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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유시연 ]



 “되게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는데, 그 시간들에 책갈피를 끼워놓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K-POP으로 제 힘든 삶 같은 것을 다 덮어버리거든요. 저는 덕질이 이런 행복감을 가지고 쭉 유지된다고 생각을 해서, 새로새로 계속 덮어써서 저장을 하는 것 같아요.”

티빙, <케이팝 제너레이션> 1화 中 -

 

덕후. 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빠진 사람.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류 열풍,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케이팝은 탄탄한 팬덤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무보수 크리에이터’라고 불릴 정도로 자신의 최애(‘최고로 애정하는’의 줄임말로, 흔히 연예계 또는 한 아이돌 그룹 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팀/멤버를 뜻함.)의 성공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덕후들은 케이팝의 세계화에 크게 일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애의 생일, 데뷔일마다 카페를 빌려 이벤트를 열고, 거액을 주고 지하철에 광고를 게시한다. 음악방송 스케줄이 있는 날이면 새벽부터 줄을 서서 응원하고, 그룹이 컴백할 때마다 팬 사인회에 참여하기 위해 기본 몇십, 몇백 장의 앨범을 구매한다. 이들을 보는 일부 사람들은 “덕질이 밥 먹여주냐”며 지탄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아랑곳 않고 최애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다. 이런 조건 없는 사랑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미디어 환경으로 매개된 만남을 통해 미디어 속 인물과 시청자가 경험하는 심리적 관계를 의사사회적(준사회적) 상호작용(PSI, Parasocial Interaction)이라 한다. 시청자는 미디어 속 등장인물과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아예 없거나, 혹은 그 상호작용이 매우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자신의 친구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산업적 목적으로 형성된 셀럽들의 미디어 페르소나(media persona)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시청자는 셀럽에 대해 친밀감, 우정 등 정체성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되고, 이러한 감정이 의사사회적 관계로 발전하는 동기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의사사회적 관계는 그 정도에 따라 총 3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사회적 차원의 ‘엔터테인먼트’로, 그저 오락/예능의 콘텐츠로서 미디어를 소비하고 과하게 해당 캐릭터(미디어 페르소나)에 이입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두 번째는 흔히 우리가 부르는 ‘덕후’에 준하는 단계로, 개인적 차원의 ‘강렬’이다. 말 그대로 해당 셀럽에 대해 감정적으로 격렬한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병리적 차원의 ‘경계선’이다. 팬심이 과해지면서 자신을 연예인과 동일시하고, 그들의 환상이 걷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변모하면서 현실과 망상의 경계에 놓인 상태를 가리키며, 순수한 팬심보다는 ‘사생’이라는 이름의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유명인의 사생활 및 일상의 세부적인 사항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현상은 ‘유명인 숭배 증후군(CWS)’라는 이름으로, 팬덤 현상에서 분리하여 재정의된다.

 

