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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조수빈A]


세상에는 읽어야 할 글도, 써야 할 글도 너무 많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글을 빠르게 읽어내고, 정갈하게 풀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글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지옥의 굴레에 갇히기도 한다. 지옥 중에서도 글자가 의미를 잃은 채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그런 지옥 말이다. 참 지옥도 그런 지옥이 따로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이 지옥이 영겁의 지옥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옥에 집중된 신경을 지옥에서 딴 데로 돌리면 금세 지옥을 벗어날 수 있다.

 

혹시 여기까지 읽으면서 지옥이라는 글자의 지옥에 갇혀 있었는가? 이번 기사의 주제인 만큼 독자들도 체감했으면 해서 잠시 지옥으로 초대해 봤는데,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독자들의 뇌에 과부하를 건 것 같아 사과를 드린다.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이 다시는 지옥에 빠지지 않도록 필자가 노력해 보겠다.



게슈탈트란 무엇인가


사진 출처: Pixabay

게슈탈트 붕괴를 살펴보기 전에 우선 게슈탈트에 대해 알아보자. 독일어로 게슈탈트(gestalt)는 전체, 형태, 모습이라는 뜻으로, 게슈탈트 심리학은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며 인간은 어떤 대상을 개별적 부분의 조합이 아닌 전체로 인식하는 존재라고 주장하는 학파이다. 심리학자 막스 베르트하이머는 움직이는 물체를 연속 촬영한 사진을 차례로 붙인 원통을 회전시키면 사진들이 동영상처럼 재생되는 스토로보스코프에 착안해 게슈탈트 심리학을 창시했다. 그는 쿠르트 코프카, 볼프캉 쾰러와 함께 시각 감각이 형태를 구성하는 방식인 지각 조직화의 원리를 이론화했고, 다른 지각 영역, 기억, 학습, 사고 등에도 이 원리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 이후 게슈탈트 심리학은 인지심리학 발달에 기여했으며 심리치료에도 활용되는 등 현재까지 여러 방면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게슈탈트 붕괴 현상


게슈탈트 붕괴는 전체적인 형태를 의미하는 게슈탈트(gestalt)와 붕괴가 합쳐진 말로 공식적인 심리학 용어가 아니라 일본에서 만들어진 은어다. 앞서 경험했듯이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보면 그 단어에 위화감을 느끼거나 의미를 잊어버리는 것처럼 인간의 감각이 전체의 일부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이미 인지한 전체마저 잃어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주로 애니메이션, 영화, 소설 등에서 언급되며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쓰이는 단어다. 이것은 뇌 감각 뉴런의 일시적 피로 현상이라고 하니, 갑자기 단어가 어색해 보인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잠시 뇌를 환기해 준다면 금방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中


심리학에서는 뭐라고 할까?


게슈탈트 붕괴 현상을 지칭하는 심리학적 용어로는 의미 포화가 있다. 이것은 심리학자인 Leon James Jakobovits가 언급한 용어로, 단어나 구절을 반복하여 일시적으로 의미를 잃는 현상을 뜻한다. 게슈탈트 붕괴의 정의와 별 차이는 없으나, 그는 실험을 통해 의미 포화 현상을 검증하고자 했다. 숫자를 반복하게 한 후에 간단한 계산을 실시하거나 이중 언어 사용자들에게 단어를 반복하게 한 후에 다른 언어로 된 단어를 번역하게 하는 등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했고, 결과적으로 과제를 수행하기 전에 과제와 관련된 자극을 반복하면 과제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통해 의미 포화 현상을 확인하였다.


최근에는 감정적인 단어의 의미 포화가 표정 처리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 연구가 있다(Z. Li et al., 2023). 실험 참가자는 20초 동안 哭(울음) 혹은 중립적인(감정 없음) 단어를 본 다음, 제시된 표정이 어떤 감정과 관련 있는지 선택하는 과제를 수행했다. 그 결과 슬픈 표정이 나왔을 때 슬픔을 선택하는 시간이, 중립적인 단어를 응시했을 때보다 哭(울음)을 응시했을 때 더 오래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哭(울음) 대신 笑(웃음)으로 시행했을 때도 역시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얼굴 표정을 판단하는 찰나의 순간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의미 포화의 효과는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가진 것이다.



의미 포화 상태야!


필자도 예전에는 글자가 낯설어 보이는 현상을 게슈탈트 붕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번에 의미 포화라는 심리학 용어를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게슈탈트 붕괴가 일어났다! 대신 의미 포화 상태야! 라고 해보려고 한다. 단골처럼 찾아오는 덕분에 글 쓰는 속도가 느려져서 짜증 날 때도 많지만, 한편으론 휴식이 필요하다는 알림이라고 생각한다. 뇌가 보내는 과부하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그때그때 잘 쉬어줘야 오래 쓰면서도 좋은 글이 나오는 것 같다. 독자 여러분도 게슈탈트 붕괴를 의미 포화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연도 미상). "게슈탈트"

URL: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62841&docId=5673255&categoryId=62841

최윤필. (2022).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 한국일보

URL: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31321040004358?did=NA

네이버 지식백과. (연도 미상). "게슈탈트 심리학"

URL: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1991&docId=2118670&categoryId=41991

Leon A. Jakobovits. (1962). Effects of repeated stimulation on cognitive aspects of behavior: some experiments on the phenomenon of semantic satiation. Department of Psychology, McGill University, Montreal.

Zhao Li, Kewei Li, Ying Liu, Mingliang Gong, Junchen Shang, Wen Liu, Yangtao Liu, Zhongqing Jiang. (2023). Semantic satiation of emotional words impedes facial expression processing in two stages, Heliyon, 9 (7), art. no. e18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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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4-19 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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