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다연
[The Psychology Times=진다연 ]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어언 한 달, 새해를 맞이한 지는 벌써 사 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런저런 변화들이 익숙해졌을 수도, 혹은 여전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을 수도 있다. 새로운 교복의 옷매무새가 어정쩡해 보이기도, 새로운 등굣길이 어색하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의 변화가 가장 확연히 느껴질 것이다. 새 학기, 새 직장, 새 보금자리에서 만난 소위 ‘잘난’ 사람과 나를 은연중에 비교해보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과 살 부대끼며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그들의 성공을 보고, 나의 실패를 비쳐야하는 순간이 온다. 무의식적으로 시작 된 비교의 마음은, 그 존재를 깨닫고 나서는 이미 단단한 열등감으로 자리 잡혀 있기도 한다.
필자의 친언니 얘기를 잠깐 해보고자 한다. 수석 입학, 장학생, 우수 졸업생 등등. 모두 언니 앞에 빠짐없이 붙어왔던 수식어들이다. 웬 가족 자랑이냐 하겠지마는, 자고로 형제자매는 태어나 가장 처음 맞닥뜨리는 경쟁자라고 했다. 나는 태어나기가 무섭게 이 무시무시한 사람과 20년 넘게 경쟁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늘 전전긍긍 했던 사람은 도리어 언니 쪽이었다. 그렇게 유쾌하고 명랑한 사람이 성적표 앞에서는 하릴없이 무너졌다. 도시에서 우수한 학생들만 모인 곳에서, 전국에서 우수한 학생들만 모인 곳으로, 또 그중 우수한 학생들만 모인 곳으로. 거처를 옮겨 갈 때마다 언니는 새로이 발견되는 자신의 부족함을 탓했다. 자신만 수학 수업을 이해 못한다며, 건너편 방에서 들려오던 언니의 울음소리가 아직까지도 귀에 선하다.
여기 비슷한 경험을 가진 한 사람이 있다. 바로 하버드 대학교 신입생 리사. ‘나는 하버드에서 가장 열등한 사람이에요’. 심리상담소를 찾은 그녀의 첫 마디었다. 그녀는 자신이 고향 동네에서 유일하게 하버드에 입학한 자랑스러운 학생에서, 수업 내용을 유일하게 못 알아듣고 다른 학생들의 비웃음을 사는 학생으로 전락해버렸다며, 하버드 입학 후 커져만 가는 열등감의 무게를 토로했다. 그녀는 남들이 자신을 업신여길 거라는 자기비하와 자기연민에 빠져, 타인을 원망하고 자신의 초라함을 한탄하기만 했다. 그녀는 이런 가시 돋친 생각으로 도움의 손길이 애초에 접근하지도 못하도록, 스스로를 외롭고 괴로운 상황에 내몰고 있었다.
신입생 부적응 증후군, 과거를 사는 병
앞서 리사의 얘기를 담은 책은 <나는 하버드 심리상담가입니다>로, 하버드생의 심리상담 일화를 유익하게 풀어간 책이다. 저자는 리사처럼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신입생을 가리키며, ‘신입생 부적응 증후군’ 이라 칭했다. 마음이 계속 과거에 연연해 있는 것이다. 여러 부적응의 상황들이 있지만, 모두 과거에 머물러 현재를 살아가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리사 또한 하버드에 오기까지 일궈낸 여러 성취의 경험들은 무시한 채, 당장의 실패와 좌절의 경험에만 골몰해 있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비교를 하게 된다. 그리고 비교는 무작정 나쁜 것이 아니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 수 있으며, 인정받을 수 있고, 자신감의 바탕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매 순간, 매 곳마다 자신이 제일 뛰어날 수 없다. 어찌 매일 매일이 인생 최고의 순간이자 업적일 수 있겠는가. 좋았던 과거를 현실에서도 놓지 못하는 행동은, 어쩌면 불행하고 초라한 현재 내 자신에 대한 실망과 부끄러움의 방증이다. 이는 단순 추억 회상 정도로 치부하기엔 현재의 자신을 무척이나 갉아먹는 행동이다. 과거에는 비교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지만, 자신감의 원천이었던 비교하는 행위가 현재는 도리어 열등감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은 스스로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비교 사이의 균형을 강조한다. 열등감과 자신감은 ‘심리적 양면성’이라 표현하는데,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반대지만 서로 의존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과의 비교에서 자신감을 얻었다면, 자신과의 비교에서 겸손을, 타인과의 비교에서 열등감을 얻었다면 자신과의 비교에서는 자신감을 얻음으로써 평형을 맞출 것을 주장한다.
