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연
[The Psychology Times=유시연 ]
내 가족을, 내 연인을 앗아간 범죄자에게 똑같은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는가? 여기, 그런 세상을 그린 드라마가 있다. 바로 <드라마스테이지2021>의 8화 에피소드로 방영된 <더 페어(The Fair)>이다. 가상현실을 이용해 피해자가 느꼈던 범죄 당시의 육체적 고통과 심리적 공포를 그대로 되갚아주는 프로그램 VCP를 법무부가 새로운 징역 수단으로 공식 채택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간혹 크게 이슈가 된 잔혹한 사건들의 경우, 가해자가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징역형에도 그저 시간을 채우면 된다는 식의 뻔뻔한 태도를 보일 때 우리는 마치 내 가족의 일처럼 함께 분노한다. 또한, 그들에게 잘못을 깨우치고 조금이라도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느끼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운 탄식만 내뱉을 뿐이다. 그렇다면 가해자에게 똑같은 고통을 줄 수 있다면, 유족의 원한이, 전 국민의 답답함이 조금은 해소될 수 있을까?
| 고통은 고통으로, 헤라클레스 효과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인, 헤라클레스(Heracles)에 대해 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분노’와 관련된 그의 이야기가 오늘 다룰 우리의 ‘복수’의 감정에 대한 설명이 되어줄 것이다.
어느 날 길을 걷던 헤라클레스는, 발에 이상한 자루 하나가 채이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호기심에 한 번 밟아보자, 자루는 터지기는커녕 점차 부풀어 크기가 커졌다. 계속해서 밟고 부풀기를 반복하다가, 화가 난 헤라클레스는 결국 자루를 멀리 차버렸고 그 자루는 더 커져 그의 앞길을 막기에 이른다. 그 모습을 본 한 성인은 이 자루가 ‘분노’의 자루이며, 분노하게 되면 할수록 끝없이 그 크기가 커질 것이고 오히려 신경 쓰지 않는다면 다시 원래의 크기로 줄어들 것이라 설명해준다.
그렇다. 우리가 느끼는 ‘분노’, 뿐만 아니라 ‘원한’, ‘미련’, ‘후회’ 등 대부분의 부정적인 감정은 계속해서 마음에 되새기고 아쉬워할수록 더 깊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기 마련이다. 이 느낌은 시간이 지나도록 더욱 원래의 기분에 집착하게 만들고 감정은 격해지게 된다. 마치 건들수록 더 크기를 불려 나가는 ‘헤라클레스의 주머니’처럼 말이다. 즉, ‘헤라클레스 효과’는 누군가와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되었을 때, 부정적인 감정을 되새겨 적대감이 깊어지고 보복의 수단이 더욱 격해지는 심리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 나의 상처를 똑같이 되갚아주면 안되는 걸까?_야생마 엔딩
‘야생마 엔딩’이라는 용어가 있다. 아프리카 초원의 야생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흡혈박쥐인데, 아무리 야생마가 발버둥 쳐도 계속해서 피를 빨아먹고 결국 말은 산 채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학자의 연구를 통해, 흡혈박쥐가 빨아먹는 피의 양은 생명에 위협적인 양이 아니며, 야생마의 직접적인 사인은 흡혈을 당한 이후 느끼는 분노로 인한 스스로의 격렬한 반응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처럼 사소한 일로 크게 화를 내거나, 타인의 과실을 원인삼아 자기 자신에게 해를 입히는 현상을 두고 ‘야생마 엔딩’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분노’라는 감정과 이를 조절하는 뇌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갑작스러운 분노의 표출에 대해, 의학적으로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활성된 편도체가 이성적인 뇌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현상’으로 해석함으로써 이를 흔히 ‘편도체의 납치(Amygdala hijack)’라 일컫는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를 똑같이 공격적, 폭력적인 반응으로 표출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에게도 독이 된다.
기사의 앞부분에서 소개한 <더 페어(The Fair)>에서도 VCP를 이용한 형벌 집행에 대해 양측의 의견이 강하게 충돌한다. VCP가 처음 집행될 때에는, 이 방식이 피해자의 고통을 똑같이 느끼게 해줌으로써 유족들이 개발자에 고마움을 표했으나, 점차 집행될수록 고통받는 가해자의 모습을 보며 오히려 자신들이 죄책감을 느끼고 집행을 중단할 것을 호소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형벌 집행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처벌이 가볍다는 점에서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심신 미약 등의 이유를 들어 과도하게 그들의 범죄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판결은 유족들의 분노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범죄의 타깃이 될지 모르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자극하며, 자신이 저지른 일에 비해 가벼운 형량은 결코 가해자들에게 경각심을 줄 수 없다.
범죄를 저지르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이에 마땅한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그 형벌의 집행 목적은 단순히 그들이 갇혀 있으면서 고통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적에 대해 끝없이 반성하는 교화적 차원과 다시는 같은 일을 벌이지 않도록 하는 예방의 차원에 있다. 하지만 가벼운 형량이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피해자는 또다시 정신적 고통에 휩싸일 것이고 이는 오히려 그들 자신을 갉아먹는 ‘나를 향한 창살’로 작용할 수 있다. 가해자와의 물리적 분리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이 또다시 범죄의 불안함에 휩싸이지 않도록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는 것 역시 국가의 역할임을 명심할 때이다.
지난 기사
| 참고문헌
- 장원청. 2020.03.10.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 미디어숲.
- 조행만. 2015.02.16. "분노조절장애...해답은 있다". The Science Times.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B%B6%84%EB%85%B8-%EC%A1%B0%EC%A0%88-%EC%9E%A5%EC%95%A0%ED%95%B4%EB%8B%B5%EC%9D%80-%EC%9E%88%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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