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The Psychology Times=천지영 ]


pixabay인간은 평균적으로 80년의 수명을 가지고 있다. 만약 현재 20대를 지나고 있다면 평균 수명의 약 1/4가량을 살아온 것이고, 30대 이상이라면 더 많은 시간을 살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나온 그 시간이 모두 우리가 경험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과거를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만약 현재가 과거의 결과라고 한다면, 우리는 모두 과거를 경험하고 그 결과로 현재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한 과거 모두를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는 극히 일부이며, 그마저도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가 있었다는 기억이 존재할 뿐이다.”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는 순간의 기억에 불과하므로 우리의 존재 역시 과거 어느 시점의 특정한 순간에만 존재했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하다.'는 영어로 'exist'라고 하여, 그 어원을 살펴보면 '내가 나 밖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나 밖에 있는 경험을 한 시간이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에서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날들은 나 밖에 있지 않은 날들이다. 평소와 같이 기계적으로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장소에 가고 큰 의미 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보낸 날들은 마치 프로그래밍 된 상태인 NPC 같은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현재도 많은 사람들은 존재를 경험하지 못하고, 며칠만 지나도 기억하지 못할 프로그래밍 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나 밖에 있는 경험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헤겔 철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인 '즉자'와 '대자'를 통해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즉자'란 사물이 직접 드러난 현상이나 존재, 실체를 가리키는 말이고, '대자'는 그 실체에 대한 객관화를 통해 인식되는 행위 혹은 주체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단순화해서 이야기하면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나와 관계되는 것, 예를 들면 태어난 고향, 부모님, 출신 학교 등 바꿀 수 없는 것은 즉자적인 것인데, 즉자적인 양태로 존재한다는 것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미시적으로 쪼갠 뒤 합친 것, 즉 바꿀 수 없는 과거로 인해서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즉자적인 양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내가 아니야'라고 하며 부정하는 것이 대자적인 양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자적 양태의 삶은 전형적으로 내가 나 안에 있는 경험이다. 이런 시간은 당연히 기억에 남지 않으며, 며칠만 지나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잊히는 날들이다. 만약 아무런 사고 없이 아주 운 좋게 평균수명을 모두 채우고 80세 정도에 죽는다고 한다면, 그 죽는 순간에 마주하는 '나'라는 존재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볼 때, 내가 정말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80년을 온전히 살다 죽어도 내가 존재한 시간을 되새길 때 몇 년이 될지, 혹은 몇 달, 아니면 며칠이 될지 알 수 없다. 하물며 사고라도 당한다면, 병이라도 걸려 수명에 한참 못 미치는 시간에 죽는다면 그때 경험할 감정들은 상상만 해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루가 기억에 남지 않는다면


pixabay만약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일상을 돌아볼 때, 최근 몇 달 중 기억에 남는 하루가 거의 없다면, 삶의 형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철학자들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인 삶의 의미에 대해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생각해야 할 것은 삶의 의미보다는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의 삶이 더욱 가치있게 느껴지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존재하는 날들, 즉 내가 기억하는 하루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본고에서 현대인들을 위한 해결책을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새로운 경험하기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서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은 그날 하루를 기억에 남게 만들 수 있다. 만약 하루 일과가 끝난 후 저녁 시간에 조금 여유가 생긴다면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취미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는 주말이나 휴가를 이용한 여행, 액티비티, 음식, 예술 등을 통해 '나'와 '세계' 사이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면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만 만지던 주말과는 달리 그날이 기억에 남게 될지도 모른다.

 

목표 달성

반드시 그날 하루의 목표를 정할 필요는 없다. 주 단위, 혹을 월 단위의 장기적인 계획도 좋으니 평소 처리하는 업무와는 다른 특별한 목표를 설정해 두고 목표 달성을 위해 신경 쓰고 노력하는 경험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그 목표를 달성하는 날 성취감과 여러 긍정적인 감정들을 느끼며 그날 하루를 기억에 남게 할 수 있다. 만약 장기적인 목표를 이루었다면 그동안 그 목표를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떠올라 더욱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과의 연결

'나'의 존재는 타인과 구별하면서 인식되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과의 소통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학교나 직장 내에서도 여러 사람을 마주하며 소통할 수 있지만, 그와 달리 '나'에 대해 확인해 볼 수 있는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독서 모임을 통해 같은 책을 읽고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타인과 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또는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모여 다른 사람들은 일상에서 어떻게 취미를 즐기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다. 만약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불편하다면 가족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메일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과거의 시간을 생각해 볼 수 있고, 앞으로의 시간도 상상해 볼 수 있다. 2022년 필즈상을 수상한 수학자 허준이 교수는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먼 옛날의 나와, 지금 여기의 나와, 먼 훗날의 나라는 세 명의 완벽히 낯선 사람들을 이런 날(기억하는 극히 일부의 날)들이 엉성하게 이어주고 있습니다."라고 하며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할 것을 강조한다. 만약 지금까지의 시간을 기억에 남지 않는, 그저 프로그래밍 된 하루로 살아왔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내가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그리하여 미래의 내가 엉성하지 않은 과거로부터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기사


나도 집을 사도 될까?

반복되는 삶이 무기력하고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

동그란 패턴이 무서운 사람들

밤, 감성에 젖기 딱 좋은 시간

부정적인 감정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참고문헌]

고영준, 「헤겔의 관점에서 본 관습적 도덕과 합리적 도덕의 관계」, 『도덕교육연구 제30권』 제4호, 한국도덕교육학회, 2018

이한진,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이 도덕교육에 주는 시사」, 『도덕교육연구 제34권』 제2호, 한국도덕교육학회, 2022

김상욱 교수 방송 자료 https://youtu.be/GJmOmaXOyW0?si=niIjuAm4viOFKrV6

허준이 교수 졸업식 축사 자료 https://youtu.be/OLDhaqosPtA?si=UlsFzDFzPqZkLLBH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7429
  • 기사등록 2023-11-02 00:09:12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