최근의 K-POP 산업은, 이러한 심리적 현상을 이용한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팬들의 일상에 더욱 깊이 자리잡고 있다. 2022년 12월 31일부로 서비스가 종료된 네이버의 ‘브이라이브(Vlive)’는 아이돌이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함으로써 팬들과 일상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미리 일정을 고지하고, 공식적으로 방송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스케줄이 끝난 뒤, 혹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찾아오는 최애는 팬들에게 자신에게 위안을 주고, 무대 밖에서 더 가까이 다가와 주는 친근한 존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브이라이브’ 이후에도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아이돌과 함께 채팅을 나누는 ‘버블’, 소속사 차원에서 리얼리티 예능의 느낌으로 기획한 각종 자체 콘셉트 등, 기존의 신비주의 콘셉트와는 거리를 두고 팬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노력은 팬들이 셀럽의 다양한 면모를 접하면서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하지만 이 역시, 미디어 페르소나의 일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결국 ‘거짓 친밀감(fake intimacy)’에 불과하며, 이런 식으로 고정적인 팬층을 형성하는 케이팝 산업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그룹의 색깔’이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세계관, 콘셉트에만 국한된 음악 활동을 선보이면서 ‘몰개성화’로의 역효과로 이어져 업계 전체의 건전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의사사회적 상호작용이 꼭 부정적으로만 비춰지는 것은 아니다. 기사의 앞부분에서 제시된 한 팬의 말처럼, 이러한 팬심은 누군가에겐 지친 일상에서 잠시 눈을 돌려 삶의 낙을 얻을 수 있는 한 줄기의 빛으로 작용한다. 무언가에 열광하고, 그 성공을 바라며 함께 노력한다는 것 자체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삶의 즐거움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자신의 실제로 스포츠 팬덤에서 내가 응원하는 팀의 대리 성취는 덕후의 자존심을 고양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존재한다(Lianopoulos&Theodorakis, 2019) 어쩌면 K-POP 산업의 최근 경향성으로 언급되었던 팬덤 겨냥형 콘텐츠는,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에게는 ‘나를 위한’ 존재 자체가 자신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사춘기 학생들에게는 ‘이번 시험 잘 보면 콘서트 간다.’와 같은 현실에서의 성취 동기로 작용하기도 하며, 최근에는 금융 업계에서 ‘최애 적금’과 같은 이름으로, 최애의 성취에 따라 팬들이 돈을 모으는 상품이 출시되기도 한다. 이처럼, 물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이지만 정서적으로 위안을 주고, 오히려 현생(현실에서의 삶)에서의 성취도를 높이기 위한 강한 동기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덕질이 꼭 부정적으로만은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이든 과하게 몰두하는 것은 좋지 않다. 언제나 건전한 삶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의 적절한 균형이 지켜질 때 가능한 일이다. 해야 하는 것을 함으로써 하고 싶은 것의 갈증을 느끼고, 하고 싶은 것을 함으로써 해야 하는 것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두 요소의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어쩌면 우리의 하루하루를 더욱 가치있게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지도 모른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나 역시도 나만의 최애가 있고, 그 존재로부터 ‘꿈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서로의 존재가 있기에 힘을 낸다’는 생각으로 나의 삶에 더욱 열정을 다할 수 있었다. 서로에게 힘이 되고, 함께 성장하는 사이. 그것이 바로 덕후에게 최애의 존재 의미이자 아이돌에게 팬들의 존재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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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1) 이효창. "현대 소외 탈출, 아이돌 응원 광고." 국내석사학위논문 서강대학교 대학원, 2020. 서울

2) 룸와이지. "연예인 유튜브 채널의 이용과 만족도 연구: 준사회적 상호작용, 사회적 현존감, 몰입의 영향을 중심으로." 국내석사학위논문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2021. 서울

3) 이문혁, 이종혁.(2022).음악 예능 프로그램의 평가와 지속 시청 의도에 미치는 영향 요인 분석 : 충족, 몰입, 의사사회적 상호작용, 인지된 진정성을 중심으로.방송통신연구,(),143-183.

4) Kurtin, KS, O'Brien, N., Roy, D., & Dam, L. (2018). YouTube에서 의사사회적 상호작용 관계의 발전.학회지 , 7 (1), 233-252.

5) 그로스먼, R. (2020). 팬 연구에서 의사사회적 이론 재검토: 병리학적인가 아니면 (경로) 비논리적인가?. 변형 작업 및 문화 , 34 .

6) Veronica espinal. (2021, Spring 2). PARASOCIAL RELATIONSHIPS IN K-POP: EMOTIONAL SUPPORT CAPITALISM. ENVI. https://www.envimedia.co/parasocial-relationships-k-pop/

7) Gleason TR, Theran SA, Newberg EM. Parasocial Interactions and Relationships in Early Adolescence. Front Psychol. 2017 Feb 23;8:255. doi: 10.3389/fpsyg.2017.00255. PMID: 28280479; PMCID: PMC5322191.

8) Lianopoulos, Y., Theodorakis, N.D., Tsigilis, N., Gardikiotis, A., & Koustelios, A. (2020). Elevating self-esteem through sport team identification: a study about local and distant sport fans. International Journal of Sports Marketing & Sponsorship, 21, 695-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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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5-04 16: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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