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세
[The Psychology Times=이은세 ]
‘얼씨구야’ 가고 ‘풍년’ 온다.
지난 2023년 1월 16일, 14년 동안 서울 시민의 곁을 지키던 지하철 환승 음악이 변경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서울 교통 공사는 ‘코로나19로 지친 고객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고 변화하는 트렌드를 반영하기 위해 새로운 음악으로 변경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지하철 환승을 알리는 배경음악을 기존의 ‘얼씨구야’에서 작곡가 박경훈씨의 ‘풍년’으로 교체했습니다. ‘풍년’은 지난해 10월 진행된 시민 선호도 조사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습니다. 바뀐 음악을 금세 알아차리고 좋고 나쁘고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매일 듣는 음악임에도 바뀐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시민들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왜 발생하는 걸까요? 오늘은 이처럼 우리의 실생활에 밀접하게 숨어있는 비밀인 역치를 소개해 보려 합니다.
낯설다. 너란 역치...
먼저 ‘역치’란 감각 기관에서 차이를 인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극의 크기를 의미합니다. 서론에서 소개한 사례에서는 ‘얼씨구야’와 ‘풍년’을 듣고 두 곡이 다른 곡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데 필요한 두 곡 간의 최소한의 차이점을 역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두 곡의 멜로디나 속도감, 사용되는 악기의 소리 등에서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역치는 크게 절대역과 차이역 두 종류로 나뉩니다. 먼저 절대역이란, 개인이 자극을 지각할 수 있는 최소한의 크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소리가 난다’라는 것을 자각하기 위한 가장 작은 데시벨을 절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이역이란, 두 자극이 서로 다른 자극이라는 것을 변별할 수 있는 두 자극 간의 최소한의 차이를 말합니다. 이 최소한의 차이는 ‘최소 가지 차이’ (iust noticeable difference: JND)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100㏈의 크기인 소리를 105㏈인 소리와 비교했을 때 105㏈이 더 크다고 느낀다면 두 소리 간의 최소 가지 차이는 5㏈인 것입니다.
추가로 우리가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절대역 이하에서 발생하는 지각은 ‘식역하지각’이라고 불립니다. 이는 자극이 있음에도 감각 기관에서 그를 인지하지 못하는 역치 이하 수준의 지각을 의미합니다.
친해지자 역치야
주로 인지 및 지각 심리학에서 연구되는 역치는 소비자 및 광고 심리학에서도 자주 응용됩니다.
사진 출처: 삼양식품위 사진은 1963년부터 현재까지의 삼양라면 패키지 변화입니다. 처음 출시되었던 시기의 패키지와 가장 최근의 패키지를 비교하면, 같은 제품이 맞나 싶을 정도의 큰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각 단계마다의 패키지를 비교하면 점진적인 차이가 느껴질 뿐입니다. 이미 인지도가 높은 삼양라면 등과 같은 제품은 소비자들에게 각인된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를 주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때문에 역치 수준을 과도하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미묘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최근과 같은 물가 상승 시기에는 발생하는 가격 인상에도 역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제품의 가격은 소비자의 구매 의사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급격하게 상승할 경우 매출에까지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교촌 치킨은 치킨값을 3000원씩 전폭 인상시키며 치킨 브랜드 1위 자리를 빼앗기는 것은 물론이고 ‘한 번에 올려도 너무 많이 올렸다’라며 시민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가격 급등은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형성시키기 때문에 가격 인상에 있어서 최소 가지 차이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즉, 가격 인하나 품질 개선과 같은 긍정적 변화는 소비자가 지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가격 인상이나 용량 감소 등과 같은 부정적인 변화는 소비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역치의 수준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역치라는 비밀
지금까지 역치의 개념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곁에서 존재하고 있었던 역치의 활용 사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역치의 정도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기에 절대적인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치의 개념을 이해함으로써 지하철의 바뀐 환승 음악을 알아차리고 변화한 제품의 패키지를 평가하고 인상된 가격에 대한 의식적인 소비를 하는 등의 삶의 작은 변화들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소하지만 다채로운 변화들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요?
지난기사
자료 출처
- 매일경제. (2023). https://www.mk.co.kr/news/society/10605354
- 이코노미스트. (2023). https://economist.co.kr/article/view/ecn202303270067
- 서울파이낸스. (2018). http://www.seoulfn.com/news/articleView.html?idxno=296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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