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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차민경 ]


삶에 지치는 순간들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찾아오는 경우도 있고, 꼭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아도 우리의 삶에 불쑥불쑥 나타나 삶을 살아갈 힘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쪽 빼앗아 가고 무력감의 굴레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든다.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종종 “다들 그러고 살아” 혹은 “삶이란 그런 거지"라는 순응의 답변이 온다. 그 말인즉슨 삶은 원래 고된 것이며, 모두가 그 고된 것을 군말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고 있으니 너도 그러하란 말처럼 들린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쓰이는 관용어 중 “사내자식이 울면 쓰나”, “네가 언니니까 참아야지", 혹은 “열심히 일하시는 부모님 생각을 해서라도 참아야지" 등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이자 도리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주어진 일들이 있을 때 늘 슬프다는 이유로, 기쁘다는 이유로, 해야 할 업무를 팽개치고 감정에 따라 움직일 순 없는 노릇이다.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려면 하기 싫다는 마음을 뒤로하고, 개인의 감정을 잠시 멀리 놓아둔 다음 해야 할 업무와 책임에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를 배제하고 보더라고 우리 사회에서는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억제하는 사람을 건드려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강철같은 이미지와 함께 동경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암묵적인 ‘감정 억제'에 대한 규칙은 우리를 단단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되려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어떠한 감정 상태로 살아가는지도 모르는, 그야말로 자신의 감정에 무지한 ‘감정 불구'에 상태로 만든다.


이러한 감정억제에 대한 무의식적인 강박은 인생에서 영향력이 큰 사건을 마주했을 때도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보다 감정을 외면하는 방식을 택하게 한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까운 지인과의 이별 혹은 죽음을 맞이했을 때도, 내가 지금 슬픈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목놓아 우는 것보다, 당시의 감정을 억누르고 외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감정을 외면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는 결국 제때 해소되지 못한 감정은 마음 어딘가에 억눌려있다가 나중에 시간이 지나 어떠한 방식으로든 표출이 된다는 것이다. 이별과 죽음에서 느낀 상실감과 설움, 그리움과 우울함 등의 감정이 제때 건강하게 해소되지 못한다면 나중에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로 조절이 불가능한 분노, 삶의 활력과 제어권을 잃고 자신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극심한 우울증 등 여러 가지 긍정적이지 않은 반응을 초래한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에 갖갖의 이유를 붙여 그 감정을 느끼면 안 되는 이유를 자신에게 설명하고, 또 그렇지 않기 위해 뼈저리게 노력한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아는가? 감정은 아무리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통제되지 않는다. 즉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내가 왜 이러한 감정을 느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해 방정식을 풀듯 증명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감정은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대상도, 삶에서 기피해야 할 대상도, 승부를 보거나 극복을 해야 할 대상도 아니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종종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내가 원하면 어떻게든 바뀔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종종 인생에서의 큰 역경,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던 어린 시절 트라우마, 깊은 우울과 각종 공포증에 시달리는 나 또한 내가 바뀌고자 하면 바뀔 수 있고 극복하고자 하면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역경들을 극복하는 방법은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아닌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때 내가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과 공존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우울한 감정을 이겨내는 것이 아닌 가끔은 무너지고 지기도 하는 것. 감정에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때그때 드는 감정들에 솔직하게 대응하고 해소한다면, 오히려 나의 내면에 대해 한층 더 자세히 알게 되고 나의 슬픔과 기쁨과 우울과 행복과 나의 인생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졌지만 진 것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마음껏 감정에 지면서 살아보도록 하자 – 그 감정에 대해 무너짐은 당신의 인생의 무너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더 단단한 탑을 쌓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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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8-04 23:5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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