먼 박사의 심리부검 인터뷰』, 조용범 역, 학지사, 2014
[네이버 지식백과] 심리부검 URL: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3667&docId=5683313&categoryId=43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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