과거를 사는 병, 치료법은 현재를 사는 것
저자는 리사의 ‘신입생 증후군’ 치료에 있어서 세 가지 단계를 활용했다. 나쁜 감정을 토로하도록 했고, 비교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바꾸었으며, 구체적인 행동을 실천하도록 했다. 이는 임상 심리상담가이자 정신과 의사 윌리엄 글래서가 1940년대에 발표한 ‘현실치료’에 기반을 두었다. 현실치료에서는 심리적 불균형을 현재의 어려움과 좌절의 고통에 책임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본다. 여기서 핵심은 ‘현재’와 ‘책임’이다. 현실을 직면할 때만 비로소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바탕으로 현실치료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자.
1. 인간에게는 생존, 사랑, 권력, 자유, 즐거움의 기본적인 욕구가 있으며, 욕구 충족 실패의 이유는 △욕구를 충족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방법을 알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않거나,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욕구 충족에 실패하면 증오,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이 생기고 현실도피적인 생각이 형성되어, 점차 패배적 정체감이 발달한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무책임해지려 하는 자기 파괴적 경향성을 없애는 노력이 필요하다.
2. 사람은 누구나 자립적 능력이 있으며 성장 동력을 가지고 있다. 실패와 성공에 대한 인정을 통해 성공의 경험을 더 늘림으로써, 성공적 자아정체감을 쌓아나가야 한다. 사고와 행위를 조절해야만 긍정적 정서가 발현되는데, 즉 성공적 자아정체감의 형성은 자신의 의식적 선택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대질(confrontation)과 구체적인 계획 수립 등 상담자가 능동적, 의지적으로 행할 수 있는 치료 기법을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현실치료 기법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성공적 자아정체감을 스스로의 의지로 형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치료에 입각해서, 필자는 저자의 주장에서 더 나아가보고자 한다. 책에서 저자는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나와의 비교로 자신감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비교의 대상이 자신이라 해도 무조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 생각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타인의 모습뿐만 아니라, 찬란했던 나 자신의 과거에서조차 열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과의 비교에서 자신감을 얻으려면, 반드시 나의 ‘성공적 경험’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생각한다. 실패를 경험했다고 가정해보자. 실패의 경험이 생각의 중심이 되면, 과거에 실패했으니 지금도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할 수도, 또는 과거에는 실패하지 않았는데 지금의 나는 왜 이러지, 하며 자기비하의 굴레로 빠질 수 있다. 반면 성공적 경험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과거의 경험을 다시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현실치료에서도 개인의 고통과 실패의 경험에 직면할 때, 반드시 잠재 능력과 성공적 경험을 함께 보도록 한다. 이는 실패를 아예 떠올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실패를 직면함으로써 건강하게 인정하고, 새로운 성공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믿음의 근거로 과거의 성공적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비교라는 것이 얼마나 상대적인지 생각해보면 깨닫는 사실들이 있다. 바로 열등감을 통해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열등감을 느끼는 분야는 천차만별이다. 모두가 부러워할 법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 또 10등을 해도 뛸 듯이 기쁜 사람이 있고, 2등을 해도 속상해하는 사람이 있다. 이렇듯 내가 열등감을 느끼는 부분에서 내가 무엇을 부러워하는지, 즉 내가 어떻게 변하고 싶은지 알 수 있다. 고로 열등감은 아주 좋은 변화의 목적이자 원동력이 되어줄 수 있다. 그러나 변화하기 전 지금 나의 모습을 초라해하면 안 된다. 누군가는 하버드생이 배부른 소리라며 안일하게 생각했을 리사의 한마디가 필자에게는 그토록 슬프게 와 닿았다. 하버드에서 제일 열등하더라도, 결국엔 하버드 대학생이라는 사실을 본인은 망각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서, 또 인터넷 속에서 24시간 내내 사람과 마주할 수 밖에 없는 현대사회에서, 또 SNS를 통해 나의 성공을 전시하는 게 유행처럼 번진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과 스스로를 비교선상에 놓곤 한다. 타인의 더 큰 성공, 더 무거운 성공, 더 밀도 있는 성공에 여러모로 좌절하기도 한다. 숱한 질책으로 피로해진 마음에게, 타인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비하인드를 비교하지 말자는 말을 건네고 싶다. 비교를 통해 느껴지는 열등감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에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성공할 수 있다고, 내게 느껴지는 부족함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이것이 성공적 자아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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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유승희. (2016). 상담학 사전. 학지사
웨샤오둥. (2019). 나는 하버드 심리상담사입니다. 세종저석
현실치료(현실상담, 현실요법)_윌리엄 글래서 [Website]. (2023). URL: https://blog.naver.com/tiradass/223039066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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