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서
[The Psychology Times=양진서 ]
책으로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까?
문학이 지니는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 책은 심심할 때 읽는 잠깐의 오락거리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힘든 순간에 위로해주는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책은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해줄 뿐 아니라 환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의사의 역할도 수행한다. 독일의 시인이자 철학가인 노발리스는 “문학은 건강을 구성하는 위대한 기예이며, 그래서 시인은 초월적 의사”라고 말한 바 있다. 이렇듯 문학이 지니는 초월적 기능을 이용해 우울증, 심리적 외상 등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문학치료’라고 한다. 글을 읽고 쓰며 무의식에 잠재돼 있던 자신의 상처를 발견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문학치료학’이라는 용어는 1996년에 처음 등장했으며, 2003년 한국문학치료학회 제1회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다양한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문학이 지니는 치유적 기능의 중요성은 오늘날 점차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번아웃 증후군, 우울증, 불안장애 등 현대인들의 정신건강은 점차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학치료는 환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일까?
문학치료란?
정신과 의사 주디스 허먼은 언어화되지 못한 기억을 찾아내는 일이 치료의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충격적인 사건을 외면하려는 방어기제를 갖고 있기에, 환자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면하도록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문학치료는 이런 방어기제 밑에 숨겨진 환자의 상처를 찾는 데 효율적이다. 상담가와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며 치료가 진행된다면 환자는 트라우마에 대해 직접적으로 얘기할 필요 없이 문학과 관련된 대화에서 은연중에 자신의 문제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문학치료에서 상담사는 환자의 ‘자기서사’를 진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학 작품을 읽으며 보이는 반응을 분석해 환자가 지닌 자기서사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가령 논문 「<구운몽>의 독후감을 통한 자기서사의 탐색과 문학치료의 방향 설정」에서 연구자는 학생들이 구운몽을 읽고 보이는 반응을 통해 이들의 자기서사에 나타나는 문제점을 진단했다. 문학치료 과정에서 마주하는 난관 중 하나는 환자의 저항이다. 자신의 속마음을 상담자에게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때는 소설보다 고전시가를 이용한 문학치료가 더 유용하다. 시가 문학을 환자가 노래 부르듯 낭송하게 되면 자신이 감추고 있던 문제점을 자연스럽게 꺼내놓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품을 읽는 것도 문학치료의 방법이지만 환자가 작품을 직접 창작하는 과정 역시 필요하다. 또한 자신이 창작한 작품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면 자기서사를 함께 나누며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된다.
문학으로 진짜 ‘나’를 ‘직면’하는 법
문학치료는 환상을 걷어내고 진짜 ‘나’를 마주하는 직면 단계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이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의식의 협력, 외상의 재체험과 반복, 정서의 자각과 재구성, 기억의 언어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무의식의 협력 과정에서는 내담자와 상담자의 관계 형성이 이뤄진다. 이들 사이에서 라포 관계가 형성되며 내담자가 상담자를 신뢰하고 친근감을 느끼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유의미한 상담이 가능하다. 환자가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 이때 먼저 문학 작품에 대한 대화를 시도하면 상담자는 자신의 개인사를 작품에 빗대어 자연스럽게 털어놓을 수 있다. 외상의 재체험과 반복의 과정에서는 상담자가 직접 작품 창작을 한다. 허구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재체험하며 상처에 휘둘리지 않고 이를 다스리는 법을 배운다. 정서의 자각과 재구성 과정에서 환자는 자신의 정서를 직면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기억의 언어화 작업은 자신이 겪은 일들이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단계다. 문학을 읽고 직접 창작하는 단계를 거쳐 자기서사를 직면하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이를 말로 뱉어내며 치료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저마다 자신을 괴롭게 하거나 주저앉히는 자기서사를 가지고 있다. 문학은 우리가 이를 마주 볼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동반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지난기사
박재인. 2023. 문학치료 상담에서 나타나는 문학행위 반복 현상과 ‘직면’의 치료적 효과. 한국문학치료학회
나지영. 2009. 문학치료 이론 연구의 현황과 전망. 한국문학치료학회.
류희서. 2019. 한국 현대 소설의 병리와 치유적 성격을 통한 문학치료 가능성 연구. 대한문학치료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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