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지
[The Psychology Times=김민지 ]
방송인 태연 씨./사진=On Style 'THE TAETISEO'
여기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있다. 열심히 살아왔고, 많은 사회적 성과를 이뤘다.
그런데 그들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아무리 열심히 채워 넣어도 공허해요.”
그들 모두 내면에 밑 빠진 독이라도 든 것처럼, 늘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원인도 알 수 없는 공허함에 고통받는다.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자기 내면을 소홀히 했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 공허함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타인까지 피폐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슬픈 점은, 이것이 사회적인 성공 여부와 성별의 유무 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겪을 수 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증상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자 앤서니 스토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두 가지 상반된 충동이 내재되어 있다. 첫 번째는 타인과 친밀해지고자 하는 충동이며, 두 번째는 고독을 통해 자기 본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충동이다. 그리고 올바른 삶의 균형을 위해서는, 이 둘 중 하나라도 누락되어서는 안 된다.
현 21세기, 인간에게 사회생활은 불가피하다. 돈을 벌고 사람을 만나는 것은 개인에 따라 그 방법은 다르지만, 모두 최소한의 방식으로라도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스스로와 대면하는 시간 없이 그저 사회생활에만 몰두한다면, 어떤 인간의 내면이라도 금세 망가져 버릴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누구나 내면세계가 있다. 스스로가 돌보지 않으면 황폐해지는, 그러한 내적 존재 말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바쁜 생활을 보내다가도, 스스로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런 시간을 마련하곤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이용하여, 지쳐버린 심신에게 휴식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런 시간이 생기면 어떠한가?
즐거운 마음은 잠시뿐, 부정적인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한다. 불안하고, 공허하고, 외롭다.
이렇듯 우리는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하면서도, 그 방법에 관해 제대로 알고 있지는 못한 경우가 많다.
정작 그 시간을 마주하게 되면, 그것을 ‘휴식’하는 시간이 아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비생산적인’ 시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쉬지 못하고, 그동안에도 스스로를 대면하기보다는 다시 무언가를 하려 든다.
사회가 ‘고독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가?
혼자 있는 시간을 방해하는 것은 결코, 앞서 거론된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다. 사회는,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을 ‘고독’이나 ‘외로움’과 연결 짓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저명한 종교 철학자로 알려진 폴 틸리히 교수에 따르면, 외로움이란 두 부류로 나눠진다. ‘혼자 있는 고통인 론리니스(loneliness)’, 그리고 ‘혼자 있는 즐거움인 솔리튜드(solitude)’로 말이다.
이 두 가지 고독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후자인 솔리튜드란, 혼자의 시간에 나만의 내적 공간을 가꿈으로써, 보다 창조적인 상태로 도약함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혼자 있을 수 있다’라는 것은 누군가의 자아(ego) 능력 즉, 그이의 성숙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혼자임을 수용하는 태도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제하는 것이 아닌, 친밀한 관계를 강화하는 것에 도움을 준다.
바람직한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자는 스스로와 대면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만이 타인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고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인간은 수많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오직 ‘나’만을 위해 살아도 짧은 인생이, ‘누군가’ 때문에 미뤄지고 뒷전이 되기도 한다.
저명한 작가인 사라 밴 브레스낙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을 지속하는 한 지독한 고독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속 삐삐는 어떠한가?
혼자 자유롭게 살아가는 삐삐에게 어른들은 천방지축이고 말을 안 듣는 아이라고 흉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관습에 매이지 않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던 삐삐는, 그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베풀 줄 아는 아이였다. 그것은 삐삐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에서 오는 박탈감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도 삐삐처럼 사회와 타인의 시선보다 나를 위해, 스스로를 오롯이 들여다보고 또 살아보는 시간이 꼭 필요하지 않을까.
언젠가 너무 지쳤을 때,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도 언제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 정도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마 그렇다면 각박하고 팍팍한 당신의 현실이 조금은 여유롭고 편안해질지도 모른다.
독일의 시인 릴케는, 《말테의 수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독한 사람을 내버려 둬라. 그는 지금 신을 만나고 있다”
고독이란, 나 자신과 대화하고 스스로에 대한 의미를 곱씹는 시간임을 항상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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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한성희. (2020).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메이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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