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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한윤아 ]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영의 세계는 존재하는 것일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만한 질문일 것이다. 누구나 죽음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임사체험은 정말로 '저세상'을 경험해 본 것일까. 아니면 죽음 직전의 뇌 변화에 의한 환각일까? 죽음은 정말 미지의 영역인 것 같다. 살아있는 사람 중 그 누구도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불확실한 것에 대한 불안함이 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음 이후에 대한 여러가지 가정을 하게된다.


그런데 사후세계에 대한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는 없었을까? 그리고 죽음에 대한 어떤 입장들이 있을까? 이번 기사에서는 죽음에 관한 흥미로운 입장을 소개해볼 예정이다.



에디슨



1920년대에 토마스 에디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이 죽을 때에는 고도로 하전된 에너지가 신체를 떠나 공간으로 향한다. 그리고 다음의 인생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에너지가 불멸(불사)이란 것을 증명할 실험이 필요하다.“ 

또한 에디슨은 죽을 때 “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유교



유교에서는 죽음에 관하여, 죽음보다는 현실의 삶에 집중할것을 강조하였다.



불교



불교에서는, 죽음은 윤회의 과정중 일부이며, 현재의 업보가 죽음 이후의 삶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도가



도가에서는 죽음을 기가 모였다가 흩어지는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현상으로 보았다.



플라톤



플라톤은 죽음을 통해 영혼이 육체로부터 해방하여 영원불명하는 이데아의 세계에 들어간다고 보았다.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는 인간을 구성하던 원자가 흩어져 개별원자로 돌아가는것이며, 살아있는 인간은 죽음을 경험할수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하이데거



현존재인 인간만이 죽음을 자각할수있으며,

죽음앞으로 미리 달려가 봄으로써 삶을 더욱 의미있고 가치있게 살수있다고 보았다.



물리학자의 눈으로 본 죽음



평소에 물리학자 김상욱님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물리학자 김상욱님의 “떨림과 울림”이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김상욱 물리학자는 옛날에는 죽음을 떠올리면 무섭고 황망한 느낌이 들었지만 물리를 공부하고 원자를 알게 되면서, 죽음을 다른 측면 에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한다. 죽음뿐 만이 아니다. 원자를 알게 되면 세상 만물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서양 철학사는 탈레스의 말로 시작된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철학 최초의 질문은 만물의 근원, 즉 물리에 관한 것이었다. 이 질문에 데모크리토스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 는 것과 유사한 답을 찾았다.

“관습에 의해 (맛이) 달고 관습에 의해 쓰며, 관습에 의해 뜨겁고 관습에 의해 차갑다. 색깔 역시 관습에 의한 것이다. 실제로 있는 것은 원자와 진공뿐이다." 세상은 텅 빈 진공과 그 속을 떠도는 원자로 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관습, 즉 인간 주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데모 크리토스는 유물론자였다. 그는 세상 모든 것, 즉 영혼조차 원자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이 원자들의 모임에 불과하며 불멸 하는 것은 영혼이 아니라 원자다. 사물이 가진 특성은 원자들이 배열하는 방식에서 나온다. 원자가 없다면 세상도 없다.


죽으면 육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하지만 원자론의 입장에서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다.

원자는 불멸하니까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으면 육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어린 시절 죽음이 가장 두려운 상상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원자의 입장에서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 다. 원자는 불멸하니까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죽은 몸은 원자로 산산이 나뉘어 또 다른 무엇인가의 일부분 이 될 테니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물리학자의 눈으로 본 죽음이다.




결론


초반에 말했듯이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란 없다. 임사체험도 그것이 죽음 그 자체를 경험했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죽음이란 영원한 수수께끼인 것이다. 죽음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피할 수 없으며 생명이라면 모두가 마주해야 할 현실이다. 오직 한 가지의 해결수단이 있다면 그것은 마음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납득하는가 하는 것이다. 


죽음은 보통의 사람에게 괴로움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진실한 삶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 자, 두려움에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에게 삶과 죽음을 묻는 자에게 죽음은 진리, 참된 삶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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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떨림과 울림

우리는 죽으면 어디로 갈까

이슬희, and Seul-hee Lee. “하이데거와 불교의 죽음관.” 孔子學, 0(35) 35 (2018): 27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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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1-19 08: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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